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부제프로그램이 갑자기 번지기 시작 한 것도 70년대였다. 따라서 교회 내에는 부제직이 회복됐다는데 이것은 해당자들이 나중에 사제가 되지 않고 부제가 될 수 있는 길을 가능케 한 것이었다. 부제들은 병자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간호하고 몇몇 서사를 집행하며 강론하는 일 등을 맡게 됐다.
비록 바티깐 당국이 되풀이해서 그 취급을 제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사제 서품문제는 70년대를 줄이어 거론돼왔다. 그래서 성공회에서는 여성을 사제서품하기 시작했으나 바티깐은 그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70년대 10년 동안 인공산아제한을 반대한 교회의 가르침 즉 바오로 6세의 회칙「인간의 생명」(후마네비떼) 은 여전히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앤드류 그릴리 신부와 같은 몇몇 사회학자들은 이 문제를 교회쇠퇴의 요소로 보았다.
복음화문제는 가톨릭신자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크리스찬들외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래서 보수주의 및 복음주의 교파들은 1974년에 세계복음화대회를 개최했으며 1974년 「로마」 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는 이 문제를 한 달 동안이나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중남미 주교들 역시 1979년 멕시코 「푸에블라」 에서 가진 총회에서 복음화문제를 논의 했다.
바오로 6세는 교회내의 일치를 계속 추구한 것과 함께 가톨릭과 타종교와의 관계를 가까이하려 노력했으며 따라서 각 종교지도자들과 만나 회담을 가지기도했다.
바오로 6세는 성공회와 신학위원회 설립을 촉구했으며 가톨릭과 유태교간 상호 종교이해를 위한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1975년 설립을 본 범정교회위원회는 이보다 10년앞서 상호파문조치를 철회한후 취해진 가장 중대한 가톨릭과 정교회 화해의 거보로 불려졌다.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두 교황은 동방정교회와의 재일치를 이룩하는데 정교회 지도자들과 중요한 진전을 가져오는데 노력했다.
1979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터키를 방문하는 동안 사상 처음으로 교황은 정교회 태주교가 집진하는 하는 미사에 참석하고 정교회 총대주교는 교황의 미사에 참석하는 전례를 낳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콘스탄티 로플」의 디미르리오스 1세 총대주교는 양교 간에 가로놓인 신학적 교리적 분열 요소들을 제거하기위해 양교합동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밖에 여타 종교영역에 관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라진 크리스찬들간 공동으로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다 중대한 교리적일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70년대의 도덕적 불안에 직면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과 사회 불의는 종교계뿐 만아니라 세속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반복해온 주제였다. 특히 세계인구의 해로 정해졌던 1974년은 사회정의와 국제적인 발전 및 식량위기 등에 초점을 모으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교황은 풍부한 국민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개선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음을 여러 번 강보했으며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도와 줄 것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서 인도의 빈민들 속에서 봉사해온 마더 데레사 수녀가 빈 약자들에게 헌신해온 공로로 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데레사 수녀는 이 賞을 자신이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쳤다.
70년대 초에 발발했던 월남전은 70년대 말에 와서 수백만의 월남 및 여타 동남아국가들의 난민을 탄생시켰으며 이 난민문제는 사회적 의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1973년 월남전이 종식됐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안도를 표명하면서 환영한 반면 反戰 주의자들은 종전이 너무 늦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그 종전은 단지 미국의 개입이 끝난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월남에 대한 우려가 다시 중대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5월 사이공정부가 함락된 후였다. 그 결과 수백만의 월남인들은 부서질 듯한 보트들로 탈출을 감행했으며 수천 명의 캄보디아인들은 자국 내에서의 전쟁과 기아 등으로 무참히 죽어갔다.
이에 따라 가톨릭국제기관들은 또 다른 대학살을 예방하기위한 노력으로 난민들에게 식량과 거처를 마련해주는 일에 나섰으나 이들은 때때로 인도차이나 정책으로 인해 방해를 받기도 했다 .
인권침해문제는 중남미 주교들이 여러 나라에서 정치에 개입하게 만들었다. 그 예로 엘살바도르에서는「산살바돌」 의 로메로 대주교가 자국 내 가난한 사람들과 박해받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수호하고 나섰으며 브라질의 까마라 대주교는 인권을 스스럼 없이 주창했다.
1970년대 칠레에서는 교회가 좌ㆍ우익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즉「산살바돌」애엔데 대통령 재직시에 교회는 정부와 협력한다고 우익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그가 군정에 의해 쫓겨났을 때 교회는 군정과 협력한다고 좌익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중남미주교협의회 (CLAM) 는 1979년도 멕시코「푸에블라」에서 제3총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참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와 사회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중요연설에서 그리스도를 혁명가나 정치지도자로 다루는 신학이론을 단호히 경고했다.
교황은 교회가 불의를 대리해서 투쟁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교회를 어느 특정의 사회경제문제해결과 관련 지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총회에서는 해방신학에 대한 토의와 함께 빈자들에 대한 관심이 주 의제로 다루어졌으며 특히 빈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1970년 북에이레에서는 베르나뎃 데블린의원을 투옥한 후부터 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했으며 1971년은 1월 30일 「런던데리」 대항전에서 13명이 사살되고 10명이 부상하는 「피의 월요일」 로 시작했으며 이 사건은 폭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에이레 주교들은 폭력 확대화 테러행위를「야만주의적인 범죄」 로 고발하기로 했다.
북에이레「벨파스트」의 두 여성이 평화운동을 창시한 공로로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그러나 종파간의 폭력사태는 계속됐다.
지난해 9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에이레를 방문했을 때 교황은 폭력 중지를 호소한 한편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 정부와 각 개인의 책임임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북에이레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동에서도 종교와 정치 간의 충돌이 평화를 파괴했다. 비록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1979년 5월 26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고는 해도 이 문제가 석유가 풍부한 중동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이란 학생들은 미국대사관을 습격, 미국인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70년대가 막을 내리면서 회교국가와 여타국가간의 충돌은 또한 80년대를 재앙으로 몰고 갈 것처럼 보인다.
70년대 말에 확대된 테러와 인질행위는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이태리 수상이었던 알도 모로 씨가 피랍돼 그의 생명을 구하려는 교황의 온갖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1978년 봄 살해당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인들이이란에 인질로 잡힌 후 회교지도자 호메이니 몽과의 협상을 시도했으나, 호메이니는 교황의 호소를 거부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70년대의 가톨릭교회는 역사상 유례없이 내적으로는 공의회 개혁을 밑바탕으로 현대교회의 진로를 재정립하려는 힘겨운 진통의 연속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전쟁과 폭력、 인권침해와 부의 불균형은 이야기하는 각종 문제를 사전에 방지、 義와 진리 그리고 평화에로 입각한 세계복음화를 이룩하기 위해 전력투구한 10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완결 짓지 못하고 이 세계의 불안과 암운 속에 함께 맞이한 80년대 - 불의와 거짓 그리고 폭력이 팽창되는 만큼 그 역할도 증대되고 분주한 10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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