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선 베네딕또 수녀회는 55년 전, 1925년에 덕원 면속구 교구장이며 베네딕또수도원 아바스인 신 보니파시 오주 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처음엔 4명의 수녀들이 독일에서 나와 덕원서 가까운 원산에 정착했다. 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구자의 역할을 다하여 한국 진출 후 1년밖에 안 되는 1926년엔 벌써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호수천신 소학교를 원산에 세워 불쌍한 아이들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1927년 6월 6일 중국 은인 Lorca~Hong의 희사금으로 수녀원을 건립하여 축성했고 원산을 한국 본원으로 정하며 초대 원장에 독일인 마틸데 수녀(Sr.m.mathilde O. S. B)가 임명 되었으며 동년에 지원자가 16명이 입회하여 한국인 수녀 양성의 기반이 구축되었다. 그 후 독일에서 수녀들이 계속 내한하고 1934년 한국인 수녀의 첫 종신서원이 있게 되면서부터 선교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업체로는 원산의 호수천신 학교ㆍ해성 학교ㆍ해성 유치원ㆍ약방ㆍ진료소ㆍ농아학교 등이 있었고, 함흥ㆍ고산ㆍ회령ㆍ청진ㆍ흥남에 분원이 있어 본당을 중심으로 한 전교가 활기 있게 펼쳐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과 함께 진통도 겪어야 했으니 그것은 일본식 민지 정책의 최후 발악 때문이었다. 일인들은 일본어 사용ㆍ신사참배ㆍ국내 여행 신고제 등으로 우리의 선교 활동을 제한했다. 드디어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또다시 시련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수녀들은 북한 공산 치하에서 일거일동 감시를 받았으며 건물과 토지를 차례로 압수당했고 급기야는 지원자와 청원자는 해산시키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선교에 종사하며 마지막 날을 기다렸다. 북한 공산당은 1949년 5월 8일 한국 수녀들을 해산시켰고 독일 수녀들을 체포하여 강계 부근 옥사독이라 부르는 산중에서 5년간 노동을 시켰다. 그들은 굶주림을 참아 가며 밭을 개간하여 농산물을 공출했고 숯을 구어 바쳤다. 당시의 원장 수녀는 지금 로마에 주재하는 겔트루드 총장이다 .
겔트루드 총장 수녀가 옥사독 수용소에서 쓴 시는『폭풍과 암흑 속의 너 영혼아』라는 제목으로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나온 후 독일에서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베네딕또의 탄생 1500주년을 맞아 양 마리 비안네 수녀의 수고로 번역본이 나왔다.
『영혼아 그대는 설워 마라님의 따뜻한 손길이
폭풍과 암흑 속으로
너를 데려 왔으니
그 섭리의 뜻을 인식하여 쓰라린 고통 속에서
영혼아.
깨끗이 무르익어라』
-성숙 중에서
겔트루드 총장 수녀는 고달픈 생의 저변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찾는 옥사독 강제수용소에서의 수녀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옥사독에서 두 명의 수녀가 사망했다. 옥사독에서 함께 노동을 했던 덕원 수도원 신부들과 수사들은 훨씬 더 많이 사망했다. 옥사독에서의 수용소 생활은 1953년 11월 29일 독일 정부의 교섭으로 5년 만에 끝났다. 그들은 즉시 귀국 도상에 올랐다. 체포 당시 신부 수사 수녀의 수는 69명이었는데 19명이 그동안 사망했고 6명은 해방 불명이 됐다 살아남은 44명은 그들의 선교지 한국에 아픈 사랑을 느끼며 눈물의 작별을 고하고 독일로 돌아갔다.
한편 강제로 해산된 한국 수녀들은 6ㆍ25동란을 전후해서 개별적으로 남하했다. 그러나 남하하는데 성공한 수녀는 모두 13명뿐 그들은 1951년 부산에 집결하여 피난살이를 하면서 광주와 대구로 일자리를 찾아 갈라졌다
대구에서 처음엔 주교관 부속 건물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삼덕동으로 옮겼다. 그러는 사이에 오 트마라 수녀가 포교성베네딕또 수도회의 스위스 분원에서 내한하여 한국 수녀들의 피난살이에 가담했다 그리고 북한 옥사독 수용소에서 풀려 독일로 송환되었던 수녀들 중에서 건강이 회복된 이들은 1954년부터 차례로 다시 한국에 진출했다. 그래서 1955년, 현재 포교 성베네딕또수녀회 한국 본원이 있는 대구시 신암동302의 1번지에 정착하고 다음해인 1956년 7월 26일엔 정식 한국 본원으로 승격돼 오 트마라 수녀가 남한에서는 초대 원당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벌써 4반세기가 흘렀다
북한에서의 수난이 밑거름이 되어 하느님께서는 남한으로 재진출한 수녀회를 더욱 큰 은혜로 축복했다. 그리하여 현재 16개의 분원이 있고 수녀의 수는 2백3명이며 수련원에 소속된 인원은 53명으로 도합 2백56명의 대가족이 되었고 7명의 수녀가 미국 및 유럽에서 수학하며 4명의 수녀가 브라질 교포 사목에 종사한다. 사업으로는 본당 중신의 선 교외에 3개의 학교ㆍ2개의 병원ㆍ1개의 회관을 운영하며 농아자활원ㆍ근로자 교육ㆍ나환자 이동진료 등의 사회사업을 하고 기타 유치원 교육ㆍ군인 사목ㆍ청소년 지도」제의 제작ㆍ농사 등에 종사한다.
투췬 포교 성 베네딕또회가 북한에 뿌리를 내린지 어언 55개성상. 그러나 북한에서 25년의 은경축을 지내기 바로 전에 된서리를 맞고 뿌리가 뽑힌 채 옥사독 강제수용소로, 남한의 피난살이로 끌려 다니기 5개성상 그러다가 대구 신암동에 뿌리를 박았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며 일하는』동안 대구 신암동에 착안이 된 후 벌써 25년이 흘렀다.
◆ 당신의 십자가는 나의 것 - 강제수용소 「옥사독」에서의 詩 (겔트루드 링크 수녀ㆍ포교성베네딕또수녀회 총장ㆍ동회 전한국원장)
고뇌로 점철된 어두운 시간입니다 쓰라린 고통이 방울방울 흘러넘치는 밤입니다.
강제로 묶여서 손끝하나 움직일힘도 없습니다.
희망은 쓰레기마냥 내던져진 절망입니다.
남의 고통을 덜어 주기위해 묵묵히 투쟁합니다.
죽음보다 더 쓰라린 생활입니다.
XXX
이 잔이 바로
님께서 말씀하신 그잔 입니까.
이 십자가가 바로
님께서 지고 가시다 넘어지신
그 십자가 이옵니까.
XXX
진정. 님의 십자가는 나의것 내것은 님의 것이옵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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