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별이신 어머님 영생 얻는 길을 우리게 가르쳐 주심을 뵈옵고 즐기게 하소서…」
제주민란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 「이재수의 난」. 한국교회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이 영화 내용과 어울려 부분적으로 묘사됐던 이 영화에서 관심있게 지켜본 신자들은 10대 댕기머리 소녀가 대여섯살 되는 꼬마들을 옹기종기 모아높고 성모성가를 가르치는 장면을 기억할 수 있다. 단편적으로나마 박해시대 신자들의 성모신심을 알아챌 수 있는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성모님에 대한 한국 교회 신자들의 사랑은 다른 나라 교회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각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푸른군대, 성모의 기사회 등 성모신심 운동단체들의 활발한 활동들이 그러하고 다양한 묵주기도 운동 등을 통한 성모님께 대한 신뢰는 신앙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교회사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와 성모님과의 인연은 초기부터 매우 특별함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 첫 사제 김대건 성인이 중국서 귀국할 당시 서해 바다 풍창 속에서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기도했다는 것은 이미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의해 밝혀진 일화다.
신해박해 등의 기록에서 권상연(야고버) 윤지충(바오로) 등은 모진 고문을 이겨내기 위해 「예수 마리아」이름을 수없이 되뇌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1801년 순교한 홍낙민의 경우 배교했다가 이를 취소하고 순교한 바 있는데 이것은 그가 매일 묵주기도를 빠지지 않고 바침으로써 성모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보내신 것이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같은 특수한 예가 아니더라도 초기 한국교회 신자들 대부분은 매일 묵주기도를 5단씩 바치고 주일이면 15단씩 바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성모신심의 배경은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영향과도 무관치 않다는 추측. 17~18세기, 성모를 통해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전적 위탁의 마리아 신심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갔듯이 한국 신앙선조들 역시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들이다.
공식적으로 한국교회가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에 의해 원죄없는 잉태 성모를 한국교회 새 주보로 모시게 된 것은 이러한 전통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1861년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조선 교구내 각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을 성모마리아에 관계된 호칭으로 명명토록 하는 등 한국교회 전 지역을 성모님 보호아래 있도록 했다.
명동성당 역시 1898년 원죄없는 잉태 성모님께 봉헌됐으며 「성모 원죄없는 잉태」교리 선포 1백주년이 되던 1954년,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5월 6일 명동성당에서 한국 겨레와 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맡기는 예절을 거행한 바 있다.
오늘 2000년 8월 15일, 대희년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한국천주교회는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한국과 한국교회를 다시한번 새롭게 봉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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