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것이긴 하나 북한 5도청이 존재하고 엄연히 명예 도지사와 군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까지도 한국교회는 평양교구ㆍ함흥교구 덕원 면속구. 연길교구 등의 여러 교구를 그대로 두고 그의 재치권자인 교구장을 엄연히 임명하고 있다. 확실히 한국 교회는 북한의 침묵 교회에 속해 있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묵시적인 사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국 교회의 메시아적 책임의 의사표시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교회 행정상 완전히 형식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그 실체와 파견이라는 점에서 진실하게 이해한다면 그 죽음의 위험 밑에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이 단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진대 신앙과 희망의 권위에 의하여 그들의「신앙의 저항」을 어떤 형태이든간에 사목하여야만 할 의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외국에서 보도되었던 1969년 통계에의 하면 가톨릭 신자가 10만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에서 밖으로 나타나지 않게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를 신앙고백 하는 결단의 정세를 잘 인식하고 또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치 전제군주 이상으로 민중을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폐쇄된 사회에서 엄한 감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고 날마다 신음하고 있는 동포들을 기억하며 말씀의 기쁨과 성령의 위로를 보내는 일에 한국 교회가 얼마나 자목적 배려를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 만하다. 물론 1년에 한번 북한의 침묵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진정 우리는 겸허하게 사랑의 마음으로 평양 교구장 서리와 함흥 교구 덕원 면속구. 연길 교구장께 목자로서 오늘날까지 교구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북한의 하느님 백성인 그 어린 양들에게「신앙의 저항」애대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혹은 사목 교서를 보낸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를 감히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교회의 현실을 슬프게 생각한다. 물론 전혀 없었다든가 기도를 덜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두고 말이다. 실로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불행은 스스로를 現下의 남북 분단에 따라 이남에만 교회적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지 이북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한 자목적 배려나 복음 선교에는 어느 면에서도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거나 더욱이 포기하고 있는데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북한 침묵 교회의「대리적 수난」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함께 생각하고 이북 동포들의 무거운 집을 나누어지고 그 고난에 동참하려는 복음적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끊임없는 기도에의 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또 항상 새로운 방도를 모색함으로써만 복음적 형제애를 실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일에 의하여 기도와 동포의 구원이라는 것이 참의미를 새롭게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 교회 모든 하느님 백성은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인간 삶의 가장비 참하고 어둡고 특히 버려진 장소에는 언제든지 어디에든지 꼭 있기에 38선의 경계를 넘어서 북녁땅에 그분이 현존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아울러 침묵의 교회와의 동행을 결심하여 야하겠다.
교회 설립 2백주년을 맞으려는 이지점에서 박물관에 전시한 이념적 교구가 아닐진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지 금도 북한 교구를 명목상이라도 그대로 두고 있는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서 참회의 전신으로 성찰해 보는 것이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교회는 길일 성주 의의 도전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어 나가는 한편 이민족의 지상 과제인 북한동 포의 구원이라는 문제를 그리스도교 적인 입장에서 연구를 통한 대책을 거듭 강구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1) 金日成주의자에의 福音 宣敎
북한 공산주의는 김일성이가 창시했다는 主體意想과 金日成주의라는것을 주축으로한 이념을 지도 지침으로 삼는 정권 유지의 정치 실천을 위한 반 마르크스 레닌주의적 사상체계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따위의 공산주의도 아니며 더욱이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구라파의 공산주의와는 판이한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그리스도인이나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공산주의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문제를 옳게 파악할 수 있다.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무신론자를 위한 복음」이라든가 「공산주의자와의 대화」니 하는 식으로는 이 땅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북한에는 공산주의자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주체사상을 갖고 神格化한 김일성을 믿는 김일성 주의자가 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간행물은 1969년부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주체사상으로 바꿔채고 그후 새로 조작된 조선노동당 약사에서는 거의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최근에 와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지고 주체사상으로 대체했다는 사실로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체사상의 10대 원칙 가운데 첫째 김일성 권위의 信對化. 둘째 김일성 교시의 信條化 셋째 김일성에의 無條件性이라는 이른바 충성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때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김일성 집단이 일컫는 대로 김일성 주의를 신봉하는 김일성 주의자라고 교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산주의 철학도 까지도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의를 역사의 역동성을 거부하고 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입장을 떠난 개인주의라고 비판하며 현대 공산주의 운동에 나타난 개인신 격화. 대량 숙청의 상징인 스탈린의 망령이라고 규탄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뿐 아니라 심지어 김일성 주의는 철학상 반 마르크스주의라고 규정하고 사회주의를 위장한데 지나지 않고 본래의 사회주의와는 아무 인연이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에서 출생한 김일성은 한 유사종교의 창시자로서 呪術信仰의 신자를 대량생산하여 절대주의적 주종 관계를 강요하고 있는 呪專制君主化된 전근대적인 독재자이다. 북한은 한마디로 특징지운다면 神格化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모두가 김일성 신격화에 집약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김일성 주의라는 것은 김일성 신격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김일성 자신이 그 근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신격화를 권장 추진하는 따위의 이런 자를 타의든 자의든 간에 추종하는 김일성 주의들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복음을 선교하여야 할런지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김일성 집단이 10월의 제6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제일 조총련에게 지령한『위대한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우리식대로 살자』는 그들의 가소로운 운동에서 그나마 우리는 복음 선교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다.『우리식대로 주체사상이 요구하는 바 대로 살자 』는 김일성 주의의 폐쇄 적인 태도와 생활 구조 공포정치의 統制된 神格化사회에서의 지금까지 자라난 민중의 체질. 그리고 절대성ㆍ신 조성ㆍ무조건 성의 충성 원칙에 의거한 김일성 의신 격화로 말미암아 형성된 의식구조를 놓고 우리들은 복음 선교의 전략적인 방침을 세워 야하겠다는 말이다.
어느 한 독일의 교수가『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설교한다고 하는데 과연 복음의 말씀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정말 가지고 있느냐?』고 교회에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졌던 일이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들에게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질문임에 틀림없다. 사실 복음은 인간을 역사로부터 해방시키면서 동시에 역사를 창조하고 형성하는 것인데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복음을 私事化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반 (反)공산주의로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지. 정의의 본질과 그 구현 방법에게 대해서 사회적 정치적 정의로 구체성 있게 표면화하는 일에 힘쓰는 데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교회는 지금이라도 이것을 구현화 할 수 있는 방도를 발견하여 북한 지역에 나타나는 새로운 사실에 실행력을 갖고 부딪치고 그래서 기로에선 김일성주의자에게 하느님의 구원능력인 복음을 침투시켜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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