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또니아 마리아 글라렛은 1807년 스페인「샐런트」에서 직공(職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사제서품을 받은후 선교지역인 쿠바에서 활동을 전개, 『쿠바의 영적인 아버지』로 불리워졌다.
비록 건강이 나빠 카르투지오수도회나 예수회등에 입회하지 못했지만 그는 스페인의 유명한 강론가가 되기위해 쉴새없이 노력했다.
그는 10여 년간 열심한 기도생활속에서 전교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또한 그는 항상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위한 신심과 성체성사봉헌을 강조했다. 전해진바에 의하면 묵주가 그의 손에서 떠난적이 없다고한다.
42세때 그는 5명의 젊은 사제와함께 오늘날 글라렛회로 알려져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심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그후 쿠바「산티아고」의 대주교로 임명된 그는 수차 괴한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으나 결코 굽히지않고 전교사업에 열중했다. 여기서 그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교육수녀회를 창설했다.
그후 그는 교황 삐오 9세의 요청으로 스페인에 돌아와 선교와함께 가톨릭 언론사업에 전념하면서 종교출판사도 설립했다. 그가 저술.출판한책들은 2백여 권에 달하는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특히 그는 제1차「바티깐」공의회에서 교황무류권 교리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조국에서 추방돼 1870년 10월 24일 스페인국 경부근인 프랑스씨스떼르시안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그는 교황 삐오 12세 에의해 성인품에 올랐으며 축일은 10월 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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