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포에 대한 우리의 사목적 활동과 과제를 살피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에 대해서 백인 그리스도교도들이 취하는 태도에 어떤변화를 기대할수있느냐 하는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톨릭 교회는 20세기 후반에 와서부터 해외移住에 관한 문제 즉 이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에서『정당한 이유가 있을때에는 다른나라에 이주하여 그곳에 거주할 권리도 갖는다』(18)라고 지적하면서『소수 민족들이不調和의 地帶가되어 많은 손해를 야기하지않고 또자연의 진보를 질식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전통과 문화의 여러 표현속에서 생명의 순환을 도울때에만 진실이된다」고(62)하며 소수민족들의 문제를 취급하는 가운데서 언급하였다.
또 제2차「바티깐」공의회도 사목헌장을 토하여『이민들과 그 가족들에게 대한 원조』를(84)강조하였다.
그리고 바오로 6세는 더 구체적으로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에서『남을 받아들일 의무는 인간적 연대성의 의무며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의무이므로 아무리 강조하여도 넉넉히 강조했다 고는 할수없다』(67))하면서 유학생의 비극에까지(68) 언급하고 특히『조국을 떠난 노동자들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하겠다』라고(69)권장하였다.
이뿐 아니라 바오로 6세는 노동헌장 례룸 노바룸 반포 80주년을 맞이하여 평신도국과 정의 평화위원회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외국에 이주한 많은 노동자들의 불안한 상태를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 그들은 외국사람이란 이유때문에 사회보장을 받기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말하고 이어서『자기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않으면 안될 민족들도 생각해야하겠다』라고 언급하고있다.
그러나 소수민족이며 유색인종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백색그리스도인들의 태도변화의 가능성에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인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생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그들 백색그리스도인과 일본인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없는 일이다.
유색인종이, 혹은 재일교포가 열망하는 인간으로서의 위엄에 합당한 생활현실을 이해않고 그것을 저해하는 따위의 백인 혹은 일인과의 만남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어떻게 해석하여야할까? 제2차「바치깐」공의회는 현대사목헌장에서『인류가족전체는 그 성장내지 성숙의 과정에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지적하고있다.(77)「최대의」라는 형용사가 다만 과장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의 국제적 정세는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것같다.
실은 미국의 한 가톨릭평론가가 현대의 위기를「피부색의 革命」이라고까지 논평하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 문제는 백색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찾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점에서 새로이 回心하지 않고서는 성취될수없는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일인 그리스도교들의 경우도 그 영향력에 있어 백색그리스도인과는 판이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밖에없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현대사목헌장에서『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1)선언하며 모든사람들과 협력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렬히 호소하고 있기에 말이다.
파견된자의 소명 다해야
해외교포들이 조국을 떠난 인간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이유야 어떻든 간에『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졌기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물려주시며 그리고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그대로 순종했읍니다. 사실 그가 자기가 가는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채 떠났던 것입니다. 그 약속의 땅에서 사는 생활이 나그네의 생활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그 땅에 머물러 살았읍니다』(히블11, 8-9)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상기하여야 하겠다. 왜냐하면 조국땅을 떠나서 외국으로 이주하고, 유학하고 취업하러갔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일어난 현실을 그들 해외교포가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하느님의 백성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의 사목적관심이기에 신앙의 눈으로 신학적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그리스도교적 신앙이 이국에서 처해있는 해외교포의 상황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첫째로 해외교포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이다. 하느님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하브라함을 선택하셨듯이 해외교포인 그들을 아브라함의 모험과 광야를 지나 순례의 길을 떠나서 널리 흩어지는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것이다. 다시말하면 하느님의 봉사자인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여러민족속으로 흩어져야하는 소명을 주기위해서 선택한 백성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사랑과 수호자이신 성령이 현존을 모든 인간에게 알리기위하여 온갖 고통을 택하기에 그들은 하나의 선택된 백성인 것이다.
해외교포는 그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상황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둘째로 해외교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백성이다. 하느님은 여러민족들 가운데서 당신의 구원사업 즉 전 인류의 일치를 위해서 그들을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개척자로서 다른나라 한복판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파견한것이다. 인간은 구원되어야하겠고 인간사회는 쇄신되어야 하겠기에 그들을 파견하여 그들이 받은 부르심에 따라서 그나라 인간안에 내재하는神的요소를 밝혀 드러내고 보편적 형제애를 확립토록 하려는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설계자가되시고 건축가가 되셔서 튼튼한 기초위에 새로운 도시를 세워주시려는 것이다 』(히브리11, 10참조) 아브라함이 자기를 선택하여 파견한 하느님이 세워주실 새로운 도시를 바라며 그땅에 머물러 살았던것 같이 해외교포들도 파견된자로서의 소명을 깨닫고『바빌론 기슭 거기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흘렸다.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설은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시편137-1,4)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은총의 현실로 믿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살라가야한다. 파견된 자리에서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그민족에게 더욱 이 세상에 미래 대망의 살아있는 희망을 나타내는 자로서 존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해외교포들의 메시아적인 특수한 사명은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하여 그 나라의 역사에 희망의 불을 붙이는 일이다. 즉 그들 개인들의 완성을 위하여 또 그나라 민족과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하느님의 절대미래 가운데서 성숙할수있게 희망의 放火를 하여야 새 도시를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이 처해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편익을 도모하는것이 합당한 일이기에 다른 그 나라의 문화전통을 지닌 그 나라 사람들과 성3위의 사귐을 모범삼아 참된 사랑의 사귐을 갖도록 노력함으로써 점차적으로 다른민족의 가치들이 자기들 자신의 살과 피로 변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파견된자의 소명에 응답하며 인류가족 전채의 성장과 성숙에 이바지하게 될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러한 뜻의 이민및 해외교포로서 모든 민족과 문화가운데로 이주해간다는 것은 실로 그리스도인의 책임인것이다.『온갖 민족과 인종과 문화의 사람을 모두 한 성령안에 모으기 위해서 말이다』(사목헌장92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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