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교육적 환경에이해 자질과 능력이 계발되고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 교육적 환경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관련을 맺고있는 사람들이다. 관련을 맺고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관심사로 연결되어 있는가가 그 사람의 자아실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인간을 근원적으로 구원하여 제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을 믿음으로써 사귐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일치를 깊이 해감으로써 인간의 참된 구원-자아실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참된 자아실현을 성취만 알려진 한 사람이 있다.
톨스토이라는 사람은 젊어서는 생을 마음껏 즐겼으나 장년에 가까와오면서 생의 허무감에 빠졌다. 삶을 포기하려는 유혹을 수 없이 받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고뇌의 나날을 보냈다. 보람있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의미있는 그 무엇에 투자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의미있는 대상이 도대체 뭐냐 하는것이 큰 수수께끼였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가르침가 생애에서 인생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렸던 것이다.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것 만이 삶의 진수라는 것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는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때는 언제인가-그것은 지금이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그것은 지금 나와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확인해서 믿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상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은 멀고 사람이 가깝다고 느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오감으로 느껴 확인하면서 깊이 체험할때 만족해한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예부터 신앙의 선조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소개하는데 결국 인간적인 표현과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말씀과 표상 뿐이지 그 이상은 못되었었다. 그래서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 인간 가운데 살으시며 보고 만지고 느낄수 있는 하느님이 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단정적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은초잉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돕는것 처럼. 자연도 은총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는 하느님으로 처세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과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 외에는 현세적인 가치관으로 볼때 별볼일 없는 분으로 일관 하셨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까지 그러하셧다. 사실 인간이 십자가 사형들에 알몸으로 매달리신 그분에게서 현세적인 그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분은 『목마르다!』하시며 물한모금을 아쉬워할 정도로 인간의 동정을 구하시기까지 처신하셨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 그것은 인간이 동정을 사시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주신 그분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닮아 이웃의 필요에 응할줄 알도록 깨우치시려고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웃의 아쉬움과 필요에 하느님이 것으로 채워줄줄 아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다.
예수님이 한평생 인간에게 게시해주신 것은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 였고 또 하느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우리 인간모두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보여주신것 뿐이다.
그 누구도 아닌 하느님께서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해주시는데 어찌 감히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의 응답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것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개격적인 응답으로만 연결된는 것이다. 여타의 것은 그 핵심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불을 놓으러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하신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하느님 아버지께와 인간에게 향한 사랑을 잘 표현하고있는 말씀이다. 과연 주님은 당신 친히 하느님 아벚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있었기에 당신과 접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근원적인 회심을 가능케 했고 회개한 사람들은 주님의 간절한 소망을 채워드리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적잘한 수단을 부여하셨다. 즉「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와 함께 머물면서 힘의 원천이 되어주시고 또 십자가상의 죽으심을 기념하도록 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필요에 힘이 되어주게끔 자극하고 계신다. 십자가 상애서의 죽으심은 만민에게 공개되기를 원하셨지만 당신의 부활은 그렇지않았다. 당신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불이 당겨질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나타내 보이셨다. 그것은 당신의 사랑의 불이 세차게 옮겨 붙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처럼당신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서 이탈하여 오로지 당신만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비로소 당신의 사라잉 전달될수 있는데서 였고 또 실제로 그 사실이 제자들에게 깊이 부각되었기 때문에 첫 사건으로 두드러지게 기록된것이다.
그다음에는 오렛동안 당신께 대한 믿음이 훈련을 마음이 쉽게 열려질 수 있었던 제자들에게 단계적으로 나타내 보이셨다. 준비도 안된 믿지않는 다른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다면 그 것은 단순한 충격에 그치고 오해를 낳았을 뿐이다.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 그랬고 그 병사들의 전갈을 들은 지도자들이 또한 그러했다.
따라서 교회지식은 사람과 애정의 기반 위에서만 본뜻을 전해주는 매게체가 된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사랑이 없으면 천사이 말을한다해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너희가 나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선교하는 신자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는 도화선이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주님을 사시는 그런 매개체이어야 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서 그분안에 산다는것이 이렇게 다행일수가 없다는 감사의 외경으로 차있는 신자야 말로 사랑의 불섶이 되어 이웃에 사랑이 불을옮길수가 있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어야 하느님의 나라를 잡게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을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하신 것은 참으로 하느님다운 지혜와 능력의 산소이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말단의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뭇사람들과의 유대를 가지셨기 때문에 그분의 관심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보잘것 없는 이웃에게 한 것이 그대로 나한테 한것과 같다고 하심으로써 뭇 죄인들을 회개케 하며 믿을수 있는 최고의 인간존엄을 밝혀 주셨다. 마침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 하느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그것은 곧 『너희 하느님께서 자비하실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 운자되어야라』하는 말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지인들을 불쌍히 생각해서 그분의 소망을 채워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나야 한다. 우리가 죄인취급하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셔서 당신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시니 우리들도 죄인들의 존엄성을 그리스도안에서 되차장 볼 줄 알아야 하겠다.
사람이 살아간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힘은 인정받는데 있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새 삶을 찾을 수 있는 기폭제가 있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이웃사람들롭터 인정받고 있음을 지각하도록 해야겠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될 때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은총의 세게에 도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성사적 표징으로써 비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때 사랑의 공동체가 될것이다.
『너희들이 서로 사랑할때 세상사람들은 너희들 내 제자들로 알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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