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재하는 반공표어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혼란속에 간첩 오고 안정 속에 번영온다』, 『숨겨주면 같이 불행 신고하면 같이 행복』, 『폭력전쟁 도발하는 북괴군을 때려잡자』.
유난히 무더운 여름, 전국의 바다와 산과 강은 한 여름 더위를 피해 온 피서객들로 빼곡하다. 이렇게 피서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우리는 시골 국도변에서 갖가지 반공 푯말을 보게된다. 지금은 많이 철거됐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여전히 우리 국토 곳곳에는 50년이 넘는 지난 세월 동안 줄기차게 세워온 반동, 멸공의 구호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서울 도심, 지하철에서도 우리는 『잘 보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관심하면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하는 식의 반공 표어들을 가끔 본다. 이 표어들은 남북 화해 무드가 급류를 타고 있는 지금에야 당연히 적지 않은 거부감을 불러오는 구시대적 풍경이지만 기실 분당 반세기 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우리 국민들의 일상적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구호들이다. 한적한 시골, 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산보라도 할치라면 어김없이 마을 파출소 순경들이 간첩신고를 받아 느닷없이 들이닥치느니 촌극에 대해서도 여러번 들었다. 반공과 멸공은 질서와 안정, 안보, 단결, 번영, 평화를 향한 길이며 혼란과 무질서, 분열의 반대말이었다.
붕괴되는 반공·멸공
최근 몇 달 동안, 즉 남북 정상 회담에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분당 55년만에 만나 공동 선언에 서명하고 뒤이은 후속회담들이 열리고 이산 가족들이 만나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일순 반세기의 적대감과 긴장 관계를 씻어낸 듯한 흥분으로 잠을 설쳤다. 하지만 충격과 격변의 회오리 속에서 우리들은 지금까지 한반도를 규정짓고 있던 반공과 냉전의 사고방식,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이념적 토대와 가치관이 일거에 붕괴되거나 혼란에 빠질 위험을 직감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를 위아래로 나눠 위쪽은 빨간 색에 털이 숭숭 박한 「흉수」가 화살표와 함께 아래를 향하는 식의 그림을 그리고 이승복 어린이의 투철한 반공 의식을 주제로 각종 글짓기 대회를 개최하던 교육현장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극심하다.
더 큰 문제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 전쟁의 아중에 비참하게 가족을 잃거나 정근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 민족의 화해라는 말을 거론하기에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연로한 세대들에게는 여전히 반공과 멸공이 필생의 신념이라는 점이다.
정상 회담을 앞두고 한 실향민 단체 회원들은 정상 회담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북한 당국은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며 그들과 화해의 몸짓을 보이는 남한 당국과 범국민적인 분위기에 노여워했다.
가톨릭 신자는 반공투사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0년이 된 해이다.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분단으로 이어진 그 후유증은 엄청난 정신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특히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 있어서 공산주의와 공산당, 북한군은 그저 관념적인 거부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몸서리쳐지는 공포였기에 반공과 멸공의 이념은 그만큼 확고한 신념이었다.
기성세대에게 반공이 이러첨 체험에 바탕을 둔 삶의 지혜였다면 이후 세대에게는 철저한 교육의 성과였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이리와 늑대 형상의 공산주의는 엄청난 피해의식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주었고 확고한 적개심과 증오를 키워주었다. 독재정권은 반공 이념을 독재 정권 유지의 매우 유용한 도구로 휘둘러왔다.
반공은 이처럼 반세기 동안 한반도와 한민족의 「굳센 결의」였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 한국 천주교회의 것이었기도 하다.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49년 4월 한국교회는 남한의 분단 정권을 지지하면서 강력한 반공적 메시지를 담은 연합교서를 발표했다. 한국전쟁과 함께 교회의 통일 노선은 자연스럽게 승공 내지 멸공 통일을 전제로 한 북진 통일로 정리됐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전쟁은 「무신론 폭군에 대한 신앙 자유 수호의 십자군 전쟁」이었고 따라서 『신자여, 멸공에 총궐기하라』, 『철저한 말살의 신념을 갖고 남보다 맹렬히 적을 공격하라』는 등의 강력한 참전 명령을 신자들에게 내렸다.
교회이 반공 의식과 북진 통일 노선은 이후로도 매우 확고하게 이어졌다. 1957년 주교회의는 『가톨릭 신자는 반공 투사이며 가톨릭과 공산주의와는 워낙 불공대천의 원수로서 아예 그들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못받았다.
그만큼 반공과 냉전 이데올로기는 한국과 한반도에 워낙 오랜 이념적 토대였었고 그러기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이념적 혼란은 남북 하해이 분위기 속에서도 통일을 향한 길목에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 화해와 일치 위해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50여년간 이어진 철저한 교육의 산물인 반공과 냉전 문화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장 시급한 교육 현장에서의 민족 화해 교육과 냉전 문화의 해소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속속들이 깃들어 있는 반북과 냉전 사고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긴요하다.
그것은 가장 먼저 「통일 교육」의 확산과 정착으로 시작돼야 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그런 점에서 이미 상당한 인식을 갖고 잇는 듯하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지난 95년부터 시작한 민족화해학교는 과거 냉전 의식을 청산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참회와 회개를 이끌어내기 위한 주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냉전 체제의 편협하고 상호 불신에 바탕을 둔 인식을 깨는, 평화를 위한 의식 프로그램으로 실시해온 이 교육 프로그램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통일의 지향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50년이 넘는 해묵은 사고방식이 일거에 변화되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더우기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험적 사고의 틀이 한 두번의 이례적 사건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민족의 참된 화해와 평화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 앞에서 내적인 변화의 요청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현장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맨 앞에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에 제물로 바쳐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모든 민족 사이를 갈라놓았던 모든 담을 헐고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게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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