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양은 국민학교 교사로 여러해 근무해 오고 있는 착실한 여교사이다.
M양의 상담은 2학년때 시작되었다. 상담교사가 휴일당직 근무를 하는 무덥고 축축한 여름날 처음으로 짧은 대화를 가졌다. 더위 탓인지 그날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는 학생은 몇명뿐이었다.
학교 뒷담옆 구석진 자리에서 더위를 피해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것 같다. M양은 교실에만 있어야할 책상을 먼곳까지 끌어냈기 때문에 꾸중을 들을것으로 겁을 먹었던것 같다. 그날은 그의 무안해하는 마음과 순시도중 오래 머물수도 없는 사정으로 필요한 간단한 대화만이 오갔다. 그러나 그후의 만남에서는 달리 친근감을 느끼는 M의 표정에 情을 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수줍은 편이라서 먼저 말을걸어주는 배려가 필요했던 학생이었다. 담임교사를 통해 성적이 우수한 편은 아니나 열심하며 경제사정이 넉넉치 못하다는것 외에는 가정에도 특별한 애로가 없는 무난한 학생으로 이해하면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 스산함을 느낄때 교문지도에서 단속된 지각생 속에서 M양을 발견했다.
지각생의 난감한 표정과 몹씨 추워하는 까칠한 모습이 딴 학생들과는 달리 애처롭게 느껴졌다. 가스 중독으로 고생을 하다가 회복되어서 늦게 등교를 했다는 설명으로 지도교사의 양해하에 양호실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운동장 조회를 마치고 1교시가 시작되려 할때 양호실로 보낸 M양이 상담실에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그날 일과후 2시간 남짓 기운 없는 M양이 털어놓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수산시장이었던 영천교근처 某동에 살고있던 M양의 가계는 목판에 생선을 놓고 파는 어머니에 의해 꾸려져 오고 있었다.
어려서부터의 기억을 더듬어서도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있는 날은 몇 날밖에는 없으며 요즈음은 더욱 참을 수 없게 횡포가 심해졌다고 했다. 동생들은 술취한 아버지를 몹씨 무서워해서 엄마나 M양이 없는 집에는 들어갈 엄두를 못내는 것이 또 다른 고통이고 불편이라고 했다.
맏딸로 고생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기다리던 M양은 지쳐서 깊은 실망에 빠져 있었다. 술취한 행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올때는 피해자가 아버지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버지이면 어쩌나 하는 두가지 마음이 교차됐다고 했다.
그날은 연탄까스 중독에서 입은 아버지의 피해가 회복되지 말고 그냥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몸집도 작고、조용한 M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엄청나기만 했다. 몸이 괴로우니까 아버지가 더 원망스러워져서 그런생각이 들었을거라고 평범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달래서 보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M양의 아버지가 몹씨 불쌍한 이웃으로 느껴져왔다.
일정한 직업없이 아내의 도움으로 생활하는 남편의 괴로움을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M양에게 바른 인간관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했다. 어떤 인간도 존귀하며 그래서 모든이가 존중받아지도록 노력하는 의지를 북돋우는 일에 힘쓰도록 용기를 주어야 했다.
자기 가정에서 조차도 삶이 기대되지 않는 아버지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여지가 충분함을 이해시키는 만남이 계속되었다. 사람의 존재에 대한 대화와 독서가 대상이 되었다. 상담실 구석에 꽂혀있는 경향잡지를 자주 뽑아갔다. M양이 아니라 M양 아버지에 의해 읽혀짐을 알았을때의 감격은 지금도 새롭다. 무슨 일이든 시작만하면 잘되어 진다는 믿음을 여기서도 얻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의 좋은 변화에 힘을 입은 M양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많은 학생들이 가고싶어하면서도 뜻을 이루기 어려운 서울교육대학에 합격하면서 M양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더불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고사로라도 없어져 안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를 좋게 보라고 강요하는 지도는 효과가 적은 일일것 같다. 아버지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심어주는 노력은 간접적인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효과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없애주는 것이었다. <계속>
지금까지 세종대교수이신 문용린 교수께서 수고해주셨읍니다. 이번호부터는 무학여고 교도주임이신 이민자 교사께서 집필해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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