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順
①適應에의 몸부림
②閉鎖에서 開放으로
③1백만돌파의 虛實
④陣痛속의 成長
70년가을 주교총회는 교구장 재량으로 주일과 의무적 축일미사를 그전날 저녁에 지낼수있는 특전을 승인했다. 이른바「토요전미사」-. 토요특전미사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라보며 사업화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70년대의 사회흐름속에서 어쩔수없이 파생한 전례개혁의 서전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전례는 각종예식서가 대폭 간소화되는것으로시작、 평신도를 포함한 사제아닌 사람이 성체를 분배할수있는「성체분배권」을 비롯 손으로 성체를 받아모시는「손으로 영성체」등의 새로운 단어와 함께 전례부문의 획기적인 개혁이 단행됐다.
급격히 변모해가는 사회의식구조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행해진 전례개혁 가운데서도「토요특전미사」는 산업사회가 몰고온 레저붐을 타고 휴일을 맘껏즐기려는 젊은신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빠르게정착됐다. 반면 70년대초반、그 재량권을 교구장에 일임한「손으로 영성체」는 한국교회전체에 무리없이 뿌리내리기까지에는 짧지않은 시일이 걸리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기도했다. 각종전례가 간소하게 개혁되는 과정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것이 교회토착화 운동이었다
2차「바티깐」공의회이후 교회내에서 자주 거론되기 시작한 토착화문제는 교회사명에 있어 2차적인것이 아니라 교회본질에 관한것이라는 공의회 가르침을 강력한 배경으로 70년대 한국교회의 커다란 관심사로 대두됐다.
「성가를 우리말로 다함께 부르자」는 성가재창운동은 그리스도의정신을 한국재래문화속에 적응시킨다는 교회토착화운동에 적극합세、 「공동체성가집」을 발간하는등 활발히 진척됐으나 미사중 성가책만도 한보따리를 안고 참례해야하는 번거로움과 혼돈을 초래했다. 결국 우리말성가집 발행의 전성기였던 70년대는「성가집통일」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80년대로 넘겨준셈이되었다.
수도회가 설립했던 본당들이 한국교회로 이양된것은 토착화과정에서 빼놓을수없는 결실이었다.
서울의경우 장위 돈암 왕십리 하양 공덕 신당동외 다수본당들이 70년대에 교구로 이양됐으며 이 가운데 왜관 성베네딕또 수도회대원장직이 한국인에게 이양된것은 토착화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토착화의 지름길이라고 할수있는 신ㆍ구약성서의 완역본발간은 70년대의 쾌거중의 쾌거였다. 60년대말 개신교측과 함께 시작한 신구약 공동번역작업은 71년에는 신약을 77년에는 구약全권을 번역출간함으로써 일반용 공역본으로는「세계최초」를 기록 성서번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한 성서공역본은 출간한지 불과 3년도 못돼 일부 수정판이 나오는등 신자사이에 혼선을 빚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가톨릭에서만 베스트셀러가 되는「異현상」을 보였다.
성서공동번역작업과는 별도로「기도」와「활동」을 통한 일치점모색으로 70년대초반은 가톨릭과개신의 일치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던 때이기도했다.
시성시복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기 시작한것도 이즈음이었다. 71년 평협을 중심으로 시작된 시성시복운동은 신자들의 무관심속에 침묵하다가 추진위윈회가구성돼 기도모금 홍보 기적과 자료수집을 중점으로 새활로를 찾는듯했으나 신자들의 의식화와 효율적인 기도운동을 동반하지 못한채 제자리걸음을 맴돌고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신앙의 뿌리를 찾자」는 교회의 이같은 염원은 교회사에 대한 관심증가로 나타나 70년대 한국교회사는 크고굵직한 중요자료들이 속속 발굴되는 알찬 결실을 맛보았다. 「김대건신부옥중서한」「빠리외방전교회통신문」「김대건신부조선전도」「베버 총원장의 한국기록영화」등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되고 입수돼 교회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사료발굴과 더불어 순교선열들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또한증대、최초 신학교터인「배론」과 복자 김대건 신부 탄생지「솔뫼」가성역화 작업에 들어갔고 한국교회 창설주역의 한사람인 권일신 형제와、이벽 묘 발견 이장ㆍ성역화작업등이 활발히 전개돼 신앙의 고향을 찾고자하는 신자들의 의식에 큰 변화를 나타냈다.
70년대말 급증한 순례대열은 순교선열들의 믿음과 얼을 본받고 오늘을 사는 신앙인의자세를 재정비하려는 많은 신자들의 열망의 표출이었다.
70년대 전반에걸쳐 한국교회는 6명의 주교와 2명의 대주교를 탄생시켰고 세명의 주교와 대주교를 잃었다. 70년 정진석 주교를 필두로 이갑수 이문희 김재덕 경갑룡 박정일 주교가 차례로 주교좌에 올랐고 한공렬 윤공희 주교가 대주교로 승품、70년대 한국교회는 최대기쁨과 경사속에 성년교회로서의 기반과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구 토마 주교 한공렬 현 하톨드 대주교의 서거로 더할 수없는 비통과 슬픔을 겪기도했다.
70년대 초반부터 조심스럽게 싹트기 시작한 신심단체들의 활동이 활짝 꽃을 피운것도 괄목할만한 결실이었다. 평신도운동중 최다회원을 자랑하는「레지오 마리에」는 70년대말 서울레지아가 최상급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이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지 25년만에 최대결실을 맺었고 70년대초 한국협의회가 결성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간「꾸르실료운동」은 70년대 평신도운동의 대표주자로 성숙했다.
꾸르실료 성령쇄신운동과함께 교회3대 신심운동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MBW」는 새로운 교회상구현에 박차를 가하는등 후반들어 교회쇄신대열에 조용히 참여했다. 한편 성령쇄신운동은 파급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유발 주춤했으나 지도신부단 구성 등 국내정착을위한 교구차원의 노력이 거듭되면서 그 돌파구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뿐만아니라「정평위」「인성회」가 창립돼 全교회적인 활동을 주도한것도「幸家運」「ME」가 성가정을 목표로 새롭게 등장 70년대는 가히「평신도신앙운동의 전성시대」라고 지칭할만큼 활발한 신앙부흥시대를 구가했다.
각종 신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필연적으로 동반된것이 평신도교육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 신자교육에 새로운 관심을 갖기시작한 교회는『교육부문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단정할 정도로「교육열풍」을 몰아왔다.
평신도의 위치와 사명이 강조됨에 따라 평신도 교육은 신앙쇄신운동으로인한 신앙의 활성화와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하면서 초반과 중반을 거쳐 70년대를 풍요하게 장식、 타성적이고 평면적인 신앙생활에서 생동하는 신앙생활로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을 이루었다. 물론 교육과정중에는 교육자료 및 지도자부족 지도자 자질문제가 필수적으로 대두、 약간의 어려움을 겪을수 밖에 없었다
교육분야에 있어 주목할만한 성과는 성경연구열의 증대였다. 「신앙의 생활화」를 모토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기시작한 성경연구붐은 신자교육열에 상승작용 전국으로 파급되었고 이같이 뜨거운 교육열은「교육시설 만원사례」라는 이변을 낳았다. 특히 올해초 서울대교구가 실시한「아죠르나멘또」는 신자계속교육을 뒷받침하는 사제교육의 결정체로서 내일을 향한 한국교회의 사목적 포석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이렇듯 교육을 최우선에 놓았던 70년대 신자교육의 성과는 이미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웃에 대한「인식」과「사랑나누기」로 나타났다.
「나」를 깨뜨리고「공동체안의 나」를 볼수있게했던 교육은 개인과 개인본당과 본당의벽을 두텁게 막아온 무관심으리 벽을 통쾌하게 무너뜨릴수있는 사랑의 정신에 불을 질렀다. 실제로 70년대 후반들어 공동체의식과 사랑실천의 개념은 크게신장、도시와 농촌본당은 물론본당과 교구사이에 사랑의 나눔대열이 줄을 이었다.
사목활동의 극대화에 따라 각교구 사목국이 대폭 보강된것도 70년대 결실중의 하나였다.
77년 인성화가 중심이되어 실시된 사순절모금운동은 전국차원으로는 한국교회사상 초유의 일로서 사랑실천의 뚜렷한 표지이자 사회와 더불어사는 교회의 참모습을 여실히 증명했다.
공의회의 가르침에따라 교회 각분야의 쇄신과 변혁의 바람이 일었던 70년대는 분명격동의 시기였다
또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사회구조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국교회로서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진통을 겪었던 시련의 시기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진통과 시련가운데서도 쇄신과 발전을 놓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온 70년대는 한국교회의 성장기였다고 표현해도 무방할것같다. 이제 한국교회는 포교 2백주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대망의 80년대로 다가섰다.
보다 크고 성장을 위해、 양질의 토양을 가꾸기위해 겪었던 70년대의 모든 희생과 피땀어린 노력은80년대의 시작과 더불어 알차고 값진 열매를 맺는 작업으로 승화시키는것이 바로 80년대한국교회가、 우리모두가 안은 최대 과제라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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