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人情이…
부모없이 고향에 오빠 한 분이 있는 처녀가 이웃에 이사와서 살았다. 명절때 집에 불러 우리 식구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였다. 객지 생활이 외롭고 고달프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어머니는 그 처녀의 어머니가 되었고 나는 그 처녀의 언니가 되어주었고 내 동생들은 그 처녀의 동생들이 되어 주었다. 그 처녀 결혼식땐 우리 집이 잔칫집이 되었다. 고향의 오빠는 오히려 손님처럼 다녀갔다. 몇년후 아들을 들쳐업고 찾아왔다.자기는 모니까이고 아들은 아구스띠노라고 했다. 친정식구들(우리 식구들) 사랑을 하느님께서 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한번도 하느님을 믿으라고 한적이 없었다.
60평생을 전도를 하시며 사셨다는 개신교 할머니 한 분이 작년부터 우리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집에 자주 놀러 오셨다. 큰 아들과 사시는 할머니는 며느님도 직장인이 되어 자식들의 손길이 늘 그리운 할머니었다. 그래서 항상 情과 음식에 허기져 계셨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가 오실때 마다 따뜻한 밥상을 차리셨고 말벗이 되어주셨다. 그 할머니는 지난 부활때 개종을 하셨다.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레지오 활동을 열심히하고 계신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신 따뜻한 마음으로 자기의 생활과 삶을 통해 넘쳐 질때 이웃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전교는 신자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황경아ㆍ체칠리아ㆍ청파동본당>
집념의 술친구 2年
한사람에 전교하기 위해 2년동안이나 온갖 방법을 동원. 끝내 그를 한 형제로 만들었다.
친척인 그는 가톨릭집안의 가장이면서도 성당에 나가지않았다. 전라도의 어떤 사이비총교에 빠졌다가 헤어난 사람으로 가톨릭뿐만아니라 타종교에 대해서도 매우 배타적이었다.
나는 그를 교리반에로 인도하기위해 설득작전에 나섰으나 그의 고집을 꺾지못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생활을 하는지 등을 살펴 그가 술을 즐겨마신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먹기싫은 술을 그와함께 마시고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막무가내이던 그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대화의 길도 트였고 교리반에도 인도됐다. 그러나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릴때마다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겨서 함께 교리반에 오곤했다 그러기를 2년. 지난 8월 드더어 20년만이 고집을 꺾고 영세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그뒤를 이어 그의 고집을 알던 친구들까지 그의 영세에 감동. 교리반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이웃전교」라는것이 쉽고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며 끝까지 인도하겠다는 신념과 이를행동으로 실천할때 성령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는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홍수철ㆍ마태오ㆍ대현동본당>
끊임없는 對話로
내가 대학교 2학년때 종합병원으로 실습을 나간적이 있다. 그때 내가 속해있던 과에 「체칠리아」라는 냉담중인 아가씨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부끄럽던 기억은 실습생 일곱명중에서 가톨릭신자가 3명이나 되었는데 아무도 성당에 다시 나가기를 권하거나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는 점이었다. 물로 나도 적극적인 권유를 한것은 아니었으나 믿는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는 체칠리아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돌려서 매일 조금식 내 신앙세계를 이야기하곤하며 그녀가 다시 주님께로 나가기를 기도했다. 나이도 비슷하고 전공도 같은 우리는 그과안에서 제법 이야기가 통했던것 같았다. 나는 그때「엠마오」라는 성경모임에서 매주 1회식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것에는 개신교신자들과 비신자도 있어서 분위기가 퍽 자유스러웠다.
나는 체칠리아가 이 모임을 통해 스스로 다시 성당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참석토록 권유, 했고 그녀는 드디어 한달만에 이를 허락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컷던지.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을 크게 자리잡고있다.
<손길수ㆍ젬마·돈암동본당>
약국찾는 손님을
현대인들은 종교를 원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는 현대인들의 이 원의를 이끌어줄 의무가 있다.
과거 우리 천주교는 비교적「전교」라는것에 소극적이었다고 본다 『믿으라』는 말만으로는 안통하는 현실임을 웬만큼 알면서도 몇번 나서서 「전교」가 결코 말만으로 될수 없는 큰일임을 나는 수차례 느꼇다.
나는 현재 서울 변두리 신흥주택가에서 조그만 약국을 경영해 오고있다. 수년간 두통과 여타 통증을 호소해 오던 내 이웃이 최근에는 영혼의 고통까지 호소해 와 나는 어줍잖게 전교에 나섰다. 나는 그들의 수가 복수인데에 창안. 구식의 「맨투맨 전교작전」보다 지역중심의 공동체형식을 택하기로 마음 먹은뒤 구역반장들과 중지를 모았다. 구역 내 예비자들을 그룹식으로 형성. 구역자체내에서 예비자교리교육을 소화해내자고.
드디어 몇개월간의 각고끝에 지난 가을 37명의 동네 예비자를 모아 예비자교리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부부예비자」가 많았는데 이는 거리와 시간적인 여유가 가져다준 특혜라고 본다. 현재 이 예비자들은 내년 부활절이면 영세를 받게되지만 이미 이들은 형제이상으로 친해져 있다.
아는 얼굴들 있어서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서먹하지 않는 이 작은 공동체활용이 선생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시대에 맞는 「전교」가되지않을까 생각한다.
<노치석ㆍ루치아노ㆍ천호동본당>
聖號를 기반으로
지난 가을이었다. 군에서 돌아온 선배께서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와여러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어떠한 상황에 자신을 맡겨보고싶어 이리저리 불교도 찾아보고 또 기독교도 찾아본후에 여러 문제점들을 알게되고 우리 가톨릭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가톨릭의 까다로운 절차와 형식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의 견해를 묻게 되어 나는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의해서 우리들의 생활에 찾아오셔서 그러한 걱정을 없애주신다』고 하였으나 나의 이러한 미흡한 대답에 실망을 하신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날 점심시간에 복잡한 구내 식당에서 식사전 성호를 긋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 크게 감동하시어 참된 신앙에 대한 그 본뜻을 이해 하신것이다. 이제 그는 하느님의 착한 종이 되고자 노력하고있어 내년 부활절쯤 기쁜소식을 전해 주리라 생각한다.
<이원일ㆍ베네딕도ㆍ성북동본당>
빠스카會를 통해
신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받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혼자만이 아닌 이웃에게 전파해야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곧 복음의 메시지를 다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신자로서 수행해야 할 중대한 사명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막상 전교를 하려면 생각대로 쉽게 되지않는것이 현실이다. 길가는 사람아무나 붙잡고 무턱대고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가 아니나 생화수준. 그리고 사회적 여건 등이 비슷한 사람들이라야 우선대상자로 잡을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적합한 대상자가 있다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환경조건이 갖춰져야할 줄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대상자 발견되면 우선 우리의 모임으로 안내한다.
「빠스카」회라 이름붙여진 우리회는 평리동 및 인근지역 30~40대 청『장년들이 월1회씩 회원 각 가정을 순회하며 1부 기도 2부 친목회로 진행된다.
바로 이 모임에 참여한 예비자는 함께 걱정하고 도와주는 모습을 실지 체험하고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성당에 나가게 되는예가 많았다. 지금까지 3년여동안 이 회가 존속해오면서 이 회를 통해 여러명이 영세입교했으며 지금도 준비중이다.
<라용슬ㆍ헨리꼬ㆍ평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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