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노벨상 수상자가운데 가톨릭신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체슬라브밀 로즈와 평화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이아돌포 페레즈 에퀴벨의 생애와 사상, 작품세계를 近着의 신을 통해 알아보기로한다. <편집자>
◆노벨 文學賞 수상 체슬라브 밀로즈氏
현대 분쟁세계 고통 묘사
作品世界는 조국을 그리는 애설픈 하나의 敍事詩
버클리大學서 슬라브語 강의
蘇軍進駐하자 51년 빠리 亡命
금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체슬라브 밀로즈(69세)는 폴란드출신의 가톨릭신자로 망명시인이면서 소설가이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州 버클리 대학에서 슬라브어학과 전임강사로 재직중인 밀로즈씨는 플란드語로 분쟁세계의 인간상황를 그린 詩들로 금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된것.
그의 초기작품들은 서정적이고 정감어린것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조국이 나찌에 강점되고 소련위성국으로 변한뒤에는 시의 세계가 조국애에 대한 詩로 기울어져 열정적 애국시를 많이 발표한 反나찌 反스탈린의 反체제시인으로 알려졌다.
1911년 6월 30일 러시아 발티해 연안 리투아니아의「빌나」(현재 소지에트연방 리투아리아수도)에서 태어난 그는 1차세계대전후 폴란드 영토가 된 그곳의 대학에 법학을 전공했으며 21세때 첫시집「얼어붙은 시간의詩」를 발간했다.
또한 그는30년대「카타스트로피스트」라는 시인그룹의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혔다. 2차대전중에는 나찌독일의 억압에 항거, 反나찌지하조직에 참여하면서 反나찌정신에 입각한 작품활동도 병행했다. 2차대전종결과 함께「빠리」주재폴란드 외교관을 지낸 그는 폴란드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된후 51년 자유를 찾아「빠리」로 망명했다.
60년부터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시작, 70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미로즈는 내, 외적으로 보더라도 망명작가. 그의 작품은 낙원에서 쫒겨난 이후의 인간세계를 다루고 있다』고말하고 『격심한 갈등에 휩싸인 이세상에 드러난 인간의 상황을 비타협적인 명쾌한 통찰력으로 다채롭고 극적이면서 일관성있고 도전적인 목소리로 노래한 시대정신이 요구한 작가』라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한편 밀로즈는『나의 작품은 20세기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들이기에 수상을 감명깊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그의 철학적 에세이「울로의 대지」는『계몽시대 이후 서구인의 특징을 묘사한 불행한 정신적불화, 소멸된 인간의 단합등을 토로한 작품』이라고 스웨덴정부에 의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폴란드語로 쓰여진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영문으로 번역돼 있는데 대표작으로 공산주의하에서 시달리는 인간상을 그려 그의 자유의지를 표현한「사로잡힌 마음」「휭령자」「자기한계의 탐구」등외 다수.
작가인 폴란드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밀로즈의 수상을『행복한 놀라움』을 안겨줬다고 말했고 그의 작품을 읽고 풍부한 정신적 가치를 가진것으로 평했다는 교황청소식통을 인용,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밀로즈가 매주 참례하는 버클리대학내 뉴맨흘 성령쇄신성당에서는 미사중 그를 축하하는 환호가 터지기도했다.
미로즈는 현재「버클리」에서 부인과 두아들과 함께 살고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 아돌포 페레즈 에스퀴벨씨
中南美 인권伸張에 獻身
敎會精神으로 정의 평화운동
간디 추종하는 有名조각가
非暴力으로 사회개혁, 農民ㆍ노동자 權益옹호 앞장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르헤티나의 아돌보 페레즈 에스퀴벨 (49세)은 가톨릭정신에 입각, 라띤 아메리카의 인권신장에 앞서온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다.
조각가이기도한 페레주 에스퀴벨씨는 74년부터 인권운동에 투신, 중남미 인권신장을 위해 종교계의 지원을 받고있는「라띤아메리카 정의평화봉사단」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사회개혁운동에 헌신해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그의 작은 봉사단 사무실에서『한개인이 아니라 중남미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인권투쟁을위해 활동하는 사제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수락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힌 에스퀴벨씨는 74년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정당국에 의해 실종된 수만의 사람들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다고 아르헨티나 군정당국을 비난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에스퀴벨씨가 1년이상의 옥고를 치르면서도『아르헨티나의 혼란스런 정세를 개선시키기위해 헌신한 인물』이라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1931년 11월 26일「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에스퀴벨은 56년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후 모교에서 조각교수로 재직했으며 그의 많은 작품들은「부메노스아이레스」미술관 및 광장등에 전시돼있다.
71년 인도의 독립운동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독립투쟁에 관심을 갖게된 그는 간디추종그룹인 비폭력운동단체에 가입, 좌 , 우익계가 서로 충돌할 당시의 아르헨티나 폭력에 항의하면서 비폭력 정의평화운동지도자로 활약했다.
73년에는 종교계인사들과 비폭력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핵확산금지, 군비축소 사회정의에 관한「정의, 평화」紙를 창간했고 74년에는 콜롬비아「메댈린」에서 열린 비폭력 전략인 권운동가회의에서「라띤아메리카 정의평화봉사단」의 공동의장으로 임명됐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미국가톨릭회회 사회발전 및 세계평화분과 라띤문제연구가 토마스 퀴글리씨는 에스퀴벨을『매우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동시에 양심적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에스퀴벨은 또중남미 평화운동단체간의 정복교환과 접촉임무를 맡고 정의구현운동을 전개하면서 노동자, 농민권익에도 앞장서고 중남미를 두루 순방하던중 67년 4월 인권유린에 항의하는 인군단체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뚜렷한 혐의도 없이 아르헨티나 경찰에 의해 체포수감됐다.
그후 국내외의 가톨릭단체 및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그는 78년 6월 석방됐으나 다시 14개월간 연금되기도했다.
그는 76년 노벨평화상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평화운동지도자 베티 월리엄스와 메어리드 코리간씨에 의해 78년 노벨평화상후보로 지명받기도 했다. 그당시 그들은 에스퀴벨을『가장 뛰어난 비폭력운동가』라고 불렀다.
현재 그의가족으로는 연주가겸 작곡가인 부인과 두아들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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