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교회는 2백년동안 순례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는 도상에서 대면하지 않을수 없는 정말 새로운 사목적 과제인 하나의 문제에 부딪치고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海外僑胞 司牧이라는 것이다. 기실 한국주교회의에 몇해전부터 특별사목부의 하나로서 해외교포사목부가 설치되어 해외교민에 대한 사목활동을 하고있으나 아직은 초보적 단계인 것 같다.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다른 말로해서 가난 때문에 조국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아니기에 잠보機에 줄줄이 가족을 싣고 국제도시 뉴욕으로 밀려드는 황황한 이민은 아니었지만 지난날 북간도 북만으로 男{}女戴하여 조국을 떠났던 이민의 무리, 일본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간구 슬픈 流民 등이 슬픔을 지닌채 이들은 내땅을 떠나 갔었다. 그러므로 해외로 이민가는 일은 오늘에 시작된 것은 결코 아니다.
어쨌든 오늘에 와서 한국교회가 사목적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만큼 그숫자에 있어서 큰변화를 보이고 있는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카나다 중남미등의 해외이민과 미국 구라파 중동 및 기타지역에의 유학생 그리고 해외취업자들의 진출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증가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 이민가는 한국인의 수가 년간 2만명에 달하고 이민총수는 6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뿐아니라 더욱이 가까운 일본에도 한인교포가 60만여 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마다 유학ㆍ취업ㆍ이민등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증가됨과 더불어 이민사목을 비롯한 해외교포사목의 중요성이 한국교회내에서 서서히 인식되어가고 있는것같다.
그러나 아직 사목담당자나 또 관심을 가지고있는 신자들도 거의 사목적 정황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깊이 분석검토하고 사목신학적으로 종합 평가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문제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어쨌든 교포사목과 이민사목을 살피기 위하여 먼저 이민들이 처하고 있는 이민사회의 특수한 정황을 몇가지 점으로 집약해서 봐야하겠다.
변두리로 버려진 周邊人間
이민가서 외국에사는 한국인이 좋아하든 않든 그것을 인정하든 안하든 그들은 그나라 사람이자 한국인이며 어쩔수없이 그들은 두세계의 어느한편에도 완전히 소속되어있지않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한국이민들이 미국적 중남미적 구라파적인 생활양식의 습득 즉 문화적 同化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면서도 이른바 구조적 동화라는면에서는 허다한 제약점이 어쩔 수 없게 엄존하고있는 현실이다. 한국이민의 생활구조의 밑바닥을 깨고 볼것같으면 항상 그나라의 주변에서 맴돌고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들이 온갖 애를 쓴다 하더라도 변두리로 버려지는것 같다.
서러운 피부빛갈
어디를가나 人種경쟁, 인종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구라파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인종차별은 세계적이다. 누가 무엇이라하더라도 검등이도 미국인이며 유색인종인 황색 동양인도 이민가서 사는 미국시민권 소유자인 까닭에 당당한 미국인이다.
그런데 백색 미국인들은 방하나 세놓는데 흑인과 마찬가지로 황색의 동양인도 꺼린다.
백인과 유색인종과의 차별은 학교를 나온후에도 결혼종교 등에까지 말썽거리이며 트집거리가 된다고한다. 누른피부 빛깔은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바다에서도 신문 잡지에서도 심지어 죽어서도 그 차별을 면하기 어렵다고한다
한국 이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사실은 죽어서도 변할 수 없는 황색의 피부빛깔이 죽을때까지 황색인종이라는 딱지로 끝없이 붙어다니는 것이다.
물론 그나라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고 서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신나는 경험도 적지 않으리라. 그러나 일상의 범사에서 번번히 당하는 멸시는 마음을 병들게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또한 在日 한국인의 상황은 같은 황색인종인데도 불구하고 흑인 신학자데임스 콘이 지적한대로 재일한국인은 흑인이 백인으로부터 억압되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으로부터 심한 억압을 받고있다. 정말 인권유린과 구조적 차별은 심각하기 짝이없다는 것이다.
무너지고있는 가족질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이민가는 주요이유는 첫째, 경제적향상 둘째, 자기발전 셋째, 자녀들의 교육 다음으로 가족 및 친척들과의 재결합 등이라고한다.
이와 같이 한국인의 이민동기는 자녀교육 가족재결합 및 생활조건의 향상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생활조건의 향상은 어느정도 달성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한편 자녀에 관한한 그들 이민이 겪고 있는 고통은 참으로 큰것같다. 특히 고통스럽기 짝이없는 중요한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가능했던 가족질서가 이민간 그 나라에서는 무참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한국이민들이 어린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이민갔다지만 부모들은 직장에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자녀보호가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나이에 자녀들을 홀로 버려둘 수 밖에 없게된다. 더욱이 자녀들은 부모들보다 더 빨리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응하여 부모의 통제권을 벗어난다. 그래서 이민간 이후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기부모의 말을 듣지않고 순종하려하지 않는다. 그뿐아니라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대화의 결핍에 직면케됨과 더불어 심한 단절을 절감케된다.
끝내 자녀들은 이민사회에서 많은 선택의 자유를 보고 더욱 빨리 독립심을 갖게됨으로써 부모의 곁을 훨훨 떠나가기 마련이다. 결혼전이라도 거의가 집을 나와 자활하고있기에 말이다.
한국이민들이 겪고있는 인종차별과 가족질서의 붕괴는 어쩔수없는 냉업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이 상황을 이민이 지닌 숙명적인 것으로 볼수밖에 없다는데 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생활조건의 관계로 말미암아 본당주임사제의 通常一般의 사목적 배려를 충분히 받을수없든가, 혹은 전혀 받을 수가 없는 이민을 특히 배려하여야한다』(주교의 사목임무에 관한 교령18)고 선언한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권고를 염두에 두지않더라도 우리들은 그들을 위한 해외교포 사목ㆍ이민사목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이민사목이 하느님의 미래을 위하여 그 이민들에게 희망을 줄 무엇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또한 이민사목은 이민을 위하여 무엇을 할수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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