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이웃사랑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함께 계명중 가장 크고 중심적인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첫째가는 계명도 이웃사랑의 실천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고 했다。구약에서도 이웃사랑의 중요성이 여러 번 지적돼 있지만 신약에서는 이웃사랑이야말로 유일한 계명이라고 할 만큼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웃사랑이 여러 계명이나 덕목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모든 계명의 중심이고 완성이며 전부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이웃사랑 없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핑계 삼아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 또한 강조되고 있다。
성서가 이 같은 이웃사랑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나 특히 루가복음 10장25절에서 시작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
이 비유는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율법전문가의 의도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율법학자 스스로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반문하신다. 율법학자가 지적한「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생명과 사랑이 얼마나 깊이 연결돼있는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돈 ㆍ권력ㆍ지식 그 어떤 것으로도 생명과 바꿀 수 없다는 성서의 말씀은 오직 사랑으로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 없는 삶은 하등의 가치도 없고 기쁨마저 없는 헛된 삶이다. 인간은 본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됐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사랑은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내적·본질적·존재적으로 관계돼 있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위해 지녀야할 근본적인 자세이며 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로 특히 이시 대 이사회에서 우리의 全삶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당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사이에는 「누가 이웃인가」라는데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다.。「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본래 이스라엘인과 함께 사는 이방인 나그네에게도 해당되는 계명이었지만 후대에 내려오면서 개념이 축소돼갔다. 그런데 예수시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웃개념을 더 좁혀 같은 이스라엘인 가운데에서도 율법을 모르는 대중은 이웃개념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같은 혈통ㆍ종교ㆍ파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친분 있는 사람에게만 이웃사랑실천을 의무화했다.
당시 바리사이인들 가운데에서도 이 같은 율법의 정신과 실천사이에 상당한 괴리를 느끼고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기 때문에 이 같은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反問에 대한 답에서 국적과 신분 종교에 대한 언급 없이「어떤 사람」을 이웃으로 내세우신다. 예수님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대상이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고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고향인 예리코로 돌아가는 사제와 레위를 등장시켰다. 그리스도는 사제나 레위사람이 피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곤 경중에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를 도와주고 싶은 동정심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상처받고 고통중에 있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동정심이 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사제나 레위사람들에게 본질적인 문제, 그들의 위선, 신앙과 실천의 괴리를 지적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더구나 방금 엄숙한 제사를 봉헌하고 돌아가는 길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느님이 원하시는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했다. 야고버서와 코린토전서 13장이 지적한 것과 같이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 실생활에서 얼마나 이웃사랑을 실천했는지 반성해야겠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참사랑을 실천한 사람으로 소개된 사람은 외국 사람으로 나그네이며 특히 유태인과 민족적 종교적으로 원수와 같던 사마리아인으로 강도당한 사람을 보살피고 2일 품삯의 그 데나리온을 건네주면서 상처받은 사람의 현재와 미래까지 돌봐준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참 크리스천이냐는 물음에 대해 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사제 수도자 고위평신도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자라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말로만 이웃사랑을 이야기하고 행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를 성자그리스도를 닮아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 되겠다.
이웃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것이다.
한국교회 전체의 삶이 내적으로 이웃사랑에 충만하여 우리가 모두 마음을 열고 고통 받는 자와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신념에 관계없이 이 교회에서만은 사랑과 자비의 따뜻한 손길이 느끼도록 해준다면 4년 후 맞게 되는 2백주년의 의미가 더 깊을 것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보호와 위로, 용기를 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 나라의 누룩과 소금이 되고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이 땅의 크리스천은 상처받은 모든 이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데 있다.
이 비유의 끝부분에 나오는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율법학자는「나 자신」을, 예수님은 곤경중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예수님은 여기서 진실한 봉사와 헌신적 몰아적 사랑으로 남을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을 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착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모든 인간은 사마리아의 비유에서 강도당한 사람과 같다. 죄로 말미암아 본래의 좋은 것을 다 빼앗기고 상처임은 全인류는 사랑 없이 구원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근본적、실존적으로 지닌 고독、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삶의 고달픔、 죽음은 인간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고해를 사랑자체이신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깊숙이 상처받은 인간의 친구가 돼 주셨고 더 큰 은혜로 자신이 몸소 혈육을 취해 같은 이간이 되심으로써 인생과 역사에 깊숙이 들어 오셨다. 십자가상에서 버림받은 그리스도는 굶주리고 보잘것 없는 고통중의 형제가 바로 나라고 말씀하셨다.
내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성령께서 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은 이웃사랑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넣어 주시는 성령 앞에서 마음을 열고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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