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머리도 좋고 쾌활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의 인도로 영세를 받은 후 매우 열심히 성당활동에 참여해 오고있다.
그런데 지난 여름방학 이후부터 그는 성당에서의 신앙활동에 회의를 느껴오고있다.
미사시간의 기도와 예식이 절차에 집착한 공허한 소리처럼 느껴졌고, 또 인쇄되어있는 기도문과 그것을 되뇌이는 신자들의 신앙태도 역시 허식같이 느껴지곤한다. 인간의 신에대한 뜨거운 감사와 환희의 표현으로서의 기도가 되지 못하고 단순한 「국경일의 무미건조한 행사」처럼 느껴진다.
H는 종교란 무엇인가 뜨거운 감격과 충만한 그리고 스스로를 지탱할 강한힘을 주는 것 이라고 생각해왔다. 간혹 주변에서 발견하곤 하는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의 대단한 열성과 『은혜 받았다』는 진지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강한 확신과 충만감을 H는 부러워해 왔다.
H는 진실로 뜨겁게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해 보고 싶었고 감사와 은혜의 충만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차분하게 진행되는 미사와, 모여 앉아「떠들다 헤어지곤」하는 학생협회, 이런 것 들의 반복인 성당에서의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게만 느껴졌다. 관습화 되어버린 미사절차에 따르기만 하고 또 이미 인쇄되어있는 기도문을 읽기만하면 되는 것이 가톨릭신앙인가? 종교적인 황홀감. 충만 그리고 확신감은 성당에서 찾기는 어려운가?
지도교사가 H의 요청으로 그를 만났을 때 이미 그는 몇 군데 비가톨릭 교회의 예배를 시험삼아 다녀본 바 있었다. 그곳에 다니면서 그는 손 벽 치고, 외쳐보기도 했고, 몇 시간이고 꿇어앉아 기적을 바라는 어려운 이들의 기도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징중의 하나는 자아의식의 확대하는 것이다. 즉 이 시기에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남과 다른 나의 능력과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솟는다. 이 시기의 중요성을 가리켜 에릭슨은 자아 정체감의 위기라 지적한 바 있다. 이때에 그들은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게되며, 그결과「왜소하고,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않는다」를 의식하고는 미래에 「나」에 대한 불안과 실망을 형성케된다. 이 불안과 실망을 극복 또는 잊어버리고자 청소년들은 독특한 「청소년행동」을 하게된다. 모범적, 또는 문제있는 청소년의 차이란 단지 이 불안과 실망을 사회적으로 인정된 방식으로 해소하는가 아니면 위험시된 방식으로 해소하는가하는 차이에 불과하다.
위의 H의 경우에 대해서 조금 무모하게 해석해본다면, 그는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형성시킨 불안과 실망을 성당의 신앙을 통해서 극복, 해소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그간의 신앙태도 역시 흡족하지 않아서, 그는 일종의 투사기재(projection)를 발동케 되고, 그 결과 성당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형성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쩌면 H는 그 나이가 되도록 일말의 회의도 없이 단순히 타성에 의해서 성당에 나오는 학생들보다는 한 걸음더 빨리 진지한 신앙에 다다를지 모른다.
지도교사는 ①H의 위기는 길어야 1년 정도면 거의 자연적으로 해소될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여 너무 긴장하지말고, 다만 H가 성당에서 발을 끊지 않도록 보살피는데 힘쓰고 ②이기간 동안 격의없는 대화와 만남(구태여 신앙에 대한 것일 필요는 없다)을 가져서 그의 내면의 불안과 실망을 해소토록 유도하고 ③종교적 감성의 체형은 H자신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독서를 권장하거나, 비슷한 갈등을 겪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주선토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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