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뢰 : 어린이가 어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도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 겸손을 가진다면, 그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과 사랑에 대하여 자기를 온전히 맡기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그분은 전능하시므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이룰 수 있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것이면 무엇이나 주시는 분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매달리는 것이 신앙에 포함된 신뢰심이다. 이 신뢰심은 인간이라는 어린이가 하느님이신 어버이와 만나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초보적이면서 근본적인 신뢰심이 있어야 하느님과의 접촉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사실,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나, 자기 능력에 도취되어 자기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신앙적 신뢰심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또 반대로 자기는 너무 큰 죄인이라서 감히 하느님께 접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위선자도 신뢰심을 가질 수 없다.
자식이 많으면, 잘난 자식도 있고, 못난 자식도 있다. 잘난 자식만 어버이를 부를 수 있고, 못난 자식은 어버이를 부를 수 없는 것일까.
세상에서도 어버이의 사랑을 말할 때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고 한다.
하물며 조물주 하느님에게 모든 인간은 사랑스러운 자녀이다. 그렇다면 못난 자식일수록 어버이 하느님께 더 매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더 참혹한 처지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은 부모에 대한 어린이의 신뢰심보다 한차원 높은 신뢰심이다. 이 신뢰심은 소위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가 아니다. 즉 안심하고 자신을 맡겨서 생사 화복에 태연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말이 아니다.
또 그것은 인생문제를 도외시 하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게으른 태도도 아니다.
인간은 본래 문제성을 띤 존재이기에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인생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인간다운 품위를 포기하는 짓이다.
모든 인생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차원을 높여서 극복하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안에게 주신 지성과 의지를 포기하고 정상적인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신원(身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겸손의 연장선상에 있다. 줄여서 말하자면, 겸손하니까 신뢰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맡겼으니까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에 머물러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결국 하느님께 맡겼으니까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에 머물러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결국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인간의 의지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떠넘기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고, 오히려 일의 결과는 그분께 맡기고 일의 과정은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고 용기이다. 이러한 신뢰심을 가지고서야 다음 단계인 결단과 회심(回心)에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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