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경,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조내용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예수재림사상이 추가되지만 기본적이고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었다. 이같은 그리스도교회 신앙의 핵심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기록되고 후대에 전해졌다. 이수난사회와 발현사회는 4복음서의 끝부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같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되고 일관된 것이다.
수난사화의 특징은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의 죽음을 놀라울 정도로 감정을 억제하며 사건 하나 하나를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는 점이다. 인간적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기에 구약성서 귀절을 20여군데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예수사건이 단순히 불행한 한 인간의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하느님의 경륜에 따라 이뤄진 사건으로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께서「갈릴레아」에서 활동할 당시 그분의 정확한 신분을 파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실패의 순간,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 메시아라는 사실이 다소나마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의 수난사화는 최후의 만찬이나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체포장면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마르꼬복음의 수난사화를 14장 12절의 최후의 만찬에서 부터 훑어보면 15장 41절 까지로 일단락 지을 수 있겠다.
최후의 만찬(마르꼬4·12~26)=최후의 만찬은 초대교회에 이르러 만찬례로, 현재의 미사로 발전됐다.
마르꼬는 최후의 만찬을 해방절 만찬으로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은 해방절 2일전 제자들과 나누신 이별만찬으로 보고 있다.
마르꼬는 복음상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행동은 전통적인 유다인의 연회주례자와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예수의 고유한 면모는 행적에서 드러나지 않고 유다인의 풍습에 따라 행동하시면서 그 행동을 풀이해주신 말씀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前 食부분에서 나누는 빵은 자신을 나누어주는 것임을, 後食부분에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는 포도주 잔은 이스라엘백성은 물론 온 인류와의 새로운 계약을 위해 흘리실 피임을 알려주신다. 또한 마지막 25절에서는 역사에 절망하시고 초절적인 하느님께 희망을 두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심(4·32~42)=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죽음을 예감하고 인간적으로 크나큰 고뇌에 싸여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평소 낮에는 활동하시고 밤에는 홀로 기도하셨듯이 마지막으로 수난을 멀리해 달라고 청하는 예수는 인간적인 원의를 앞세우지 않고「아버지의 뜻대로」해주실 것을기도하셨다.
잘히신 예수, 대제관 앞에서 신예수(14장43~65)=수많은 유다인들이 해방절을 지내려고「예루살렘」에 모여있는 가운데 예수께서 잡히시자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다. 유다 최고의회와 빌라도에게 심문받으시는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전세계를 통치할 이상적 군주의 메시아 개념을 갖고있던 유다인들에게 3년동안 비밀로 하셨던 사실을 털어 놓으신다.
죽음을 앞두고 정치적 메시아 개념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순간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인정하신 것이다.
빌라도의 심문, 사형판결을 받은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숨을 거두신 예수(15·1~41)=유다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된 예수께서는 당시의 상황아래 정치적인 죄목으로 고발되고 십자가 형에 처해졌다.
예수께서는 극심한 십자가상 고통중에서도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부하심으로써 맑은 정신을 가지셨고 마지막 기도를 바치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는 십자가상의 마지막 말씀은 고통스러운 외침이 아니라 시편 22편 의인이 하느님께 간구하는 기도였다. 37절의「큰소리」도 마지막 기도로, 예수는 결코 절망상태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이방인인 백부장이 최초로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는 신앙고백을 하게된다.
유다인들이 성안에서 해방절을 준비하며 희생제물이 될 수천마리의 어린양을 잡는 순간 성밖 골고타 언덕에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당시 36세를 일기로 요절한 예수, 철저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철저하게 인간을 아끼다가 처절하게 실패한 청년의 죽음을 온 인류사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예수사건」은 현상적으로 볼때「갈바리아」에서 끝난 것이다. 그러나 예수사건은 계속된다. 부활로…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