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席者
◇崔昌武<神父ㆍ가톨리大學長ㆍ서울관구神學院長>
◇朴福珠<修女ㆍ샬트르聖바오로修女會 敎育館長>
◇梁漢模<크리스찬思想硏究所長>
▦司會=玄錫虎<가톨릭敎理硏究所長>
■記錄=高國相 次長
■日時:1979년 12월 10일
■場所:上智會館
진통과 혼돈과 내적성장의 10년-.함축된 이말속에 70년대 한국교회의 발자취가 깊이 어려있다고 보여진다.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간직한채 성장을 이룩한 10년이었다.각종 교육으로인한 신자들의 의식계발과 그결과로 나타난 이웃 공동체의 증대와 사랑실천、사회참여와 정의구현실천,각종개신교와의 성경전서 공동번역완료,신자수 1백만돌파,사회참여와 정의구현실천,각종 평신도활동의 활성화등에서 두드러진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강렬한 교육열에 비해 교자·농민·인권문제、사회참여문제로 인한 혼란、늘어나는 냉담자,행방불명자문제、사제성소감소현상에 따른 근본대책등 많은 숙제를 안고있다.이같은 문제점들은 일치와 화해의 바탕위에서 사랑의 교회 모습을 구현하는데서 해결이 가능하리라 보여진다.이에 본보는 사목일선에서 활동하고있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좌담을 통해 70년대 한국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80년대 한국교회의 좌표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玄=70년대에 한국교회가 이룩한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회고해보고 80년대를 전망하늘 방향으로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사실 70년대에는 이 사회안에서도 그렇지만 교회안에서도 사연이 많았고 업적도 많았읍니다.그런데 이것을 대체로 크게 나눠 사목적츱면에서 먼저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공의회의후 교회쇄신이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볼때 사목적측면·선교적측면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수 있읍니다.그래서 먼저 사목적측면에서 70년대 한국교회의 사목구조문제 사목방법론문제 도시 농촌문제 전레문제 등등 광범위하게 얘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崔=70년대 한구교회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교회안에서의 한구교회를 봐야만 그 위치가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사목적인 측면이란것은 우선 교회헌장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이 한국에서 얼마만큼 이해되어서 한국교회의 직제와 한국교회의 내면적인 생활에 뿌리를 박았느냐 하는 점을 주로 보는것 같읍니다.그리고 복음선교라고 하는것은 바로 이렇게 교회의자각에서부터 살아있는 교회(교회공동체)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활동했느냐 한느점이라면 제2차「바티깐」공의회의「사목헌장」의 실천을 훑어보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60년대가 세계교회로나 한국교회로나 어떤 혼란기이고 새로운 인식을 위해서 진통을 겪었다면 70년대는 오리려 그러한 새로운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기초를 놓은 10년이었다고 봅니다.
▲朴=-70년대에 들어와서 교구나름대로 서로 유기적으로 어떤 구조면데서 완전통일은 아니지만 서로의 유대는 맺었던것같아요.각교구의 사목국장신부들이 모임을 1년에 기회있는대로 몇번씩 가졌다는것은 구조통일에 있어서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결과 문서통일·구조통일등이 문서화되어 안내서로 나타난것은 굉장히 좋았읍니다.그런데 70년대초 새로운 사목대책수립을 위한 서강대종교사회문제연구소의 조사보고서를 사목활동에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교회가 사회보다 과학적인 방법의 부족으로 이용도도 부족했고 도시화현상에 대비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완전부합은 되지못한것 같습니다.
따라서 교구사목국을 보강,장기적인 계획수립이 요청됩니다.그리고 사무처와 사목국의 기능을 엄격히 구분,운용했으면 합니다.
▲玄=사목국의 기구확대ㆍ증강화등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입니다.대구교구에서는 기구면에서나 인적자원면에서 상당히 앞서서 운용하고있는걸로 알고있읍니다.
▲梁=한마디로 70년대를 교회사적으로 본다면「소용돌이치는 격동의 시대」였다고 보고싶고,70년대 교회사적물결은 한국사회상의 흐름과 더불어 정말 험난한 것이었다고 봅니다.그런데 한국교회 70년대는 성령이 복음주의와 예언주의의힘이 원천으로서 우리 교회사목활동을 끊임없이 생동하는 교회로 이끌어왔다고 봅니다.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좀 지나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감히 한국교회의 70년대는 제2차「바티깐」공의회후에「새로운 성신강립의 시기였다」고 보고싶읍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은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우리 한국교회의 발에 뿌린 씨가 발아를 한것이고,동시에 2백년전 이 땅에 자라난 결실을 걷게된 시긱가 아닌가 보고싶읍니다.물론 70년대 우리교회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볼때 부정적인 측면、역기능적인 측면이 없었던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냉철하게 신학적 차원에서 본다면 비판받을 일이 많을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70년대초에 우리교회가 산업화사회로 몰려가는 새로운 한국사회와의 만남에서 시대으 표지를 읽고 이에 비추어서 정말로 잘 생각하고 교회의 구성을 메시아적백성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수 있게 하지 않았느냐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玄=70년대 한국교회의 위치에 대해 梁회장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읍니다.
그러면 우선 사목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시면서 문제를 다루었으면 합니다.
▲朴=70년대에는 그 어느때 보다도 농어촌본당에 대한 관심이 어느교구를 막론하고 컸다고 봅니다.가난한이의복음 말하자면 저변에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큰교구」에서「작은교구」에 대한 관심도등이 상당히 높았다고 봅니다.
일부교구에서는 잘안되고있지만 미사예물의 공금화문제등의 말이라도 나왓다는것은 가난한 본당·교구에 대한 관심의 표시라고 보겠읍니다.
또한 80년도에 서울ㆍ대구교구가 농촌교구를 지원하는 사업을 계획한것은 특히 고무적이라 봅니다.
▲崔=역사에는 비약이 없다고 봅니다.과거의 교회상은 과거의 사회에 바탕을 둔 교회상아었고 그것은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지적된대로 대사회(對社會)적인 폐쇄성을 지니었지만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통해서 자각을 했고、그래서 변화가 왔다고하는데、구체적인 면에서 변화라면 적어도 거의 모든 교구가 인사관리를 위한 인사행정을 했다는 점입니다.적어도 임의대로가 아니라 어떤 일정한 기준에서 인사관리를 한다는것은 큰 발전이고,그다음 재정관리면에 있어서도 예산을 책정하고 결산을 보고한다는것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내적인 생활면에서 특히 드러나는 것이 전례면인데 제2차「바티깐」공의회의「전례헌장」애로 기도서가 우리말로 거의 나왔고 특별히70년대에서 전례의 기반이 되는 성경 공동번역으로 적어도 성경전서를 한국가톨릭에서 처음으로 갖게된것은 전력이며 큰 은혜라고 보고싶습니다.
물론 여기서 좀더 바란다면 인사관리 재정관리등이 좀더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사목위원회」가 명실사부한 그러한 직무를 수행했어야 되는데 이점이 아직 적응이 안돼서 아직도 성직자중심의 인사관리 재정관리에 그치는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梁=신부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일을 열수가 있읍니다.사실 공의회가 바라는데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한국교회는 눈에 보이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느정도 노력했고 또한 접근하려고 애쓰고이싿고 볼수 있읍니다.그런데 우리교회가 전통과 신앙의 유산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와 주교·사제를 동일시해왔읍니다.그래서 이로 말미암아 사실 신약성서의 복음말씀과는 합치되지 않게 하느님의 백성과 교회지도부 사이에 큰차가 생기고 있는건 사실입니다.뿐만아니라 복음정신에 비추어서 크게 모순된 권력주의가 촉진되고있다고 봅니다.항상 행정기관이란것은 그 조직체와 동일시 할 위험성을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읍니다.우리교회도 이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 돼있읍니다.
쇄신은 표면에 나타난것으로 절대 쇄신되지 않았읍니다.다시 말해서 의식구조의 개조없이는 혁신되지 않읍니다.그러면 한국교회가 70년대에 들어와서 정말 우리가 메타노이아 했느냐,제2차「바티깐」고의회 정신에 따라 지나간 역사의무거운 짐을 안은채 통회했느냐하는 것은 의문스럽습니다.진실하게 역사앞에 성교회앞에 주님 대전앞에서 주교·사제수도자·평신도가 통회했느냐하는 것은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볼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목이란것을 놓고볼때 한국주교회의가「사목연구소」라는것을 설립했을때 저는 정말 기뻐했읍니다.그런데 1년이 못가서 없어지데요.한국교회가 그만큼 사목을 연구할 필요가 없느냐,이문제를 저는 교회에 묻고싶습니다.
▲朴=사목연구소 설정의 시도는 좋았으나 결국 유야무야된것은 가슴 아픈일입니다.그런데 사목기구가 핵심적인 내용에 바탕을 두고 조직을 했어야 되는데 결국 조직을 위한 조직에 그치다보니까 생긴 시행착오인것 같읍니다.
사실 사목행정체계를 시도하려고 한것은 좋았으나 그 역할이나 분야나 기능면에 있어서 아직도 뚜렷한 방향의식이 없는것 같읍니다.따라서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적인 사목행정이 어둡다고 지적할수 있읍니다.앞으로는 조직을 위한 조직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살릴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역할·분야·기능등도 뚜럿하게 해서 분야별로 전문가를 등용해야 하겠읍니다.
70년대초 서강대에서 나온 종교사회조사보고서는 조사해서 프린트돼 나온것뿐이지 그외 종교사회학적으로 사목신학과 결부、사목실천에 반영된게 하나도 없읍니다.물론 하자가 있더라도 우리가 활용하지 않은데도 잘못이 있겠지만 시작하기전 좀더 계획성있게 했더라면 전체 사목자나 신자들이 활용했을 건데 출발부터 잘못됐기때문에 전혀 참고가 되지 않고 있는것 같읍니다.그리고 구조통일고 마찬가지 입니다.CCK에서「구조통일안」이라는것을 냈는데 으도는 참좋았으나 구조통일을 하기전 대신학교 교수신부들과 사목경험이 풍부한 사제들이 보다더 신학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다루었으면 산당히 효과가 컸을것입니다.
▲崔=교회는 어떤 이론이나 제도가 아니라 생활이라는것이 실제로증명된것이 몇가지 있읍니다.70년대초 영성체문제를 가지고 손으로 할것이냐를 가지고 많이 따졌읍니다.
마치 손으로 하면 세상이 뒤집힐것 같이 생각했는데 70년에 후반에 들어와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입으로하는 사람이나 손으로 받아서 하는 사람이나 모두다 경건하게 하는것이 증명이 됐고,이제는 생활이 됐읍니다.
그리고 사목연구소대신 각교구차원에서 연수원을 두고,연수회를 통해서 많은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것은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玄=사목적인 측면에서 볼때 한국교회는 구조적인 면에서 전반적인 통일을 시도해봤다고 볼수 있읍니다.사목지침서 발표는 주먹구구식의 사목 행저에서 크게 발전한것이라고 볼수 있는데 각교구에서 사목지침서를 발표하도록 한것은 가톨릭시보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그러나,통일된 구조의 사목위원회나 사목협의회는 전체가 참여해서 연구합의돼야하는데 너무나 성직자중심의 일방통행식 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전반적인 사목행정이 비과학적이며 현실을 제대로 분석,대처해나가지 못하고 있읍니다.또한 모든것이 단속적이며 단편적입니다.계획서의 앞뒤가 아무런 유기성도 없고 횡적인 연결부족으로 70년대에는 많은 것을 시도는 했으나 퍽 미숙했다고 봅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복음선교적 측면에서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복음선교가 교회의 근본사명이니까,사목자체도 복음선교를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보겠읍니다.이 광범위하고도 중요한 복음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갖가지 노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으면 합니다.먼저 사회참여를 위한 복음선교라고 할까、사회참여문제가 70년대 한국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측면이라고 보겠읍니다.이 문제에 대해서 물론 우리가 공의회정신에 입각,많은것을 시도해봤다고 봅니다.그러나 이해가 잘 되지않는점도 있었고 처음으로 시작하는 일이기때문에 비판과 시련도 있었읍니다.우선 이 문제부터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梁=정말 이것은 우리 평신도의 고유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올바로 이해하고있는 신자들이 적다고 봅니다.우선 사회참여라는 말이 많은 이들에게 거부반응등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은 오랜동안 폐쇄적인 사목방법ㆍ개인구령에 집착한 신앙에서나온 사고방식이라 이해됩니다.정말 우리신자들이 본질적으로 이세상에 파견된 존재이며 우리가 있는 존재(신자라는 존재)그 자체가 선교인데 신자는 내가 있는 현장,다시 말해서 신앙의 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있는가 하는것을 깊이 반성해야할 점이라고 봅니다.신자느 본질적으로 사회참여를 하고있는것이며 사회참여를 하지않는 신자는 있을수 없고 그 신앙도 있을수 없읍니다.왜냐하면 신앙의 현장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현장을 성당안으로 알고있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교회가 사회참여를 한다기보다는 교회의 사회적증거、가령 우리가 애덕하면 개인적인 측면만 생각하는데 사회적애덕·사회의 사랑문제도 중요합니다.그래서 우리가 사회적사랑을 가지고 사회적 증거를 하는것이 사회참여 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사회적증거를 하려고 할때 사제직ㆍ왕직ㆍ예언직수행을 하게 되는것이고 교회자체가 사회적증거를 하려고할때 교회의 사회적비판기능이 나오고 또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 문을 열고 사회와 더불어사는 교회가 되고 그 사회안에서 인간에게 이생의 의미와 삶의 희망을 주게되는 것입니다.따라서 한국교회는 한국땅에서 한국백성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朴=저는 사회참여를 사회복음화로 알아듣고 싶어요.결국 복음은 실제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것으로 볼때 그리스도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사신 새로운 인간상을 구현했다고 볼수 있겠읍니다.그러면 70년대에 활발히 전개돼온 교회의 사회참여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복음화였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한다고 볼때 애덕의 완성이라고 보겠읍니다.
그런데 인류구원의 보편적인 성사의 모습을 드러내기위해서 시작했던 사회참여가 어떠한 방법과 한계의 차이때문에 견해를 달리하면서 70년대후반기에 일체가 되지 못한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80년대에는 어떻게든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읍니다.
▲崔=도대체가 사회를 떠난 교회가 존재할수가 없는것이고、복음의 현장이 바로 사회인데、왜 사회참여라는것을 외쳐야되는가 그 자체를 우리는 이해해야 될것같읍니다.
30년대후반「리용」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문제를 위한 특별연수회가 항상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런 유명한 말씀을 하신분이 있었읍니다.『어제의 자선이 오늘의 의무가 되었다.따라서 오늘의 자선은 내일의 의무가 될것이다』이것은 사회보장제도가 없을때 교회는 고아원이다 양로원이다 병원을 실시했읍니다.이에 사회는 시회본연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사회안에서 병원이 생겨나고 사회보장제도·연급재도등이 생겨났던 것입니다.그때 교회는 이것을 하나의 자선행위로 했지만,오늘에 와서는 한사회의 의무가 돼있읍니다.노약자·고아를 돌보는것,소외된 인간을 보살펴주는것은 인간의 공동사명이며 인간의 공동사목이기 때문에 교회는 거기에 앞장설 의무가 있을지언정 뒤쳐질 권리가 없읍니다.
오늘의『교회가 뭐 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있겠는냐』하고 비판받는것을 바로 교회가 할때 그것이 내일을 위한 교회의 사명이라고 복고싶읍니다.
오늘이 마침 인권선언일입니다.요즘 우리사회에서도 인권문제가 대두도지만 그누구도「여건」때문에 인권을 크게외치지 못한다면 교회가 바로 이「자선」을 할 의무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그러면 다음세대에는 사회전체가 이것을 의무화해서 그때는 교회가 외칠 필요도 없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현대사회는 이제「공존의 시대」라고 봅니다.이 공존의 시기라는것은 서로 견제해야 될것입니다.교회안에서의 사회성이어서도 안되지만 교회가 사회를 지배하려고해서는 안될것 같읍니다.
물론 삶의 지혜라는 것은 항상 요청되지만 그러한것이 겁이낫서 말하자면 진리를 선포하는데 주저를 한다면 교회는 자기사명을 저버리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梁=사회참여문제를 놓고 한국교회가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읍니다.그런데 우리가 신학적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룬적이 없는 것 같읍니다.복음선포 복음화 그리고 교회의 자기모습을 놓고 신학적으로 깊이 대화하면 메타노이아를 이룰수 있다고 보는데 이러한 노력의 부족이 정말 아쉬웠다고 봅니다.그리고 사회참여에 있어서 열성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잘못하여 특히 신자들사이에 영성을 상실할때 교회적인 사회참여가 아니라 사회활동으로 그칠 가능성이 사회많읍니다.현대의 영성은 과거의 전통적인 영성을 얘기하는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당안에서 기도하고 그치는 영성이 아니라「참여의 영성」이랄까,사회안에서 크리스찬으로서 자기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는,말하자면 일상행활 그 자체가 영성이 안닌가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사회참여를 할때 영성을 더깊이 해야 하고,그럴수록 우리는 성사중심의 생활을 하고 거기서 힘을 얻어야 할것입니다.
▲玄=사회참여는 그어휘때문에 독특한 의미를 느끼게 하지만 편신도들은 크리스찬으로서 으식하고 사회활동을 하면 자동적으로 사회참여가 되는데 그러한 의식이 없이 교회활동과 사회활동을 분리하는데서 완전히 사회참여한다는 의식이 부족할것같읍니다.그래서 교회의 이름으로 얘기하지 않으면 사회참여가 되지않는걸로 알고있읍니다.주교단,사제단성명등이 나와야만 이것이 사회참여를 하는걸로 착각하는것 같읍니다.
교회안에서의 이같은 착각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정교분리인데,왜 교회가 사회에 간섭을 하느냐하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따라서 이문제는 교회안팎으로 계몯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崔=레오13세의「대헌장」、특히23세의「지상의 평화」、바오로6세의「제민족의 발전」등등은 모두 對사회헌장이고 교회의 지침입니다.제2차「바티깐」공의회의「사목헌장」도 마찬가지구요.이렇게 전체교회가 대사회에 대해서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 사회안에 사는 신자들의 생활지침을 말씀하셨다면 한국 주교단의 교서는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한국교인들에게 해준 사회생활의지침서라고 보고읍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항상 교회에대해서 도전적으로 나올때 교회는 표명하게 돼있는것이지, 교회가앞선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 언제 대사회적인 이런것이나왔습니까? 한국사회에서 요청될때 나왔읍니다.
우선 70년대 유신헌법이 선포되면서 그 다음에 인구정책에 따라서 73년도에 모자보건법이 통과됐습니다. 그때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인간의 생명」은 이미 68년도에 나왔읍니다만) 한국주교단은 한국실정에서 교인들의 양심에대고 어떤 지침을 내려주었던 것입니다. 그건 정부에 대한 도전이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안에서 교회는 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수있도록 양심선언을했던것 뿐이라고 보고싶습니다.
▲玄=다음에는 복음선교에서 절대로 불가결한 문제로서 교육문제가 70년대에 중대한 문제로 등장했다고 생각됩니다. 교육은 사실 평신도 자신들의 화습의욕이 강렬했고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봅니다. 특히 수도자는 공부하는 수도자로서 두드러지게 노력했으며 사제단도 계속 연수회를 가지다가 작년에 특별히 서울교구에서「아죠르나멘또」를개최, 이것이 사제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지만 일반 평신도에게 준 영향이 굉장히 컸다고봅니다.
결국모든면에서 교육열이 증가됐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장래가 희망적이라고 볼수있을것 같습니다.
▲崔=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고무적이라고 보고싶읍니다. 우선 70년대에들어오면서 많은피정센타들이 세워졌습니다 또주교ㆍ신부ㆍ수도자ㆍ평신도할것없이 온교회가 교육이 필요하다는것을별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시도한것으로 알고있읍니다.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는아주이상적으로는 되지않았다고하더라도 적어도 어떤계획하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것도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그리고교육에 있어서 신심생활이중요하다면, 신심생활의 교육을위해서 꾸르실료ㆍMBW성서모임등이 아주큰 기여를했다고확신하고 싶습니다.
▲梁=한국에서 성서모임의 역할과공로가 지대합니다. 한국교회에서 복음의 원천인 성경에대한 관심, 공부, 묵상, 영성등이 성서모임에서 이루어졌고 72년도부터 대구지방에서 젊은신부들이화요모임, 수요모임, 서울에서 수요모임을통해서 매주한번씩 신부들이모였고, 이것이 신자들과 대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서모임을통한 신자들의 열의에비해「주해서」하나제대로 없는 현실이 걱정입니다.
▲朴=성경연구에대한 열의가 높아지고 교육열이 증대된것은 확실히 70년대의 큰 성과라고 볼수 있읍니다. 성경은 크리스찬의 생활지침서인데 오히려 늦은감이 있으며 하루빨리 성경해설서 출판이 요청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육열에 비해서 시설미비도 있으나 무엇보다 강사 초빙이 너무나 어려운 난점이며 아직도 교재난에 허덕이고 있는현실이 문제라고 봅니다. 성직ㆍ수도자평신도 모두가 성서연구에대한 갈망이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땅에 우리에게 오셔서 바로 살고계시다는 이러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리고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20세기의 성서라고하는 제2차「바티깐」공의회문헌에대한 연구가 오늘을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침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문헌연구가 거교회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崔=지금까지성인교육에대해주로얘기했는데 자라나는 내일의 교회를 이끌어갈 청소년을 포함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도 아쉬운 것은 지도자문제입니다. 따라서 일반학교에 국정교과서가 있듯이 주일학교에도 통일된 주일학교 교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梁=지도자가 다방면에서 정말 요청된느 때입니다. 따라서 지도자양성은 수도자 평신도들이 노력해서 중간위치에 올라서서 우리문제를 우리스스로 해결해야할 것 같습니다.
▲崔=그래서 신학교의 대학원논문또는 졸업논문등을 취사선택해서 한 강좌를 담당할수있다고 봅니다. 좀 미숙은하겠지만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중간계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玄=교육문제는 확실히 고무적인현상임은 분명합니다만 이현상이 아직은 산발적이라고 봅니다. 이산발적인 것을 앞으로는 교육장소문제, 지도자문제등 모든것을 체계적으로 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복음선교에서 가장원초적인 역할을 할수있는 가장큰 문제는성소에 관한 문제라고 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성직자부족이 위급한 상태까진느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심각한 문제이며 한국에서도 앞으로 사제부족이 예상되고있습니다. 성소의 현장은어떠하며 그타개책등을 얘기했으면합니다.
▲崔=좁은 의미에 있어서 성소는 수도성소ㆍ사제성소로 대분해서 생각해볼수있겠읍니다만 신학교과정에 대해 제2차「바티깐」공의회후 사제양성기본지침서가 나왔고, 또한 여기에 준해서 한국주교단이 기본지침을 낸바있읍니다 이기본지침의 첫부분에서 성소계발에대한 문제가 나오고 있읍니다. 사제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신자들 가정에서 나오는것이기 때문에 신자가정이 성화돼서 거기에서 성소를 어떻게 키워야되겠는가하는 근본적인 문제가다루어졌고ㆍ그다음에는 계발된 성소를 어떻게 흡수해서 어떤 과정으로 교육시킬것인가이고, 셋째단계로는 이미 일정한 교육이끝난 사람들에개한 계속적인 교육, 말하자면 사제품을받은 다음에도 계속되는 교육등 3단계로 볼수있겠읍니다. 70년대를 국한해서볼 때 성소계발문제에 있어 대구ㆍ서울교구에서「예비신학교」라는걸운영해서 상당히 효과를 거두고 있는것으로 알고있읍니다.
그리고 신학교육으로서는 소신학교가6년제에서70년대로들어오면서중학교과정이 없어져 3년제로 된것이 변화였고 대신학교에서의 큰 변화라고 한다면 72년도에 신학대학의 문을개방, 공부를원하는 수도자ㆍ평신도들에게 청강내지는 정규교육을 받을수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것이 제도적으로 큰 변화라고 봅니다.
그다음에 후속적인 교육문제 (사제교육) 도 아직구체적인 교육계획은 수립돼있지않지만 적어도 교육은하고있는상태에 있다고봅니다.
소신학교는 일반고등학교과정이 때문에 제가 언급하기가어렵고, 대신학교에서 키리컬븀이 상당히변했고 생활지도도 여러가지로 변화가있었습니다.
그리고 70년대에 들어와서는 신학교과서가없었다는것이 큰흠이고 어려움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공통성입니다.
▲梁=성소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학생 하나하나가 정말로소중합니다. 따라서 이 고귀한 보배들에게 본당신부들이나 신자들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보살펴주어야한다고 봅니다. 물질만능의 이사회에서 그 누가 십자가를 쉽게지려고 하겠읍니까. 이들신학생들에게 본당신부와 신자들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게 중요하다가 봅니다. 그리고성소릐 발은 가정입니다. 성소는 신자가정에서 나온는것이기 때문에 신자가정안에서 자녀들이 사제가되고싶다, 수도자가 되고싶다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朴=신학생후원은 교구차원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고있어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신학생후원회는 있으나 수녀학생후원회가 없어 좀 섭섭한기분이 듭니다. 차제에 수도자를위한 후원도 강구되었으면 합니다.
▲玄=성소의 계발에는 어느면에서도 한계가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따라서종신부제직을 한국에 도입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연구검토되었으면 합니다. 아직도 지방에는 공소가 많은현상이고, 도시의 경우 본당증설에따라 사제부족 경비의 어려움등으로 도시의 공소 필요성 증대에따라 종신부제의 역할이 더욱요청된다고 봅니다.
▲崔=종신부제는 평신도가아닌 성직자이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서의 종신부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제는 시대적인 필요에의해 나오는것이기 때문에 현직제만을고집하는것도 바람직하지못하다고 봅니다. 대신학교운영에 있어서 학부는 현재와같이 두곳에서 운영하더라도 연구과를 통합, 교수진을 최대한으로활용하면이사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梁=지난봄 발표된 부산교구 김승주신부의 석사논문에 따르면 한국교회공소회장은 부제직이었습니다.
▲梁=종신부제가 중세기에는 경리 (재정관리) 를 담당, 주교이상의 권한을 행사했읍니다. 그런데 실제 성서신학적으로보면 부제부터 성직자입니다. 그리고 부제직은 봉사직으로 봐야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다원화돼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소그룹단위의 봉사자가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또한 현재의 본당은 중세기 봉건사회의 체제를 답습해가고 있는듯한데 앞으로 크게 달라져야할것같습니다. 따라서 종신부제직을 효율적ㆍ경제적 측면에서 보지말고 사목신학적성서신학적인 입장에서 연구돼야하리라고봅니다.
현재 부제직을 사제품을 받기전에 거치는 단계로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점은 시정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영원한 부제로 남는 부제직이 꼭 필요하다고봅니다. ▲玄=복음선교가 한국에서 잘되는것은 분명합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처럼 가톨릭이 활발히 선교가 잘된는곳도 드문것 같읍니다. 어쨌든 70년대에 한국가톨릭이 1백만을 돌파한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런지요? ▲梁=한국사회가최근에돠서경제성장에 있어서 지수 (指數) 에 너무 집착, 많은 물의를 야기시켰다고 봅니다. 물론 신자증가가 바람직하고 실제 복음선포의 외적 현상으로 교회에서도 숫자증가가 중요하지만 교회는 너무 숫자에 치우쳐서는 안될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국교회는 크게 확장되고있지만 문제는 교회에 들어온후 사후관리가 잘안되는데 있는것 같읍니다.
또한최근에는 자기발로 스스로 찾아들어오는 이들이 많은것같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한마음으로 노력한다면 더욱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봅니다. ▲朴=한국가톨릭신자가 1백20만에 이르러 숫자적으로 많은것같이 보이지만 아직도 전국민중 3%에 불과한 미미한 실정입니다. 그런데 숫적증가와 더불어 늘어나는 냉담자ㆍ행불자ㆍ「주일신자」등 문제점이 많다고 봅니다.
따라서 80년대에는 이러한 문제를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하리라고 봅니다.
▲崔=해결책보다는 분석적으로 이해를해야하리라고 봅니다. 梁선생님도 수치에대한 농간에 대해서 지적을 하셨는데, 우리가 1백만을 돌파했다면 이 신자들이 어떻게 구성돼있는가를 알아내야하는데 앞에서도 지적됐듯이 종교사회조사에서 이런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조사에서 대사회안의 조사까지 겸해서 냉담자파악과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까지 파악됐어야만 80년대에 어떤 대책이 나올수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질적인 저하문제도 걱정스럽습니다.
▲玄=복음선교에있어서 매스콤의중요성을 간과할수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교회가 매스콤활용에 많은 취약점을 지니고있다고 봅니다. 교회가가진 매스콤기관도 극히적고 매스콤이 용선교에서도 뒤지는 것 같습니다.
▲梁=지금도 그렇게 앞으로도 정보화시대입니다. 사회가 전부 정보화되어있기때문에 정보화사회에있어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지대하고 역대교황들이 여기에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바도 있습니다.
앞으로「복음을 정보로 전달해야한다」고 볼 때 매스콤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수있는데 경향신문 창조등의 소멸은 가슴아픈일이여 현재 가톨릭시보 경향잡지 사목 신학전망등 정간물이 발행되고있으나 발간만이 결코 능사가 아니며 보급에도 힘써야 할 것으로 봅니다.
또한 매스미디어가 물론 교회법안에서 신앙의 유산을 지켜야되겠으나 보다더 자율성이 부여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적어도 매스미디어, 그중에서도 신문이라고함녀 교회의 비젼을 제시해야한다고 봅니다. 비젼을 결고 거기에 접근하는 작업이 필요할것이다.
▲朴=독자들이 매스콤종사자들의 고충을이해하고 협조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근 편수부에서 발갈한 전도지「너와 나의 하느님」도내용면에서는 훌륭하지만 제대로 활용을 하지못하는 것 같습니다.
▲梁=서울장위동본당에서 실시한 선교2백주년기념사업앙케이트에서「가톨릭방송국설립」을 둘째로 손꼽았읍니다 그러니까 신자들이 우리의 방송국 설립을 굉장히 바라고 있는 것 같읍니다 방송국 일간신문사등을 가지는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가지지않고도 할수있는기호는 이분야 종사신자들에게 사명의식을고취, 삼여을 다하도록하면 방송국신문사들 가지지않아도 될것같읍니다.
▲崔=우리가 방송국을 갖는다, 신문사를 갖는다고하면 결국 사회와 경쟁자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스스로와 담을 쌓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원리에서 우리가 노력해야되는데 교회가 방송국을 갖는다고해서 특별한 방송을 할수없을것입니다. 각방송국에서 가톨릭시간을 줘도 제대로 메꿀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경비를들여 독립적인 방송국을 갖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읍니다. 가톨릭국가라면 당연히 방송국을 갖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읍니다. 가톨릭국가라면 당연히 방송은 가톨릭쪽으로 나갈것이고 이사회가 그렇치못하다면 운영의원리에서 교회라고 벗어날수 없읍니다. 그러면 우리의 약한 힘을 가지고 운영의 원리를 어떻게 쫓아간다는 것입니까. 역부족입니다. 다시말해서 사회가 기업체를 갖고있으니 우리천주교회에서도 기업체를 갖자고 하는것과 똑 같은 얘기입니다. 방송국은 하나의 기업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매스콤종사자가 크리스찬적인 사명의식을갖고 활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朴=교회 매스콤의 역할이 복음화에있다면 현재 출간되고잇는 기존 출판물을 1백20만 모두가 읽는 것이 가장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두가읽고 이에따라 생활하다보면 복음이 증거될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독자증가운동이 꼭필요할 것 같읍니다.
▲玄=끝으로 80년대를 전망하는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80년대는 우리가 선교2백주년을 맞이하는 의미있는 세대입니다. 또한 지금까지살퍼본 70년대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80년대는 더욱큰 일들이 놓여있다고 보겠읍니다. 특히 선교2백주년에 대한것이 교회내의 관심사인 것 같읍니다. 2백주년을과연 어떻게 맞이하는것이 바람직한지 얘기를 나눴으면합니다.
▲崔=80년대라고하면 70년대를 이어받는다는것에서 우선 떠나서는 안된다고봅니다.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고봅니다. 70년대를계승, 그결실을 거두면서 90년대를준비하는것이라고생각됩니다. 2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행사는 반드시어떠한우리들의 성과의 결론으로서 이루어지는행사가되어야한다고봅니다. 행사를위한 행사가 되어서는안되겠다는것입니다
예를들어서 84년에 어떤 행사가 있다면적어도 2~3년전부터 준비된 결실로서 그행사가 치루어져야된다고봅니다
그래서 우선 제언하고 싶은 것은 84년도에는 적어도 한국공의회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이미 서구 각국에서는 공의회가 끝나면서 5년내지 10년안에 각국이 공의회를 열었읍니다.
▲梁=선교2백준녀기념문제는 이미 70년대초에 주교회의에서도 논의된걸로알고있읍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곳곳에서 제기되는 안건들을보면 대부분 행사위주의 계획들뿐으로 자칫사면 행사로만 끝날우려가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미 최신부님도 말씀하셨지만 선교2백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공의회가 정말소망스럽다고 봅니다. 2백주년을 맞아 한국이라는 토양을 놓고 깊은신학적반성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朴=행사중심의 선교2백주년기념은 여러면에서 재고돼야될것같읍니다. 핵심을 놓쳐버리는 행사위주로 그치지않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지닌 가치를 표현할수있는 행사를 거교회적으로 합심해서 새악해봐야할것 같읍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호의 핵심이 바로 교회의 반성ㆍ자각임을 생각할때 한국교회의 자체 반성은 반드시 따라야 되겠고 반성을 근거로 80년대 교회상 수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玄=최근 만국성체대회가 마치 선교2백주년행사의 전부인것같은 인상을주고 있는것같은데 이의 유치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崔=제가 볼 때 그 문제는 전문적인 분야로서 우리가 유치하고싶다고해서 유치되는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대단한 지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에게 정말로저력이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봐야하겠읍니다.
▲梁=결국 교황님을 모시고 성체대회를 열고싶은것이 신자들의소망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문제는 정말깊이 생각해야할것같읍니다.
▲朴=선교 2백주년을기해서 한국교회사의 연구도 철저히돼야하겠읍니다. ▲崔=초창기의 교회상도 문헌적인비판이 돼야할것이고 전례적인것등 여러가지가 밝혀져야겠으며 그다음에 발전과정과 여러면에서의 연혁을완전히 밝혀내야 할것입니다.
▲朴=교회의 융화나 토착화는 뿌리를모르고서는할수없는것아니겠읍니까? ▲梁=뿌리를 찾자는것을 두가지측면으로 보고싶습니다.
첫째는 한국교회 초창기를찾는뿌리, 여기서 한국교회사정립문제가 나온다고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우리신앙의근본적인 뿌리인 예수그리스도를찾자는것입니다. 따라서주교ㆍ신부들이그리스도중심이돼야하겠고, 신자들은신부에게만 매달리려고 생각하지말고 신자들도 그리스도중심으로 해서 하느님의 백성인주교ㆍ신부ㆍ수도자ㆍ평신도모두가우리의 기본적인뿌리이며 우리의원천인예수그리스도를 찾는 노력을해야겠읍니다.
▲玄=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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