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일(81세·요셉·서울 월계동본당)씨.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출신인 그는 얼마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를 받고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50년간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북의 가족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확인결과 북의 아내 김순실(76세)씨와 아들 영선(54세)씨, 그리고 남동생 재삼(69세)씨와 여동생 재실(64세)씨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눈물과 한숨 속에 지내온 인고의 세월.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온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가족들이 살아있다니 정말 꿈만같아요. 이 모든게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가족드이 살아있어 너무 고맙고 이렇게 생사여부를 확인하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북정상의 감격적인 순간을 지켜보며 어쩌면 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 기대를 갖게 됐다는 한재일씨.
5남매 중 장남인 그는 50년 한국전쟁때 인민군으로 강제 징집돼 남한으로 내려왔다. 더욱이 갑작스런 차출로 가족들과 작별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남한에서 탈출에 성공해 자유의 몸이 됐다.
『당시는 금방 고향으로 돌아갈거라 믿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50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군요』
얼마후 들려온 남북분당 소식. 그에게 이 사건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네 살난 아들. 조금만 견디면 다시 그리운 가족들 품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자 한씨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땐 정말 모든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혼자 떨어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었죠』
이처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한씨는 지금의 아내 소복순(마리아·78세)씨는 만나 큰 도움을 받았고 결혼하게 됐다.
그동안 한씨는 북의 가족들을 차마 찾지 못했다. 혹시 자신으로 인해 피해가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애만태우던 그는 정상회담 이후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자 용기를 냈다.
예전보다는 양국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됐고 무엇보다 죽기 전에 마지막 기회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예요. 신앙을 가지면서부터 좋은일만 생기고 있어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한시는 3년전에 부인과 함께 천주교에 입문했다. 나이들면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 부부는 11개월간의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99년 9월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이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매일 아침기도를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도의 기쁨과 풍요로움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요즘 우리 부부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북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제 아내도 진심으로 저의 상봉을 기원하며 기도를 하고 있어 든든해요. 이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세상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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