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외적으로 제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와 연결지어 「복음생각」을 하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나라에는 「인생」을 「나그네 길」에 비유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걷는 길인데도, 이 「나그네 길」의 출발지와 출발시간 그리고 목적지와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은 우리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사결정과는 상관없이 정해졌고 정해질 것이다. 엄연한 이 사실을 마치 없는 듯이 생각할 때 우리 인생 길에는 많은 혼란이 몰려온다. 그리고 인생여정의 처음과 끝만이 아니라, 길고도 짧은 그 중간과정에서도 우리 각자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 주일의 제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와 「생명의 빵」에 관한 복음서의 말씀은 이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여정」에서 우리가 방황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올바로 도착할 수 있는 길로 초대한다. 특히 어떤 인생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초대한다.
엘리야 예언자의 「피신」이자 「순례」였던 여정과 그 여정 중에 먹은 「천사의 빵」
엘리야와 같이 위대한 예언자도 처절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 오늘 주일의 제1독서(1열왕 19장)는 이를 잘 말해 준다. 이 실패는 바알 예언자들을 대항하여 대대적 승리를 거둔(바로 앞장인 1열왕 18장) 직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더 뼈아프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바알 예언자들을 처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세벨 왕후가 분노하여, 예언자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미친 듯이 그를 찾자, 갈멜산 위에서 그 자신만만하던 엘리야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초라한 모습만이 보인다. 그는 두려워 떨며 목숨을 구하려 급히 도망친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브엘세바를 지나 어느 광야에 다다른다. 거기서 그는 얼마나 낙심하였던지 차라리 죽여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 『오, 주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는 지쳐 쓰러져 잠이 든다. 이렇게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잠든 엘리야에게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구원낸 과자「빵」과 물』을 주신다. 그러나 너무나 지쳐있던 엘리야는 그것을 먹고 난 후에 다시 쓰러져 잠이 든다. 그 때 주님의 천사가 그를 흔들어 깨우면서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어라』하고 격려하신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먹고 마신 후 힘을 얻어 엘리야는 사십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산」(=「시나이 산」의 다른 이름)에 이른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독서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다음 대목을 읽어보면, 이「호렙산」에 가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다시 체험하고 용기를 얻고 다시 돌아와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다한다. 호렙산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난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곳이었다. 엘리야는 결과적으로 자기 조상들의 신앙의 원천으로 성지순례를 간 것이었다.
정리해 보자. 방금 우리가 살펴 본 이야기는 「엘리야 예언자의 소명 위기와 그 극복」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대목이다. 엘리야는 자신이 처한 「소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도망」을 통해서인가? 아니다! 그 「도망」은 엘리야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망」이 아니라 「순례(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러나 엘리야가 처음부터 「순례」를 의도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엘리야는 다만 「도망」을 하고 있었지만, 그 「도망」을 당신과 만나는 「순례」로 바꾸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었다. 엘리야는 의식하지 못하였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엘리야를 당신께로 「끌어당시겼던」것이다.(참조: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한 6,44). 처음에 엘리야는 「도망 길」에서, 그 「위기」중에 자신이 「홀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를 예언자로 부르셨던 하느님께서는 늘 그와 함께 하고 계셨다. 심신이 다 핍진하여 쓰러져 있던 그에게 『천사의 빵』을 내려 주시면서 당신께로 끌어 당기셨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그 「음식」으로 엘리야는 「순례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고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생명의 빵」에 대하여 말하는 오늘 복음도, 인생을 여러 위험이 뒤따르는 「순례」라고 볼 때에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떠나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순례에도 갖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 순례의 여정 중에 우리도 때로는 엘리야처럼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청할 만큼 지켜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당신께로 다가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 『나는 생명의 빵이다.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오늘 복음의 끝 구절). 성체성사에 관하여는 다음주일 「복음생각」때에 묵상하겠다.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어라』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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