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에 맞추어 제작될 극영화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들 내나름대로 말한다면 첫째、재미가 있어야 한다. 영화예술의 가장 큰 적은 권태감이다. 권태감을 느끼고 있는 관객에게는 그 영화의 주제도、작가의 메시지도 모두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 전달이 된다해도 마치 감정없는 전보문을 읽듯 무미건조하게만 전해질 뿐이다. 영화예술이 노리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재미란 반드시 오락적 요소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있어서의 재미란 그것이 오락적이든 아니든 어떤 긴장감을 주는것을 말한다. 영화예술의 작품으로서의 성패는 그영화의 상영시간 내내 긴장감을 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든 환자라도 쓴약 먹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그 쓴약 위에 사탕을 얹어 환자가 저항없이 먹게한다. 그렇게 위장된 약은 환자의 뱃속으로 들어가 치료라는 목적을 훌륭히 수핼할 것이다. 영화예술이 관객의 가슴속으로 전달되는 과정도 그것과 같다 할 것이다.
둘째、종교냄새가 나서는 안된다. 한국이 만일 구라파나 미국같은 영화의 선진국이라면 구태여 이런말이 필요없겠지만 한국의 종교영화에서는 너무나 심한 종교의 냄새가 나고 계몽영화에서는 너무나 심한 계몽의 냄새가 난다. 또한 소의 일컫는 수준 높은 예술영화에서는 너무나 심한 관념의 냄새가나는 이런 영화의 풍토에서는 종교영화를 종교냄새가 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그런 엉뚱한 말이 납득이 갈 수 있으리라 본다. 몇 편 안되는 과거 한국의 종교영화에서는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오로지 거룩하게만 표현 하려했던 것 같다. 실상、거룩하게만 살다 간 사람은 2천년 전 「나자렛」에서 살다 간 예수라는 그 한사람 뿐일 것이다. 모태에서부터 성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성인으로서의 참된 가치는 그가 진리를 발견 했으며、그가 발견한 종교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인 그 진리를 또한 몸소 실천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의 일생은 그가 발견한 진리를 몸소 실천키 위해 다른이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묵주를 손에 든 주인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주여…주여…』한다고 해서 그것을 가톨릭 종교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종교영화라고 해서 그 다루는 인물과 내용을 종교적 차원과 분위기로만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셋째、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성서의 신비로움 중의 하나는 그것을 읽을때 마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문득문득 현재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럴 때의 성서는 이미 2천년도 더 지난 과거의 사실들이 아니고 지금 현재 바로 나에게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내가 품고 있는 문제와 정답은 성서 안에서 다 발견할 수 있다. 2백주년 기념영화도 2백년전의 그 사실들을 현재의 우리에게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일이야 없겠지만、현재와는 전혀 무관하고 이미 과거에만 가치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지금 재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기념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천주교회의 설립자들의 업적을 지금 단순히 기념하자는 목적만도 아니며、그들의 피땀 흘린 노고에 한편의 영화라도 만들어 보답코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후손들에게 남기고 간 크고 작은 교훈들을 오늘의 우리가 종교인으로서、사회인으로서 재음미하고 반성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기념영화는 그런 목적을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넷째、대작이여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종교사인 동시에 한국의 민족사이다. 영화학도로서 그 영화적 소재면에서 볼때 한국천주교회사 속에는 수천년을 묵묵히 흐르는 대하같은 그런 서사시적 요소가 있는것 같다. 이벽ㆍ정약용 등의 정신을 김대건 등이 이어 받고、김대건 등의 정신을 우리가 또한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소품으로는 그맛을 도저히 살릴 수 없으리라 본다.
서사시와 서정시를 합한 것 같은 TONE의 영화가 이상적이라 생각된다.
한국 천주교회사를 주제로 다룬 대표작적인 영화는 이미 이전에 훌륭히 만들어 졌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와 영화계내의 문제로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앞으로 언젠가는 달성 되어야 할 한국 천주교회의 숙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들은 앞서 말했지만 영화학도의 눈으로 볼때 한국 천주교회사는 영화 소재의 창고이다.
끝으로 1984년에 개봉을 목표로 기념영화를 제작코자 한다면、그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성격상、각본과 기획과정은 늦어도 1982년 봄까지 완료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렇지 못하면 졸속제작을 면하기 어렵고 졸속제작을 통하여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기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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