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장 13절) 는 성서의 말씀은 우리가 이웃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은 생명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 즉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것을 이웃에게 주라고 하셨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나환자 정착촌에서 일생동안 헌신해 온 폴블랜드는 나환자들에게 주고싶은 가장 큰 선물은「아픔」이라고 말했다. 감각이 없어져 마디 마디가 절단되는것 조차 느끼지 못하는 나환자들은 아픔을 느끼는 정상인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아픔이란 자신을 지켜주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로 여겨지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나환자들에게 아픔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폴 블랜드의 말은 나환자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환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의식주나 위생, 문화시설들이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환자들도 완전한 인간으로 보는 태도이다.
사순절이 되면 교회는 불우이웃을 위해 가진 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나눔을 자신에게 필요치 않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인 것만으로도 흡족하지 않다. 마더 데레사도 노벨상 시상식에서『불우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고 사랑이며 그것은 인간존엄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3년간 나환자돕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점은 나환자들도 물질적인 도움보다 인간으로 대접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某본당 주임신부 재직시절 만신창이가 된 나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주면서 시작된 나환자돕기 활동을 통해 물질적인 도움이 나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환자들에게 물질적인 도움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사랑이며 관심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정신적인 사랑은 나환자들도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은 영혼을 소유한 인간아라는 점을 인식할때 시작된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추한 모습이지만 영혼만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실제 그들과 함께 지내려는 젊은이와 수도자가 늘어가고 있는 현상은 매우 기쁜일이라 하겠다.
복음성서는 예수께서 많은 나환자들을 고쳐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환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은 정신적 실존적 치유라고 할 수 있다. 나환자들과 대화하고 함께 먹고 마시는 가운데 자신들이 나환자라는 사실을 잊도록 해주는 것, 즉 나환자들이 겪는 소외와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이 정신적 실존적 기적인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랑은 같이 느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은 고통을 같이 느끼는데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유기체로 지체의 아픔을 다른 지체가 느껴준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지체인 인간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셨고 치유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지체의 아픔을 서로 느낄 때 진정한 신비체를 이룰 수 있다. 같은 본당안에서 신자간에 불우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외면한다면 그리스도교 정신,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체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마태오복음 25장 최후심판의 말씀은 매우 감격적이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자들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전 성탄절, 대부분의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을뿐 거들떠 보지 않는 늙은 소경걸인에게 같이 구걸하는 처지인 젊은 걸인이 하루종일 자신이 구걸한 돈 전부를 털어주는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가난한자이셨던 그리스도께서는 더 가난한 자를 돌봐주시고 목숨까지 바치신 것이다.
사순절동안 우리는 주님의 표양에 따라 굶주리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자, 즉 가난한 자와 같이 느끼고 그들을 인격자로 대하는 자세를 갖춰야 하겠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I서 4장 20절)』라는 말씀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이웃사랑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당부 말씀은 우리가 전인격을 걸고 서로 사랑할때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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