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聖月意義
현대의 오만한 철학은 그 능숙한 괴변으로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갔고, 현대의 화려한 文明은 인간의 마음에서 진실과 온정을 파괴시켰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한결 같이 인생은 경쟁이며 투쟁이라고 외쳐 대면서 계속 증오와 불신, 이기심과 약탈만을 선동하고 있다. 적자생존이라든가 약육강식은 이미 당연한 것들로 받아들여질 뿐 아니라 강조되고있는실정이다.
현대문화는 참으로 놀랄 만큼 화려하게 발전하고있으며, 계속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문화의 그늘에서 얼마나 많은 악과 부정이 자행돼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어느 시대가 현대처럼 인간끼리 서로 미워한 시대가 있었던가.
문화는 발달했으되 목적을 상실했고, 지식은 축적되었으되 자아를 망각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가슴에는 그화려한 문명의 파도속에서도 오히려 빈곤한 자아를 느끼고, 허무와 불 안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이고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신앙인이 그신앙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어져가고있으며, 그것은 곧 세속의 탁류 속에 자신을 방치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표면적으로 신사적인 것 같이 보이는 현대문명이 잔악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표면적으로는 열심이단 것같지만,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을 간직하지 못하고잇는 수가 많다. 그러한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희생을 요구할때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눈치만 보든가, 아예 의면하고 다른 길로 피해서 지나가버리기가 일쑤이다
(루카ㆍ25~37참조).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순교자적인 勇德을 필요로 한 다. 그러한 뜻에서「복자성월」의 의의는 실로 지대한 것이 있다.
우리 모두가 순교복자들의 그 순교정신으로 되돌아가서, 현대의 악마적인 사회풍조에서 자아를 보존케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현대사회질서를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 (교회헌장 4장 참조)순교자적인 聖德이 또한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을 복자성월에만 국한된 행사가 아니라, 우리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오늘의 현실들을 주님의 뜻에 맞는 것으로 하기위한 노력을 이 세상 마치는 날까지 계속해야할 과제인 것이다. 다만 이 성월의 뜻은, 우리의 해이해진 마음을 다시 정비하고 순교자들의 열성을 더욱더 깊이 새기고 본답 자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現實과 當面課題
그러면 서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당면과제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순교정신이 희박해져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싶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이후 많은 쇄신을 가져온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내적으로 들뜬 축제기분속에서 참신앙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나하는 느낌이다. 사실 크리스천 생활이란 실제로 전심적력을 다할 때만이 참된 것이다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마태22ㆍ37)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많은 굉계가 있다. 사회생활을 해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우리에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될 것을, 즉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그 이외의 길은 없음을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것』(루카13ㆍ24)을엄명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 즉하느님께 더욱 열성으로 봉사하기위해 사회에서 이탈하여 자기가 살고있는 이사 회안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에 대해 일체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비인간화된 마음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앙을 철저히 개인의 것(「다만 하느님 믿고,천당가면 된다」는 식의믿음)으로 오인한데서 기인한다. 오늘날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있기는하지만,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막중한 전교의 사명을 망각하고있다. 그것은 신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가톨릭교회전체의 책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실, 신자들의 믿음(정확히 말해서 주일미사 고백성사 판공성사 조만과 등을 궐하지 않을 것)만을 강조해왔지, 신자들의 사명(즉사 랑의 실천ㆍ복음전파 등)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하지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당면과제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 하겠다. 『내가 복음을 전한 다해서 그것이 내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기때문입니다.만일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개화가 미칠 것입니다』(I끗9ㆍ16)
특히 우리 한국가톨릭교회에서는 내년(1981)이 한국교구설정 1백50주년이 되며,앞으로 4년후에는 한국교회2백주년이 되는 해에 해당된다.
현재 우리 한국가톨릭신자의 수효는 1백만을 웃돌고 있을 뿐이다. 2백주년에는 2백만 신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력하고 있지만 신자들 각자에게 전교에 대한 사명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다. 그리고 전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순교자적인 정신이 요구된다는 것은 더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우리교회의 돌담 안에서 개인중심적인 믿음에서 탈피하고, 저 사회를 향해 전교의 봉화를 높이들이고 나아가야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저「성신강림」날에 성령께서는 세찬 바람과 함께 同族인 유대인이 무서워 다락방에서 떨며 움추리고있던 사도들을 뛰쳐나가게 했다.(사도행전2장 참조)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야말로 성령의 바람에 의해 움추리고있던 신앙자세에서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놓고 진리를 전파했던 것과 같이 크나큰 용기와 불타는사랑과 순교자적 사명을 가지고 추님의 복음을 전파할 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복자성월의 의의를 체득하게되고 순교자들이 피로써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을 우리겨레에 자랑스럽게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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