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절이 시작되면 교회는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는 뜻에서 알렐루야를 힘차게 부른다. 이 알렐루야의 환호 소리는 부활의 신비를 깊이 깨닫는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인간의 지혜로는 알아듣기 힘든 신비중의 신비일 뿐만 아니라 부활을 믿는다는것 또한 쉬운일이 아니다. 이성적인 주지주의자들에게는 부활신앙 자체가 어리석게 보여졌으며 특히 현대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시점에서는 더욱 어리석은 신화시대의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물론 신약성서 전체가 말하는 믿음은 곧 부활을 믿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목숨을 내걸고 증거한 것、즉 복음의 핵심은 십지가 상에서 죽으신 나자렛 예수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라는 것이었다.
사도들 가운데 바리사이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던 바오로는 개종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생애 전부를 바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는데 앞장섰다. 이같이 박해의 위험과 조소를 받으면서도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신념을 다해 증거한 사도들의 행적에서 부활의 신비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부활이 꾸며진 이야기라면 생전의 예수를 보지 못한 사도 바오로와 같은 이들이 부활의 신비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도들은 참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체험했다.
부활은 우리의 기억이나 마음속에 예수께서 살아계신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위대한 인물로서 많은 이들 안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살아있다면 그리스도는 역사상의 다른 성현들과 다를바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말미암아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활은 죽었던자가 죽기전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부활은 언젠가는 다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시는 죽지 않는 불사불멸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로마서 6장 9절 참조) 예수의 부활이 라자로의 부활과 근본적으로 다른것은 죽음의 지배를 벗어난 생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어둠의 세력을 쳐 이기셨다. 죽음의 그림자도 없는 순수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이야 말로 참생명 인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죽지 않을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이기는 힘을 가진 부활하신 예수는 모든 인간을 구원할수 있는 분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했다. (사도행전 2장 14절~36절 참조)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고백은 곧 예수는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뜻이다. 필립비서 2장 8절~11절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이 세상의 모든 권세위에 계신 분으로서 이세상의 권세 가운데 가장큰 권세인 죽음까지도 쳐 이기신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라고 말할 수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멸망케 하는 마지막 원수인 죽음까지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믿음의 바탕이며 중심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물론 인생자체와 세상의 모든것이 헛된 것이라고 했다. (꼬린토전서 15장 14절참조)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과 죽음이 모든 것을 삼키는 세상에는 참된 가치도 진리와 정의도 존재치 않는다.
작가 미하일로프가 『불멸의 흔이 없는 곳에 자유를 위해 싸울 의미도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불멸의 생명이 엾는곳에 자유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은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의 진리ㆍ정의ㆍ사랑에 참된 의미의 가치를 부여하며 희망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 전교의 해를 맞아 우리가 이웃에게 전하는 믿음의 핵심은 부활의 믿음、부활의 복음이어야한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와 함께 생활한 사람이며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평신도 사도직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삶 전채를 통해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직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터 앞서야 겠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고 부활을 증거하지 못할때 의적인 활동은 무의미한 것이다.
부활의 신앙이 믿음의 촛점이 될때 우리의 믿음은 생명력을 갖고 성장하며 전파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교회와 세계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복음증거의 생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자신의 부활을 뜻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영원히 사는 신비로운 존재가 되도록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상을 손상시키며 죄를 반복하는 인간에게 거듭 용서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예수의강생과 삶ㆍ수난ㆍ죽음ㆍ부활이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당신과 함께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되도록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드러낸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로 영적인 존재가 되셔서 우리의 영혼속에 오신다.
하느님께서는 눈으로 본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인간의 오관과 이성、상상을 초월한 가장 큰 선물인 부활을 주셔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당신과 같이 되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질 것』(꼬린토전서 15장 44절)이라는 성서말씀이 부활의 신비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즉 부활의 신비를 깨달을때 우리는 참으로 기쁘게 「알렐루야」를 크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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