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첫째가는 계명」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 12장 28절에서 율법학자 한사람이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니까 첫째가는 계명은 분명히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을 쏙 빼 버리고 둘째 부분부터 기억한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쉐마 이스라엘)』로 시작되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유대인의 교육 지침서가 되었는데 이를 유대인들은 「쉐마」(Shema)라고 부르며 적어도 하루 두번 이상 암송하도록 교육시킨다. 30여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국민 교육헌장이라는 것을 우리가 외웠듯이 유대인 어린이들은 이 쉐마 기도문을 술술 외우고 그 뜻과 의미까지 해석하며 외운다. 한마디로 어릴 적부터 이 구절을 골수에 새긴다.
이것은 신명기 법이다. 구약성서에 『들어라』(쉐마)라는 말은 1159회 나온다.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분 뿐이시다. …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신명기 6,4-9). 이 귀정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문이다. 아울러 신명기 6장의 중심주제이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라는 표현은 신명기에 200번 이상 나온다. 하느님은 한분이라는 이 믿음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상과 행동의 근원이며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바로 한 분이신 하느님의 표지가 율법이다. 또 이 율법에서 가장 첫째가는 것은 이 한분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듣는다」(쉐마)는 것은 순종한다는 말과 같다.
구약에서 골로몬 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왕 하면 즉시 「지혜」를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골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때 솔로몬은 명석한 머리, 곧 지혜를 청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지혜가 아니라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이다(열왕기 상권 3장 9절). 예루살렘 성서(Jelrusalem bible)에는 『a heart to understand』(이해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성서학자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듣는 마음을 청하였기에 하느님 보시기에 참 기특하여 덤으로 받은 것이 지혜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반대로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은 듣지 않는 사람, 불순종하는 자, 목이 뻣뻣한 자(하바꾹 2장 참조), 제 멋대로 설치는 사람들이다. 제 멋대로 설치는 사람은 자기 우상숭배자로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듣는 마음을 골수에 박아두기 위하여 이 「쉐마 기도문」(신명기 6장 4-9절 11, 13-21)을 가죽에 기록해서 조그마한 두루마리의 형태로 만들어 작은 함에 넣고 문설주에 매달았다. 이 작은 함을 히브리어로 「메주자」(Mezuza)라고 부른다.
메주자는 모든 종류의 출입문의 기둥에 부착된다. 그러나 목욕탕이나 창고, 화장실 문은 제외다. 오늘날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문을 출입할 때마다 메주자에 손을 대고 다시 그 손을 입에 갖다 댐으로써 율법을 되새기고 있다.
메주자의 앞면에는 주로 『들어라』(쉐마)의 첫 글자인 「쉰)(Shin)이 새겨져있다. 「쉰」은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샤다이」(Shadai)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시온문에는 이 쉐마 기도문이 그케 새겨져 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 이르러 계약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출애굽기 19장 5절).
「내 것」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스굴라』라고 하는데 이는 소유 이상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보물, 깊숙이 간지갛고 귀하게 여기는 보물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만 잘 듣고 따르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스굴라」, 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겠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당신의 보물이라 하셨는데 현재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보물(스둘라)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것으로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보물(스굴라)이 아닐까?
그리스도께서도 타볼산에서 영광스러운 변모를 가지셨을 때 성부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고 하셨다(마르코 9,7-8).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양부 성요셉은 오로지 듣는 사람이었다. 그분의 선소는 한마디로 들음에서 시작하여 들음으로 완성되는 삶을 사신 분이시다(참고. 졸저 「들음의 신비」).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라는 테마는 신구약성서 전반에서 특히 신명기에서 음악의 음표처럼 계속해서 반복하여 울려퍼지고 있다. 사실 구약과 신약을 쉽게 말하자면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계약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인간은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