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밀로가 어렸을때는 장차 성인이될 아무런 징표도 찾아볼수 없었다. 19세때 까밀로는 당시 이태리의 귀족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직업군인이돼 터키의 전투에 참가했다.
이로부터 4년후 까밀로는 난폭한 성품과 지나친 도박탓으로 퇴역당하고 말았다.
그후 그는 까푸친회수도원을 건립하는데 인부로일 하게됐다. 그때 까밀로는 그 수도회 한 수사와 알게됐고 얼마간 그와 대화를 나눈후 회개했으며 마침내는 수도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까밀로는 까푸친회 수련자로 입회했으나 다리의 상청로 말미암아 세번씩이나 들락날락했다.
「로마」 에서 치료를 받는동안 까밀로는 유급간호진들이 환자들에게 무성의하게 대하는 광경을 여러차례 목격하게됐다.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후 그는 성 지아코모병원 감독이 됐다.
그로부터 얼마후 까밀로는「병자의 종들회」 라고 불리우는 수도회를 창설하고 사제로 서품됐으며 이윽고 이 수도회는 교황으로부터 인정을받기에 이르렀다.
까밀로는 병자를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받들어 모셨으며 마침내는 난폭한 군인에서 관대하기 이를데 없는 성인이되기에 이르렀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그는 평소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었던 그와같은 위안을 받았다. 1614년 그는 사제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온화하고 기쁜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시길 빈다』 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까밀로 성인의 축일은 7월 18일이다.
♣고침
本報 1215호 2면 「성인들이 발자취」題下기사중 7월 18일로 돼있는 성 까밀로의 축일은 전례개혁후 14일로 개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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