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시대부터 교회는 한주간에 이틀 동안을 특별한 전례일로 발탁 되었다.
그리스도 부활의 영광으로 인하여 옛날 안식일(삽밭=토요일)을 새로이「주님의 날(주일)」로 일요일에 정하게 되었고 그 주간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금요일은 그 주간의 단식일이 되었다. 게다가 엄격하게 단식을 지키는 것은 성금요일부터 부활절 일요일까지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에 전혀먹거나 마시지를 아니했다. 이수난대재(성 금요일 단식)는주님의 말씀에서 근거했다. (마르꼬2ㆍ20)
마침내 더 긴 단식기간이 부활절 준비기에 도입되게 되었으며 비록 그준수 방법이 초기에는 보다 형형색색으로 준수되기는 하였지만 어떤 지방교회에서는 성주간에서만 단식을 지켰고 교회에서는 이틀 또는 더 많은 주간동안 단식을 지켜왔다.
일요일은 언제나 단식일에서 제외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 토요일에도 제외되었다)3ㆍ4세기 동안에 대부분의 교회들은 점차적으로 40일 단식을 채택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미 언급되었듯이 그리스도의 40일동안 광야에서의 단식(루까 4ㆍ2)을 표방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는 로마를 방문한 후에 유럽안에 로마제국을 순회하고서 339년 전세계가 40일 단식을 지키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지난세기에 크리스찬들은 어떻게 단식을 지켰는가?
초세기에 단식과 금육의 형태는 혼동을 일으켰으나 점차로 일반 규정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에 가서 그 일반규정은 전 교회사를 수락 실천하는 규정이 되었다.
캔테베리의 성 아우구스띠노(604)의 편지에는 성 그레고리오 교황이 금육의 최종적 형태를 선포하였음을 말하고 있다.『고기와 치즈 계란그리고 버터도 금지 되었다』거의 1천년 동안 이것은 건강이 약한 이유로 제외된 자들을 제의하고는 금육의 규범으로 남아왔다.
실제에 있어서 동방여러교회 그리고 슬라이브 민족의 나라 등의 많은 열심한 사람들은 같은 모양으로 단식을 보존하여 왔고 그들은 사순절 기간동안에는 일요일에도 고기나 계란ㆍ버터를 먹지않고 있다.
사순절에는 또한 엄격한 단식을 실천하였으며 하루에 한끼만 먹었고 극소량의 물외에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세기 이후에 한끼니만 먹은 시간은 전례의 기도 시간인 9시경(로마시간의 9번째 시간으로서 이것은 오후 3시에 해당한다) 이었는데 이 식사는 점차로 정오(낮12시)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현대 영어에서 정오를「눈(Noon)」이라고 한것은 9시경 「노나(None)」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노나란 말에서「눈」이라는 말이 유래한 것이다. 실제에서는 9시경은 오후 3시를 지칭하는 것이나 이것이 단식기간 동안에 음식을 먹는 시간을 그대로 변형하지 않고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영어에서「눈(Noon)」은 바로 음식을 먹는 시간을 말하고 있고 이것은 엄격한 단식과 연결되어 있는 말이다.
정오에 음식을 먹는 것은 14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실천되지 아니하였다.
옛규정의 엄격성은 교회장상의 권위에 의하여 얹제든지 아주 민감하게 적용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충주교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407)는 다음과 같은 훈령을 내렸다.
『만일에 그대의 몸이 하루종일 단식을 계속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면 지혜롭지 못한 그 규정이 해당되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꼬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우리를 위하는 분이시므로 우리의 건강을 위하시고 기대하신다』 고 말씀한 바있다.
교황 레오 1세(461)는『그러한 단식은 하나의 방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단식의 목적은 순수하고 거룩하며 영신적인 작용을 양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는 교회안에서 수많은 교회학자들이 찬양하고 기록한 명언을 남겼다. 또『단식하고도 우리가 앞장서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회사물로 주어지게 된다』
그러나 9세기까지는 단식규정이 아주 엄격하였으며 베네딕또회 수도자들은 하루종일 중노동을 하였는데 빵 한조각과 약간의 음료를 취하는 것이 허락될 뿐이었다. 그들이 취한 지극히 경미한 요기에 대해 4세기 까시아노 수도원장이 기록한 꼴라시오네스(Collationes)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꼴라씨오네스」란 말은「성경을 읽고 서로 이야기하기」로 풀이되는 말이다. 그 수도자들은 이「꼴라씨오네스」를 듣는 동안 아주 극소량의 요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 에꼴라씨는(Collation)이란 말은「경미한 음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말은 교회안에 엄격한 단식규정을 나타내고 있는 말이었으며 사순절 준비기간 동안 옛날에는 얼마나 엄격하게 단식을 지켜왔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엄격한 규정이 신자들에게까지 확장되었고 3세기말까지 새로운법이 보편적으로 실천됐다.
사람들이 정오에 식사를 하고 저녁에 가벼운 식사를 했으며 단식일(대재날)에 약간의 아침식사를 취하는 현대적 관습은 최근 기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19세기 초엽부터다. 초대교회에서 사순절의 목적중의 하나는부활전야때에 장엄한 세례예식을 위하여 예비자들을 준비시켜주는 것이었다. 사순절은 단식의 시기이고 공적인 참회의 시기일 뿐더러 세례의 예비기의 연례적 시기였다. 사순절의 고유미사 안에 대부분은 예비신자들에게 물과 세례언급으로써 깊이 생각하게 하였고 죽음으로부터 부활, 빛에 관한 언급을 시켜주고 있다. 예비자들은 사순절이 시작되면 선발자 등록명부에 등록되었고 신조와 주의기도 및 복음을 배웠다. 이러한 교육은사순 제 3주, 제 4주, 제 5주에서 그러했으며 그 자취는 현대 미사경본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세례를 청원하는 독실한 청원자들이라고 입증하기 위한 예절을 전해주고 여러달 동안 준비교육을 받아온 그들은 사순절 시작때 세례예식으로 인도되었으며 교육 받았다. 이러한 실천적인 것은 지역에 따라서 다르기는했지만 어디서나 예비자를 위한 약간의 학교였다. 만일에 예비신자들이 결혼을 하였다면그들은 사순절동안 모두 자제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은 목욕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저녁때까지 매일 완전한 단식을 해야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은 열렬한 기도를 실천해야 했으며 과거의 모든 죄를 성실하게 통회해야 했다.
그들은 성당안에서 신자들과 격리되어 있었고 공복재를 지키고 주교로부터 계속 권고를 받아야 했다.
성 아우구스띠노는『엄격한 규율로 그들은 다스려지고 예비자들을 위한 교훈으로 다스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지주일에는 주교가 주의 기도의 거룩한 말을 그들에게 남겼다. 마지막 욕요일에 그들은 단식을 중단했고 공동 목용탕에서 목욕을 즐겼다. (당시에는 공동목용탕 이었다, 여기서는 윤리적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다만 전승적 자취를 찾아본다) 이 공동목욕탕은「로마」시나 시골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세례예절로 잘 알려진 마지막 예절은 부활전야 장엄예식때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례헌장 109-1과 110에서 말하는 바와같다.
옛전통을 복구시켜서 오늘날 제 2차「바티깐」공의회의 어른세례 예식서 안에는 그 모든 전례의 복구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같은 참회의 길이고 크리스찬들과 함께 구원의 길을 가는 공동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원적 가르침의 발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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