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마태오 5:9)
예수께서는 누구를 가리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 하셨는지 아시겠읍니까?
태평스러운 사람들이라 불리우는이들 즉 평온한 생활을 즐기는 이들、논쟁에 뛰어들지 않는 이들、그들의 천성적 사교성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흔히는 방해를 받으려 하지 않는、귀찮은 일에 관여되고 싶지 않은 숨은 원의를 품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란 비난 혹은 모욕 (공격) 을 당했을때 이를 하느님께 맡기면서 아무런 반으을 보이지 않는 소위 착하다는 말을 듣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란 평화를 그토록 사랑한 나머지 불화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찾아주기 위해、갈등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스스로 평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야 말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 불리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과 합의를 이루고 그분의 뜻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매순간 자신의 행위로써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또한 긴장을 풀어줌으로써 가정、직장、학교、운동경기장、국가 등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접하게 되는 냉전 상태를 완화시키려 노력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서로 관련을 맺도록 대인 관계를 갖도록 해줍니다.
아마도 당신은 자신의 집에서도 아버지가 아저씨와 한번 다툰 일이 있다고 해서 다시는 말을 건네지 않고 지내시는 것을 보아 왔을런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당신의 할머니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고 건너방 아주머니와 말조차 하지않고 지내시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직장 친구는 다른 동료와 직위 다툼을 하고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당신 자신이 학교친구와 다툰일이 있으며、당신과 같은 종목의 운동을 하는 동년배들과도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제일인자가 되려는 상대편을 집고 넘어서려는 욕망-단지 좋은 의미에서의 경쟁만은 아니、지나친을 억제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한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면 당신은 분명 그안에서 작고 큰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며 퍼져 나가는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세상은 마치 거대한 병원과도 같고、국가들은 커다란 환자들같아서 흔히 상호관계가 긴자화되고 절단되어 전쟁의 위험이 있으므로 이미 일어나지 않았다면-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세상은 전달자들을 무한히 필요로 하고있다는 사실을 텔레비젼ㆍ신문ㆍ라디오는 매일 말해주고 있읍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평화는 크리스찬들이 맺는 전형적 대인 관계의 특후한 일면으로서、신자들은 자신이 접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 평화의 관계를 이룩하고자 합니다. 이는 진실된 사랑의 관계로서 그 안에는 그릇됨이나 거짓됨이 없고 그 어떤 형태의 잠재적 폭력이나 적대심、경쟁심、혹은 자기 중심주의가 없읍니다.
세상에 이같은 관계가 이루어 지게 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사실입니다. 흔히 사회에서 발견되는대인관계는 이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며 유감스럽게도 많은 경우 이같은 관계는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공동 생활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셨으며 이때문에 제자들에게 상대편이 먼저 시작해주기를、답이 와주기를 기대하지 말고、상호성을 띠울것을 욕하지 말고、항상 먼저 시작하라고 요청하셨던 것입니다.『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시오…여러분이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행복하여라、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예수께서는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오셨읍니다. 그분의 모든 메시지와 행위가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바로 이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때、흔히는 그릇된 사회의 대인관계 안에 내포되어 있는 가면이 벗겨지게 되며 인간들간의 관계 안에 숨겨져 있는 폭력적 요소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같은사실이 발각됨을 기겨워 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까지 유지되어 온 공동생활이나 체계를 감히 흔들려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경우에는 증오、폭력으로 응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예수께서는 인간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셨읍니다.
『행복하여라、평화를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이름을 지어 받는다는 것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바오로는 하느님을『평화의하느님』이라 하였으며 크리스찬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라고 하였읍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친족관계가 있음을 보이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행동하고 제 2차「바티깐」공의회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인간 사회안에 질서-그 결실로서 평화를 낳아주는-를 새겨 주셨음을 증거합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그렇다면 어떻게 이말씀을 생활해야 하겠읍니까? 무엇보다 먼저 세상 곳곳에 사랑을 전파시킴으로써 입니다. 1980년 노벨 평화상이 일생중 사랑만을 계속한 탁월한 여인「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에게 수여된것은 뜻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주변에서 평화가 깨드려질 위험이 있는 것을 볼때에는 조심스럽게 개임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투고 있는 양자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충분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소용이되는 방법 중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유모어(농담) 입니다. 명언집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미래의 왕국은 유모어를 즐기는 이들의 것이니 그들은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은 흔히 사소한일로 인해 절단된 대인관계를 볼때 이를 다시 회복시켜주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게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속해있는 어떤기관 혹은 단체의 심장부에서 평화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인식시키기 위한 특별한 활동을 벌임으로써 평화를 위해 일하는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뿐아니라 당신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당신의 나라、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위대하고 진실한평화 전달자들의 활동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웃을 위해 아무런 일도 성취하지 못한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저 세상에서의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합당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채 주어진 짧은 나날들이 지나가 버리고 마는것을 가만히 서서 바라다 보고만 있지는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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