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를 뒤집어엎은 한 주간 모든 것이 오늘 근동지방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한 작은 구석안인 예루살렘과 그 부근에서 일어났다。오늘은 분리된 이 팔레스티나 지역이 두 가지 사건으로 알려진 하나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사실이 지방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을 숭배하였고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과 다소 충실한 계약의 제도화에 살았다。그러나 이민족은 이웃민족들과 함께 긴장을 조성하면서 살아가기도 했다。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의 업적을 정점으로 하고 그리스도와 하나가되어 영광에 들어가는 인간 군상으로서 완성의 날로 하는 이 일련의 역사를 그 원인역사또는 거룩한 역사라 부른다.。이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사건만을 년대적으로 나열하는 역사로서 신앙을 토대 로하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의 점에서 인생을 설명하는 것이다。이 유대민족의 생활의 사건은 하나의 거룩한 역사를 형성하고 있다。성서는 그 문화와 사상과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보존하고 있다。
세계의 역사를 뒤집어 엎는 주간이 열리는 순간, 이지역과 그 민족은 로마의 점령하에 있었다。로마 총독 본 시오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었다.。
지방 권한에 대하여는 그것이 한편 점령군의 권력과 다른 한편 유대민족의 율법과 내적 풍습사이에서 구성되었다。공공질서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유대민족의 종교생활은 그렇게 큰 충돌 없이 발전해나갔다。그러나 사람들은 한 갈릴레아사람 예수에 대하여 점점 말을 많이 했고 그의 인기와 신용도는 상승일로에 있었다. 때는 봄이었다.。유대인의 파스카 대축제가 가까이 왔다。그 축제일에 그들은 유대민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과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였다。세계의 역사는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에 관계있는 사건의 발전과 종말을 본 한주간이 온 것이다。이 주간에 어떤 인간들로부터 매우 사랑을 받았고 또 다른 인간들에게는 미움을 받았던 분이 사형당하고 무덤에 묻혔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였다. 인간이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한 인간이 부활하여 이젠 다시 죽지 아니하였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이다。예수부활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다。왜냐하면 예수는 죽었다가 부활하시어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현대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우정을, 미래를 위해서는 부활의 확신을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부활감사송에서 우리가 노래하듯이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어린 양이다。우리의 파스카 제물이 되시어 친히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이기시고 친히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이렇게 구약의 파스카는 신약의 파스카로 뜻을 찾게 된다.。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후부터 매년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보내니 최후의 주간을 기념해왔다。이 주간을 성주간이라 부른다.。거룩하신 분 예수님이 이 주간에 전 인류에게 성성의 샘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매년 성주간 예식은 최초의 성주간을 상기시키고 주님이 하신 행동을 시간을 따라 생각하고 또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시킨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성서독서로써 구약의 위대한 하느님의 업적을 상기하고 예수님이 당신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최후만찬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분의 첫발 현에 이르기까지의 예수의 수난이야기를 듣고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성체를 나누면서 밤을 새워 열심히 이날을 경축하였다。신자들은 우리의 구원의 이 위대한 신비를(예수의 예루살렘 입성ㆍ최후만찬ㆍ체포ㆍ수난ㆍ죽음ㆍ부활) 그 사건이 일어난 날과 시간을 계산하면서 거행하였다。마침내 5세기경에 성주간 전례가 조직되었다。중세 기초에 신자들은 부활 전야제를 비롯하여 그 다음에는 聖목ㆍ금요일 예식을 앞당기기 시작하였고 중세기 말에는 모든 예식을 아침에 거행하였다。이 시대에 이 聖목ㆍ금ㆍ토요일은 의무적으로 지키는 날이었다.。그러므로 신자들이 더쉽게 아침시간에도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현대에는 사회생활이 복잡하게 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사회생활이 복잡하게 되어 이날들을 지켜야할 의무를 없이했다。1642년에 그렇게 되었다。이렇게 지금부터 3세기 전까지 신자들은 실제에 있어 예식에 참여하기가 불가능했다。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성주간의 전례예식은 독특한 품위가 있을 뿐 아니라 성서적 힘과 효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자생활을 양육한다.。이 성주간 신심을 초대교회 때처럼 복구하지 않으면 신자들이 입는 손해를 보상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51년 부활전야제가 밤에 거행하게 되었고 1955년 부활성삼일 전례가 거룩한 시계(時計)의 전래적 (傳來的)인 관습에 따라 개정되었을 때 신자들의 기쁨은 대단하였다。
이 성주간은 하느님이 은총에 넘쳐있으나 우리도 이 은총에 큰 기대를 가지고 마음을 열어야한다。교회는 이 주간에 대도시 및 작은 마을의 성당에서도 거행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승리를 상기시키는 예식에 우리가 참가할 것을 희망하고 있으나 그것보다도 마음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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