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기 교부 시대의 영성
6) 사막의 성 안토니오
(1) 부르심과 수행
은수의 영성에 관해 언급하면서 사막의 안토니오 성인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성인의 생애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우리에게 참다운 수도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수도생활에 관한 전기는 바로 이것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은수자로 살아간 하느님의 사람의 생애가 너무나 아름다워 그 당시 교회 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그의 고백록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즉 두 젊은이가 트레(Treves) 근처에 있던 한 은수자의 암자에 드어가 우연히 안토니오의 생애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잃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런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부분이다. 성인의 초상화는 무수한 본보기들을 만들어 내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는 성 안토니오의 생애를 이미 원시 수도생활의 특성과 모습으로 제시한 바 있다.
251년 태어나 대략 20세가 되었을 때 수도생활을 시작하여 105세에 귀천한 성인은 이상적인 은수자이자 수도자이다. 아타나시오 성인이 전하는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는 대충 다음과 같다.
그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나이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삶녀서 집안을 돌보고 있었다. 18세나 20세쯤 되었을 때 부모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채 되기 전 어느 날 평소에 하던 대로 성당에 가고 있었는데,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간 일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 신자들이 그들의 소유를 사도들에게 갖다 바친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면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는다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성당에서 그 말씀이 들려오고 있었다.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말씀, 즉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하신 그 말씀이었다. 안토니오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유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빋을만한 동정녀들에게 누이동생을 맡긴 후 성당에 들어가니 『내일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와 극기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라는 성서의 말씀을 생각하고 손수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갓고 남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였고 성서를 읽고 곰곰히 묵상하였다. 그리하여 성서 구절을 기억하면서 실천하였다. 악령과 싸워 이긴 그는 영적으로 대단히 강한 사림이 되었다. 이렇게 20년을 살고 고향으로 돌아와도 2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를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렀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아버지로 모시고 함께 살았으며 여러 사람들이 그를 형제처럼 대하면서 살았다.
안토니오의 생애는 한 마디로 주님을 따라나선 수행자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 당시 그의 생애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수도생활의 모범을 보인 그 영웅의 삶에 감동되어 그를 본받으려고 하였다.
그의 성소는 순수하게 복음적이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혼자 안이한 환경에 남게된 농부로서 어린 여동생을 돌보고 가사일을 하던 그는 그리스도를 따라나서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사도들의 삶과 예루살렘의 원시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자유롭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내적 생활을 동경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여 실천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을 변두리에 은거하면서 그 주민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로 살았다. 이전에는 가장 부유하게 살던 그가 가난한 수도자가 된 것이다. 그는 기도하고 땀이 흐르도록 노동을 하면서도 기쁘게 살았다. 그는 자기의 삶을 단순하게 하고 자기의 필수품을 최소한 줄였으며 자기의 생핍품의 많은 부분을 가난한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모든 것은 영성의 현실성과 복음주의적 특징이다.
사실 수도자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수도자는 안락과 기쁨으로부터 부리된 것이지 사람들에 대한 업무와 그들에 관한 책임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이다. 안토니오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간 하느님의 사랑은 게으르고 감성적이며 이기적인 관상의 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애덕의 가장 실재적인 형태였다.
그의 기도는 항구하게 지속되었다. 그 기도는 어떤 특별한 기도가 아니라 거룩한 독서에 의해 영양분을 받는 것이었다. 거룩한 독서란 성서를 읽는 것이었다.
수행의 첫 번째는 성서를 묵상하는 식으로 읽으면서 보내는 밤의 수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여러 가지 시련 중에서도 항구하게 나아가는 것으로서, 이를 정의한다면 가난하고 자발적으로 비천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 중의 하나는 단식과 땅바닥에서 잠자는 것이었다. 이로써 수도자는 성 바울로의 말씀에 따라 자기의 육체를 엄하게 다루어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참조. 1고린 9,27). 그것은 고행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 안에서 새로운 평정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 평정도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영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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