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기 교부 시대의 영성
6) 사막의 성 안토니오
‘나는 약할 때 강해진다’
이렇게 수행을 쌓아나가자 더 큰 시련이 다가왔다. 그것은 악령의 유혹이었다.
악령은 처음에는 자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었다. 그것은 세상과 육체의 일상적인 가면으로 드러났다. 안토니오는 그가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가 한 모든 것이 정신 나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혹시 자기 누이의 양육을 책임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동정녀들의 단체)에게 위착한 것이 실수가 아니었는가? 그리고 이런 그럴듯한 생각이 지나간 후에는 육체가 깨어나더니 이제까지는 극복했다고 여긴 유혹들이 강한 힘으로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겪는 동안 그의 유일한 무기는 이제까지 해온 엄한 수행을 쉬지 않고 지속시키도록 도운 신앙과 항구한 기도였다.
안토니오의 영혼을 혼란에 빠지게 한 내적 싸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악령은 지금 와서는 온전히 자연적으로 보인 그 유혹들 뒤에 자신이 서 있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드러나서 공포를 주어도 세상과 육체의 덫 외에는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한다. 안토니오는 단순히 『야훼께서 내 편이 되어 도와주시니 나 정녕 원수들이 망하는 꼴을 보게 되리라』라는 시편의 말씀으로 악령에게 응수하였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이 첫 번째 무기의 말씀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것은 안토니오가 악령을 처음으로 이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주님의 승리였다. 주님은 육체의 죄를 단죄하셔서 율법의 정의가 우리 안에서 성취하게 하셨다. 우리는 육체에 따라 걸을 것이 아니라 영에 따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타나시오 성인은 그 이후로 안토니오가 그 첫 번째 영적 전쟁에 있어서 고행을 배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는 약할 때 강해진다』고 말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더욱 더 강하게 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안토니오가 결코 승리를 확신하면서 안정을 누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승리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현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더 중요하다고 보인다.
(2) 사막과 악령
예수께서도 영세 후 악령의 유혹을 당하셨다
안토니오가 고요한 곳으로 떠나 은수생활을 할 때였다. 그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무덤으로 피신하였다. 가까운 친구가 그에게 빵을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그 다음에 그가 충분히 견고해졌을 때에는 단호하게 사막으로 들어가 오래되고 거의 허물어져 버린 요새 안에서 벽을 쌓고 20년간이나 지냈다. 이렇게 자리를 옮긴 것은 악령에 대항하여 싸우는 수행생활이 그의 의식 안에서 충만히 깨달았음을 얻었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악령이 안토니오의 결정을 보았을 때, 악령은 그를 말리려고 온갖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채 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면서 『우리에게서 떠나가라. 너는 이 사막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너는 우리의 음모를 참지 못할 거야』라고 악령들이 지르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의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부들의 금언집에는 어디서나 등장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원시 은수생활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악령은 주로 사막에 거주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복음적 기원을 먼저 강조해야 한다. 세 공관 복음서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다음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 들어가시려고 했을 때 성령에 의해 사막으로 내보내졌으며 거기서 악령을 만나 유혹을 당하셨다는 기사를 전한다.
가장 오래된 수도원 기록들 배후에서처럼 복음서의 그 기사들 배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더불어 동시대 유다이즘에 의해 우리에게 명확해진 개념인 그 빛에로 나아가는 개념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악령의 권세 안으로 떨어진 세상이 출현하는 것을 상기해 보자. 인간은 스스로 창조의 구세주로 일어났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을 당하였고 악령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그러나 악령은 고요한 곳에서는 자기의 존재를 조금도 감추지 않고 직접적으로 통치한다. 같은 방식으로 악령은 무덤에 출현한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확실히 인간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덤 안에 살고 사막으로 피신한다는 것은 악령과 대면하여 그를 이기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정면 대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성서의 말씀에 따른다면 더 강한 자가 출현하여 강한 자의 성을 빼앗아 무장 해제시켜 무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성서와 복음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단지 신화로 보인다면 이런 현상들 저변에 깔려 있는 깊은 심리적 실재들과 그 현상들이 실재들에게 주는 의미를 용이하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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