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교회란 무엇이냐」하는 질문을 받았을때 으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것은 다름아닌 교회건물이다
그만큼 교회건축물을 종교단체의 성장발전에 대한 기준 尺度로 생각하기쉽다. 사실 일반사회인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대부분의 신자들까지도 본당의 증가와 성당건물의 크기를 가지고 교회의 성장으로 삼기마련이다.
마치 이세상 재물에 부유한 교회의 자산적 거대화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대단한 성장으로 간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은 외형적인 것들을 갖고는 결코 尺度로 삼을 수가 없는것이다. 제아무리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명을 완수하는 일을 하려면 건물이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교회를 본질상 교회되게 하는것은 교회안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인까닭에 외형적인 교회의 평가는 두말할것없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교회건물의 適格性이 문제되기도 할뿐아니라 교회건물은 하느님의 백성을 복음선교에 참여시키는데 방해가 될수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 가톨릭교도는 교회건물속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건물을 사용하는것이 자기들의 임무이며 건물을 유지하는것이 자기들의 임무이며 건물을 유지하는것이 자기들의 책임으로 굳게 믿고 있다. 실제로 각본당의 예산구조를 살펴볼것 같으면 시설재산의 유지에 불가피한 돈이 들어서인지 시설관리비가 높은 비증을 차지하고 있는것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낭비현상을 초래하고있는 느낌을 갖게할 뿐아니라 나그네로서 순례하는 교회의 성격을 흐리게 할수도있다.
본당의 크기와 역사에 따라 모두 실지상황이 같지않으나 대체로 예산구조에 있어서 자기본당을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고있는 것같다. 좀심하게 말한다면 본당유지지상주의로 편승되고 있음을 숨길 수는 없다. 각 본당마다 공통적으로 자기 본당운영비 등에 비추어 자기 본당운영에만 급급한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교구본부 납부금이 있긴하나 전체 예산구조를 위한 예산, 가난한 공소ㆍ본당및 교구를 위한 성의있는 예산편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예산밖의 특별헌금 찬조금을 전제하고 말이다. 예산항목에 어떤 형태이든간에 한국의 전체교회가 경제적으로 자립하여야 한다는 지상과제에 대한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표시로 나타낼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편성에 앞서서 교구본부가 먼저 교구예산에(설사 재원이 거의 없다하더라도)한국교회의 경제적자립을 위한 구체적 항목을 설정하는 동시에 각본당에 그러한 항목을 두도록 종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교회헌장 23절에서 『주교들은 옛교회의 귀중한 모범을 따라 사랑의 보편적 일치안에서 이웃교회에 형제적 원조를 기꺼이 제공해야한다. 특히 가장 가깝고 가난한 교회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한 주교의 사목적 임무에 관한 교령에서도 『주교들은 교회재산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기교회의 필요한 생각할것이 아니라 다른 교구들의 필요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23) 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뿐아니라 공의회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에서 『각 교구마다 또는 각나라마다 될수있는대로 공동기금을 설치하는것이 좋겠다. 이 기금으로서 주교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주교의 여러가지 의무를 다할 수 있고 교구내의 갖가지 필요에 응할 수 있으며 한쪽의 풍부함이 다른쪽의 가난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구가 가난한 교구를 도울수 있게된다』(21)라고 강조하면서 권고하고 있는것이다.
이와같은 제2차「바티깐」공의회의정신에 따라 한국교회의 경제적자립을 위해 주교회의와 교구마다 공동기금을 실정에 맞게 가능한 범위안에서 설정하여 적립하는것도 좋을것같다.
실은 본당들이나 교구본부들이 자체 운영이나 유지를 위해 소요되는 관리비ㆍ행정비를 절약할 여지가 얼마든지있다. 교구본부나 각본당들이 행정비와 관리비에 지나칠 정도로 비중을 두고있는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전체예산구조에서 거의 60%에 가까운 정도가 운영과 관리를 위해서 쓰여지고있는 실정이 아닌가 말이다. 과연 한국교회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예산을 바로 사용하고있는가?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없다.
이러한 교회의 경제적구조는 필연적으로 교회의 건물과 시설물에 대한 適格性의 문제가 제기되게끔 하는것이다.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필립보2~7) 또『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되셨던』(꼬8~9) 그리스도의교회가 빌딩을 장만하여 비싼땅에다 현대적인 큰 성당을 세우며 거의 외형적 확장에 열심하고 종의 생활형태를 취할수있는 준비가 되어있지않을때 주님인 그리스도예수의 모습은 이땅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사흘안에 세우겟다』(마르꼬14~58)는 예수의 말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집착하는 한국의 하느님백성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것일까?
또한 『내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집은 물결이 밀려닥치면 즉시 무너져서 크게 파괴될것이다』(루까6.49)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큰 성당을 짓고 관리나 운영을 잘한다하더라도 재정적 자원을 남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하지않는 교구나 본당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교회창립 2백주년을 향한 오늘의 한국교회에는 외형적인 교회건물에 투입되는 예산보다 그리스도의 가난속에서 예수의 관심사를 성취하는데 충당되는 예산편성이 시급하기만하다.
문제는 교회자체의 확장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있는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나라를 섬기는데 바치며 메시아적 세계선교에 투자할때 비로소 하느님의 백성들은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할것이다.
더우기 한국교회와 교회안의 각 사람은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하느님나라의 선교속에 있음을 생각할때「서구주도의 선교」를 탈피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교회의 경제적 자립을 깊이 고려하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이 경제적 자립이야말로 한국교회가 2백주년을 획기적인 계기로 잡고 꼭 달성하기위해 방도를 강구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중심과제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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