게재順
①適應에의 몸부림
②閉鎖에서 開放으로
③1백만돌파의 虛實
④陣痛속의 成長
한국가톨릭이 대망의 신자총수 1백만을 돌파한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1784년 李承薰 선생이 北京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세한이래 1백90년만인 1974년末 한국인신자수는1백만에서 1만여명이 많은 1백1만2천2백9명을 기록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행한 교세통계표에 의하면 60년대초 40여만 명이었던 신자수는 年평균 8%의 높은 신자률을 보이면서 60년대 10년동안 거의 倍에 가까운 77만9천 명에 도달했다. 따라서 60년대와 같은 평균 신장율로 신자수가 증가했다면 신자수 1백만 돌파는70대중반이전에 성취될수가 있었다.
그러나 60년대초반 10%선까지 육박하던 신자증가율은 중반기부터 급격히 둔화되기 시작、 하반기에는 3% 선으로 하락하는 불균형을 드러냈다.
이후 70년도 한해동안 신자증가는 9천여명에 불과한 1.15%를 기록、인구자연증가률에도 못미치는 기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듬해인 71년에는 이런 현상이 극(極)에 달해 신자증가는 0.29%에 불과한 2천여 명에 지나지않는 마이너스 현상을 가져오면서 70년대 1백만 돌파가 어려울것으로 보였다.
이같은 현상은 60년대末부터 현저히 나타난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에따라 신자들의 지역간이동이 심해지면서 뒤따른 결과로 離鄕者들의 교적미정리로인한 소위「행방불명신자」의 급격한 증가가 主因으로 나타났다.
72년 주교회의가 오랜 시일을두고 냉답하였거나 거주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교적에서 제외되는 신자가 많음을 인식하고 그들도「틀림없는 하느님의 자녀」로 규정、 신자총수에 가산하는 행방불명자에 대한 새로운 규정으로 74년도에 1백만을 이룩한 한국가톨릭은 이후 점진적인 성장을 통해 78년말 현재 1백20만에 육박、선교2백주년을 맞는 84년에 2백만신자화를 이룩하려는 결의를 다지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1백20만 신자중 14만3천여명(12%)의 냉담자와 16만여명(13.6%)의 행방불명자를 포함하고있어 전체신자의 4분의1인 30여만 명이 교회와 멀어져있는 문제점을 안고있다 이 문제점의 원인은 50년대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10여년간 기형적일 정도로 불어난 신자증가에서 찾아볼수 있다. 특히 50년대말에는 年間 신자수가 20~30%씩 급격히 증가하는 황금기를 구가한 반면 이때「물질적인 혜택」으로 대거 입교한 신자들이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교회에서 베푸는 혜택이 없어지고 오히려 헌금정신이 강조되자 냉담자ㆍ행방불명자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집중화에 따른 행방불명자 예방을 위해 주교회의는 72년5월 사목연구원에「이향신자사목부」를 설립했다.
이향신자사목부는 설립즉시 5월부터 8일까지 4개월간에 걸쳐「이향신자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해 전국4백28개 본당중 40개본당을 대상으로 표집조사한 결과 1년동안 서울로 떠난 신자수는 1천4백여명인데 비해 6백여 명만이 교적을 옮겨와 서울전입자중 50%이상이 행방불명자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향자사목부의 노력으로 몇년간 행방불명자는 통계상문화현상을 보였으나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향자사목부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제몫을 다하지못하고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향자 사목부의 유명무실화는 절대적으로 협조가 필요한 일선본당의 무성의와 교회당국의 무관심 그리고 교회당국이 필요에 의해 설치한 가종기구가 난관에 봉착하면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방치해버리려는 타성에서 비롯된것으로지적되고있다.
도시집중화 현상은 도시교구와 농촌교구의 전입 전출자 통계에서 분명히 나타나고있다. 서울 부산 마산 등 3개 교구만이 전출자보다 전입자가 많을뿐이고 나머지11개 교구는 모두 전출자가 많은 현상을 보이고있다. 특히 신흥공업단지교구인 마산은 78년말 현재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거의 倍에 달하고 있는반면 전주 안동 광주 원주 등 농총본당을 포용하고있는 교구는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3~5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행방불명자가 도시집중화등에 따라 70년대에 대두된 문제인 반면 냉담자는 61년도 통계에 처음으로 등장한 60년대부터 계속 부각돼온 문제점이다. 61년도 통계표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냉담신자수는 1만9천9백명으로 그해 전체신자중4%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냉담자 증가의요인은 50년 대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10여년간 기형적으로 급조된 신자들의 탈락ㆍ이동인구의 증가ㆍ영세자에 대한사전사후교육부실 및 관면혼인자의 급증과 교회제도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할수있다.
교회당국과 신자들간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자들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같은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기시작、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교회는 교구차원에서 교육계획을 수입、본당별로 피정을 통한 재교육을 강화하면서 교육의 기반위에 신자배가운동을 병행 상당한 결실을 거두었다. 이러한 교육의 기운은교재빈곤 지도자부족 등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계속해 결점을 찾아가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70년초 꾸르실료협의회가 결성、꾸르실료가 체계화되면서 79년 11월말 현재 1만2천여 명의 수료자를 배출 하였으며 MBW(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 성령세미나 등이 7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전개、지도자양성과 교회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과정의 교육은 약간의 부작용을 일으키고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점도 있다.
교육의 결과는 자립의식을 고취、 헌금정신을 깨우쳐 의원에 의존하던 성당건립이 우리의 힘으로 곳곳에 세워지면서 69년부터 78년까지 10년사이에 1백59개의 본당이 증설、 40%의 증가를 보였다. 이 증가율은 같은기간동안 신자가율 52.7%에 비해낮은 증가율로 본당당 신자밀도가 1백73명이 늘어나 2천1백55명이 되었지만 50~60년대의 풍성한 의원과 대지(垈地)구입 등이 용이했던 점등을 감안할때 만족할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10년동안 42개의 본당이 증설된 반면 안동교구의 경우 단1개의 본당이 증설되는 심한격차를 보이고있어 농ㆍ도교구간의 격차가 그 어느때보다 심화되고있음을 알수있다. 이 문제점은 수년전부터 시작된 도시본당의 농촌본당돕기와 80년부터 전개되는 서울ㆍ대구교구의 농촌교구 지원계획으로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
또한 꾸준히 전개해온 신자배가운동에도 불구하고 예비자수와 대인영세자수가 60년대보다 오히려 숫적으로 열세를 보이고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있다. 특히 71년부터 78년까지 8년동안은 예비자와 대인영세자가 증가폭없이 2만5천과 3만3천 명선을 지속하고있어 시급한 대안책이 마련돼야 할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70년9월 육군야전군에서 시작된 전군신자화운동의결과、 매년 3천여 명의 군인영세자를 배출하면서 젊은층의 신자화라는 바람직한결과를 가져왔으나 양적확장에 치중하는 부작용과 軍영세자의 본당간의 연결부족으로 인한 행불자등으로 진통을 겪기도했다. 그러나 70년후반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면서 제방향을 찾았다고 볼수있다
한편 70년대 10년동안 한국인 사제는 3백37명이 증가、본당(40%) 신자(52.7%)증가율을 훨씬 앞지른 68%를 기록했으나 같은기간동안 외국인사제수는 81명이 감안 외국인사제수는 81명이감소된 2백59명으로 전체사제수는 34%증가에 머물러 본당ㆍ신자증가에 못미치고있다. 따라서 80년대에는70년대보다 더많은 사제의 배출이 요구되고있진만 사제배출이 요구되고있지만 사제배출의 바로미터인 대신학생수가 매년 감소추세에 있어 원활한 사제수급의 전망을 흐리게하고있다.
사제성소 감소현상은 69년 중학교평준화시책에 따라 소신학교의 중학과정이 폐쇄되고、 70년 6월에는 대구ㆍ광주관구 소신학교인 선목고등학교가 독립된 학교운영이 어려워 폐교하는등 직접적 인원인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감소추세까지 걸쳐、70년대 사제성소는「풍요속의 빈곤」을 느껴왔다.
이 현상은 대학입학 예비고사제 실시이후 예시커트라인이 높은 서울신학교는 원미달로 나타난 반면 광주신학교는 정원을 초과、 작년부터 증원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자 해결방안으로「제3대신학교」설립문제까지 검토되기에 이르렀다.
교회당국과 신자들은 성소의 위기를 일찍부터감지、7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체계적인 지원을위해 신학생후원회를 구성、 교황청보조가 해마다 격감하는 신학교운영비를 부담하는 한편 성소의 보다 적극적인 계발을 활발히전개、위기에 대처하는 슬기로움을 보여주었다.
71년9월、대구계산동본당에서 10명의 성소가능 고교생을선발、신학생들과의 합숙피정과 대화를 통해 이중 8명이 신학교지원을 희망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른바「성소피정」을통한성소소계발모임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신학교 재정문제는 성직자양성에대한 신자들의 열의가 무난히 감당할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제성소의 啓發源은 인위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종신부제직 도입의 재검토와 유능한 평신도양성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것으로 보여진다.
70년대 한국교회는 1백20만에 육박하는 외형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성장의 폭만큼 많은 문제점을 안게되었다.
그러나 통계상 나타난 외형적인 증가폭은 크지못했지만 각종진통을 겪으며 다져온 교육의 결실이 빛나고 있어 전반적으로 80년대를 희망적으로 내다볼수있다.
4반세기동안 꾸준히 복음화에 노력해온 레지오마리에가 금년7월 선교2백주년 2백만 신자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목표는 지난70년대 교세통계등에 비추어볼때 그렇게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만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2백만고지는 우리 모두가 기필코 성취해야만할 과제이며 임무가 아닐 수 없다. 넘기에는 너무나 힘든 고지、 그러나 넘지않으면안되는 이고지가 80년대에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우리에게 요구하고있다.
※70년대교세 통계현황
연 도 내 용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신 자 총 수 779,000 788,082 790,367 803,620 953,799 1,012,209 1,052,691 1,093,829 1,144,224 1,189,863
증 가 수 24,695 9,082 2,285 13,253 150,179 58,410 40,482 54,689 50,395 45,639
냉 담 자 71,905 77,245 93,804 95,465 114,109 119,672 129,774 146,390 147,200 143,236
행방불명자 - - - - 99,386 103,144 113,388 137,699 149,893 161,687
예 비 자 30,926 40,051 25,819 25,106 25,923 27,621 24,544 25,244 25,094 26,813
신 부 495 520 563 571 626 639 696 764 818 832
(외 국 인) (340) (363) (346) (338) (316) (285) (289) (284) (270) (259)
대 신 학 생 543 609 585 570 554 570 - - 445 432
본 당 393 415 428 438 455 472 480 507 528 552
공 소 1,906 1,884 1,901 1,778 1,866 1,847 1,785 1,801 1,812 1,780
대 인 영 세 33,603 30,753 33,021 31,799 33,505 33,188 32,746 32,873 34,810 34,313
유 아 영 세 19,599 19,822 20,682 19,599 18,962 16,179 17,979 17,935 19,217 18,302
군 영 세 자 - - - 3,850 1,782 2,130 2,963 3,353 3,144 3,629
교 우 혼 인 3,495 3,246 3,391 3,224 3,425 - 3,528 3,357 3,789 3,951
관 면 혼 인 3,953 4,248 4,387 4,628 5,410 - 5,636 5,881 6,091 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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