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고향을 북녘에 두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나로서 나는 그지없이 착잡한 마음이다. 남북 상호방문단이 만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러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남측 사람들은 그냥 목놓아 통곡을 하고, 온갖 슬픔을 다 드러내는 데 비해서 북녘에서 남측을 찾는 이들은 눈물을 지으면서도 그 긴장된 모습이 우리측 사람들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와 같이 50여년 동안 같은 겨레의 감정과 의지, 의식,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데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통감했다. 이와 같이 50여년 동안 우리는 서로 생활이 다른 그러한 긴 세월을 보냈구나 하는 이 절실한 아픔이 앞으로 어떻게 풀려져 나갈 것이냐 하는 걱정근심이 앞선다.
1단계로 우선 상호 100명씩 서로 찾았지만 앞으로 이 사업은 우리측 지도자와 북측 지도자간에 합의를 본 것처럼 계속 상호방문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보지만, 이러한 절차를 밟는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가다듬고 또 북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얼만큼 많이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숙제가 앞을 가린다. 지금까지는 서로 벽이 막혀서 모든 소통이 불가능했다.이제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문이 활짝 열린다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 볼 때 상당히 많은 시련과 고난을 거쳐야 할 거대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번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 김위원장이 여러 사장들에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북측의 정신과 남측의 경제를 합치면 세계에 우뚝 나설 수 있는 그런 강국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나는 그 순간 「북녘은 정신, 남녘은 경제 이렇게 돼 있는데 아니냐. 그렇다면 남녘에는 정신은 없고 물질만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매우 낙심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북녘이 가진 체제는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체제요, 저네들의 삶은 그 내용에 있어서 남쪽의 우리들과 너무나 많이 다르다. 이것을 가지고 김위원장이 북녘은 정신력, 남쪽은 경제력이라고 개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런 뜻이라면 우리가 김위원장이 바라는 정신력이라는 것을 두루 갖출 준비를 해야될 것 같다.
그 정신력의 내용이라는 것은 우리쪽에 있어서는 자주정신과 철저한 민주주의, 또 개혁, 금전만능의 사회풍조를 몰아내는 그러한 사회운동이 꾸준히 펼쳐져 나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의 부패, 무질서, 온갖 혼란스러움, 예를 들어 환자를 눈앞에 보면서도 봐주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의사들의 오늘날의 의식 같은 것은 우선 통일을 대비할 때에 있어서 좋은 보기가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의사들을 이렇게 이끌지 못하고 또 의사들이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것은 남북 통일이라는 큰 숙제를 남기고 있는 우리들로서 우선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래서야 어떻게 통일이 될 것이냐. 남한 사회의 분열, 이기주의 이러한 제 현상들은 통일로 나아가는 대로에 있어서 거침없이 수정되고 제거돼야 할 문제들이다.
우리는 북녘을 찾을 때 북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지금까지의 긴장된 삶을 위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우리가 우리 생활방식이나 우리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우월성 같은 것을 내보이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예의와 깨끗한 마음가짐이 어느때보다도 지금 절실한 때이다. 또 남북상봉을 거쳐서 눈물을 흘린 오늘의 이 체험을 알으로의 삶에 충분히 반영하고 실천하는 그런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해외에 산재돼 있는 이산가족도 수없이 많다. 남쪽에도 아직 100여만의 이산가족이 있지 않는가. 이번에 운좋게 가족을 만난 분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일이 잘 되기만 하면 계속 상호방문, 어떤 면회장소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그 집까지 찾아가서 산천도 돌아보고 옛날에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에도 가볼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날이 와야 통일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극히 초보적인 단계다. 쌍방간에 시도를 하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통일과 연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독일처럼 통일을 완전히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우리자신의 생활을 어떻게 갱신해아나야 할 것이냐. 개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지금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깊이 되돌아 보고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꼽아봐야 한다. 북녘 형제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 우리는 자유롭고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으면 먹고, 편안히 잠을 자고, 자녀들 교육을 얼마든지 시킬 수 있고, 또 여러 종교를 아울러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비하면 북녘 형제들은 전혀 이러한 생활과는 먼 길을 걸었다. 이것은 바로 고행길이다. 고행길을 걸은 형제들을 우리는 위로해줘야 한다. 그래서 신뢰를 새삼 높이고 또 상호간의 잘 살 수 있는 희망을 갖도록 하며, 또한편으로 우리가 여유있는 것은 얼마든지 북녘동포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생활의 혁신을, 개혁을 오늘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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