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느 날 늦은 저녁 D본당 중등반 지도교사인 A는 밖에서 부르는『선생님』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복을 입은 채 여중 3학년인 P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P를 방으로 데리고 온 후 교사는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P의 집에는 부모님과 남동생 둘이 있다 아버지는 집에서 꽤 떨어진 시내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시는데 경제적으로 궁색한 편은 아니다. 어머니는 P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재취로 들어오신 분이고 두 동생은 어머니가 낳으셨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성당에 다니셨고 P도 이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는 현재도 어머니 성가대에서 활동하고 계신다.
P에 의하면 초등학교 시절까지 만해도 어머니는 그에게 매우 잘해 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 어머니의 태도가 돌변하여 심하게 구박하기 시작하였다 고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기까지 사사건건 간섭 을하며 지독하게 일을 시키고 마음에 안 들면 매질까지 한다고 한다. P는 멍든 잔등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P는 그간 3년간을 참아 왔는데 이 이상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다 고하였다. 오늘만 하여도 오전에 미사를 보고난 후 예정에 없이 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과 어울리다 좀 늦게 저녁8시쯤 집에 들어갔는데 어머니의 구박이 시작되고 급기야 매질까지 당하게 되자 더 이상 버티다가는 병신이라도 되지 않을까 겁이나 어머니를 밀어제치고 뛰어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껏 뛰어나와 공터에서 실컷 울고 도저히 집에는 들어갈 수 없어 생각 끝에 A교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선생님 전 이제 집에 못 들어가요 , 그 여자도 싫지만 아버지도 싫어요. 구박과 매질도 무섭지만 그것을 못 본 척하는 아버지도 싫어요. 집에 들어가면 결국 나는 그 두 사람 손에 병신이 되거나 죽고 말거예요. 선생님 절 좀 숨겨 주셔요. 』
우리 모두는 언제나 P와 같은 학생들의 돌연한 방문을 받을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지한 교사 일수록 그 가능성은 더 크다. 막막한 처지에선 사람에게 떠오르는 유일한 인물이 된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막막한 처지에 섰을 때 그래도 아직 의지해 보고픈 사람이 떠오른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절망과 포기의 막다른 순간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사람이 없어서 잘못되어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위사례에서 P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가 사실이고 아니고 인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P가 그렇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는 가정을 뛰쳐나와 아득한 절망에 휩싸여 있는 점이다. 부모와 가정에 대한 절망은 어린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세계 전부에 대한 절망과 다름이 없다.
지도교사 A가 만약 그 밤중에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게 하거나. 장시간 앉혀 놓고 집에 돌아가도록 설득, 훈계한다면, P는 절망 중의 유일한 희망의 좌초에 또 한 번 절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도교사 A 는 밤새도록 P 와 같이 울어 주고, 같이 부모를 탓하고 위해 주고 하여, P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자기를 이해하고 편들어 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사람은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애써야 한다.
「학대와 매질이 있더라도 집을 뛰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소간은 불합리하고 냉담한 기성세대의 규범을 괴롭지만 받아들여야만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 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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