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저녁 「막달라」 의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예수님이 눠였던곳에 가게됩니다. 예수님은 아직 아무도 묻힌적이 없는 바위를 갈라내 만든 새 무덤에 안치되셨읍니다.
안식일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말해서 동이틀 무렵 그들은 무덤으로 갔읍니다. 가면서 그들은 봉인된 무덤입구에 놓아둔 그 큰돌을 과연 자기들이 움직일수있을까 걱정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그들이 무덤에서 치워져있는것을 목격했읍니다.
바로 무덤입구에 놓여졌던 그돌은 먼저 인자의 죽음을 증거하는 침묵의 증인이 되었읍니다. 그당시「예루살렘」의 무덤에서는 그와같은 돌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끊는데 사용됐읍니다. 곧 무덤에 올려놓은 돌의무게에 깔리고 무덤의 정적속에서 죽음의 과정은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금요일 저녁에 예수의 무덤앞에 갖다둔 그돌은 다른 모든 묘석들처럼 「사람의 아들」이 죽으셨음을 나타내는 침묵의 증인이 되었읍니다.
이돌은 안식일 다음날 동틀무렵 무엇을 증언 하고 있읍니까?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무덤으로부터 치워진 그돌은 무엇을 선포합니까?
복음에는 이에대한 적절한 해답이 없읍니다. 그해 답은 「막달라」의 마리아 입에서도 나타나지 않읍니다. 그녀가 무덤속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것에 놀라 시몬 베드로와 또다른 제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달려갈때 그녀의 인간적인 언어는 그같은 사건을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읍니다. 어디다 모셨는지 모르겠읍니다』 (요한20ㆍ2)라고 표현할수밖에 없었읍니다.
매년 꼭같이 교회는 부활주일로서 성3일을 끝내고 성영의 말씀을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성영118/117ㆍ112ㆍ16~17 22-23참조) 교회는 항상 또 새롭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죽음이 패배한 바로 그밝은 아침 천사와 여인들이 한말들을 인류에게 기꺼이 되풀이합니다. 교회는 살아계신우리의 어린양이신 그분을 선포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은 삶의 완전함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신의 죽음」을 여러사지 수단을 통해 바라는듯한 이 세계가 부활의 메시지를 듣도록해야하겠읍니다.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을 인류세계로부터 추방하려고하는 사람들은 「신의 주음」이 숙명적으로 「인간의죽음」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할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존재의 참의미를 밝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충족히 살아갈수있도록 하기위해 부활하셨읍니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이 하느님품안에서 살수있도록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읍니다. 그분은 모퉁이돌입니다. 그때당시 이미그들은 그분을 거부하려고했으며 밀페되고 보초를 세운 무덤돌로 그분을 넘어뜨리려했었읍니다. 그러나 그돌은 치워지고 그리스도는부활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인류세계의 건설자들인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리고 어떤 영역에서건 오늘과 내일의 세계 곧 문화와 문명의 세계、정치와 경제의 세계、그리고 과학과 정보의세계를 건설하는 여러분들은 그분을 거부하지마십시오.
이세상 어느남녀도 그분을 거부하지않게 합시다.왜냐하면 각자는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하며 동시에 각개인은 자기존재의 건설자이기도 혹은 파괴자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천사가 무덤돌을 치우기전에 이미 부활 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모퉁이돌로 나타내보이셨읍니다.
바로 그돌위에 전인류의 역사와 우리들각자의 역사가 건설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우리는 순수히 기쁜 마음으로 지금까지 기다려온 이날을 맞이합시다. 생동하는 기쁨으로 부활메시지를 나누어 가집시다.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결합시키는 이 모퉁이돌의 힘으로 우리는 우리와 아직 완전한 친교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못하고있는 동ㆍ서형제들의 공통된 희망을 건설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여러분、저의 사랑과 평화의 부활인사를 받으십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수난전날 기도하셨던 이 일치에 대한 보다 큰 원의를 우리들에게 불러일으키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