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빈곤과 인간화라고 하겠다. 이 같은 현실속에서 이웃사랑의 현대적 의미도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생활 수준을 보장해 주는데 있다. 전세계 인구의 80%가 빈곤한 생활을 하고있는 빈부의 양극화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배분의 가치관 정립과 국민경제의 부를 늘리는 노력이 강조되는 것이다.
▲ 교회관의 어제와 오늘 하느님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계확을 점차적으로 계시해 오셨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와 같다. 제2차「바티깐」광의회는 교회를 자신의 복을 구하는 곳으로만 여겼던 신자들에게 하느님은 전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역사와 구세사는 하나이고 현세는 구세사 안에서 한 과정임을 천명했다.. 교황 요한 23세도『현세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세계로 개혁하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고 강조하셨다. 또한 인간의 구원이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기도를 통해 인간이 사랑으로 하나되어 성부ㆍ성자ㆍ성신 삼위의 공동체 안에서 일치하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요한 17ㆍ21~23)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이웃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성화된 다음 마지막으로 신의 공동체와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곧 하느님의 구세사이듯이 영적생활과 세속생활은 부리될 수 없으며 현재 우리의 지상생활은 바로 내세의 일부인 것이다.
▲ 사랑의 공동체인 이웃과 교회
사랑은 부자가 가난한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자선행위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웃사랑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육화로 인간의 생활안에 구체화되어 나타나듯이 서로가 친형제 이상으로 기쁨과 슬픔, 재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하는님은 인간이 보다 깊고 넓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식하고 발전, 개량시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는 물질을 인간각자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요소로 함과 동시에 태양, 물, 공기등의 물질을 함께 소유관리하는 과정에서 이웃사랑의 공동체적 원리를 더욱 잘 깨닫고 발전시키도록 이끌어 주신다.
인간의 생존은 자연자원 물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자기 이외의 사람들과 협동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인간은 협동의 원리를 긍정 혹은 부정할 수 있는 자발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가치와 결과를 인식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7명이 2천 7백원으로 시작한 신협운동은 수많은 사람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인 예이다. 자발성을 무시한 이웃사랑과 협동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상실케 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걸고 자발적으로 무한한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 이웃 사랑의 실천과 증거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의 한계는 애매모호 하다. 그러나 오늘날 날로 심각해지는 자원 고갈과 빈부격차를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일시적인 비판은 자못 자극적이지만 사랑에 의한 영구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은 희망적이며 크리스찬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성체를 모시는 공동체인 교회는 가난한자에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가난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서로 도우며 생활했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가난한 이웃을 물질적으로 도움으로써 참된 교회의 행복한 모습을 증거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이웃사랑의 현대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뭉쳐 상부상조하는 운동을 뜻한다
▲ 이웃사랑과 현대적 의미의 사회참여
교회 즉 하느님의백성은 천상국가의 시민인 동시에 지상국가 시민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몸소 일하신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라 인간적 가정적 직업적 학문적 기술적 노력을 중교적인 가치와 결부시켜 하나의 생생한 종합을 이루어 자기의 온갖 현세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가난을 해방시키려는 사랑이 있다면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교회는 이미 신협운동을 통해 가난을 극복하는 영구적이고 자립적인 방법을 이웃에게 권해왔다.
가난한 이웃에게 빵을 나누어주신 그리스도의 표양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현실사회를 직시하고 참여하는 사랑의 계명을 행동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웃사랑과 예비선교ㆍ전례운동
초대교회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나눔으로써 이웃에게 감화를 주고 하느님을 증거했듯이 오늘의 교회도 이웃과 지역사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여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이웃을 잃어가는 풍조는 인간관계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다.
이 같은 풍조속에서 신자생활도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형식적인 전례참여에 그친다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몸을 이루는 신비체인 교회의 구원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동일한 뜻을 향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는 생활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초기교회 공동체와 같이 미사에서부터 주님의 사랑과 형제애가 연결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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