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돌을 맞이한다고 한다. 교회에서까지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 속에서도 신협을 설립하고 발전시켜 온 가브리엘라 수녀와 선구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한 것은 점점 심각해지는 불경기와 민주주의의 기반인 협동정신의 배양과 의식계발 문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특히 교회에서 신용협동조합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요즘도 신협을 일반은행이나 계와 같은 영리사업으로 보는 지도자들이 있지만 성당에서 운영하는 조합들이 증가하고 어느 교구에서는 교구청에까지 조합사무실을 설치하여 많은 신부들도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직층의 서민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농후해지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본다.
창립20주년을 맞이하는 신협을 축하하고 우리나라의 70만 신협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뜻에서 크리스천 정신과 신협의 정신을 간단히 비교해 본다.
사회복지와 민주주의 교육에 봉사하는 信協
신협만이 서민 생활의 향상과 민주주의 교육을 당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독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고해서 남을 경멸하는 교만의 희생물이 될 위험성이 전무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론과 형식이 빈번히 떠돌고 실천이 너무 부족한 오늘의 현실은 지속적인 실천을 중요시하는 신협을 더욱 환영하고 있다고 본다.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고 인권 옹호를 외치는 지도자를 자신이 서민들을 돕지도 않고 남의 권리를 짓밟아 버린다면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할 수는 있어도 별 도움을 가져올 수는 없을 것이다.
점점 심화되는 빈부의 차이를 한탄하고 勞使문제를 들추는 家長이나 종교단체나 다른기관과 사회단체의 長上과 대표들이 자신들의 고용인들에게는 처우개선을 실천하지도 않고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찾지도 않고 있다면 그들의 설교가 일시적인 흥분의 해소밖에는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실천이 없는 많은 지도자들이 외친 이론에서 한계성이 드러났다고 보는 측도 있다.
아무튼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표양에 따라서 실천하는 지도자를 고대하고 있다. 신협인들은 다소 무력하게 보이는 서민들이지만 협동정신과 의식계발을 실천으로써 돕고 있다. 오늘의 불경 기속에서 이웃들을 돕고자 하는 서민들이 작은 힘을 모아서 서로 돕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복음 정신에 더욱 일치한다고 본다.
서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하여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사회의 기업체에 西歐식의 노동조합을 조직할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고 따지기 전에 신협은 실천을 통한 계몽을 지금 당장 시작 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긍정적인 운동인 것이다. 이와 같은 조직을 통하여 힘을 모으고 동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대화는 민주주의의 교육을 함께 이행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빵 다섯 개」와 信協
한자리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서 신협회합에 참석하고 있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굶주린 사람들을 앉게 하시고 빵을 축복 하신 다음 나누어 주셨다는 인정어린 말씀이 현대판으로 재현되는감이 돌고 흐뭇한 복음의 생동력을 새롭게해준다. 그리스도는 영혼구원을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지만 굶주린자에게는 먹을 것을 손수 주실만큼 착한 분이었고 물질주의를 경계하라고 하셨지만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않는다』 는 말씀을 하실수 있을만큼 인정이 풍부하고 사랑이크신 분이었다. 빵 다섯개로 5천 명 이상을 배불리 먹게하셨다는 성경말씀을 빵 하나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서 불경기와 물가고를 극복하자는 서민들의 행동에서 현대판으로 해석한다면 성경해석법에 위배된다고 할것인가.
信協과 초대교회
사도행전에서 보면 당시의 신도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협동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들 공동체의 훈훈한 모습은 이웃들에게 감화거리가 되고 교회의 성장과 발전의 핵(核)의 역할을 했다. (사도행전2장4절)
오늘의 교회가 처한 환경에서 초대교회 공동체를 모방하여 사유 재산까지도 공유화(公有化) 하자는 말은 수도원과 같은 특수한 단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은 자명(自明) 하다. 초대 신자들은 末世가 임박한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잘했다고 하는 해석자도 있지만 三者들이 그들을 보고 감화를 받은 것은 사랑의 일치와 착한 표양이었음이 잘 드러난다. 신협인들이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써 축복을 받는 소식을 듣고 20년간 서민들이 신협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감격스러움을 금 할 길이 없다.
이 같은 감격스러움이 초대 신자들이 맛들인 기쁨과 환희와 일치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신협을 조직하고 육성한 본당은 자신의 발전과 성장상의 축복을 받았음이 확실하다고 본다. 이 같은 서민 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수출이 대폭 줄고 경기가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5천명」 에 해당되는 동포들은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다.
앞날의 불경기를 내다보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초대교회의 정신을 회상하여 현대식으로 실천하는 방법의 일환으로써 신협을 적극 후원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 이상의 사랑할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있는 내일을 이웃들에게 믿음직스럽게 약속하는 한편 자신의 성장과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게 될 것이다.
서독의 주교단에서는 벌써 20년 전에 세계의 굶주린 자들을 그리스도가 보는 눈으로 보자는 「가엾소.」 (미세레오르=그리스도께서 빵을 주시 기전에 하신 말씀) 의 力動的인 말씀을 모든 신자들에게 알리고 원조를 호소한 결과 기적적인 성과를 오늘까지 거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천주교회는 물론 개신교에서까지 많은 선물을 받아다가 사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주교단에서도 불경기에 계속 허덕이게 될 국민들을 향하여 [미세레오르] 은 말할 수 있는 복음적 재교육을 실시하고 신협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이 고장의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동체도 스승의 모습을 이웃들에게 비추고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업을 통하여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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