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마르꼬 12ㆍ30) 수도생활은 진심으로 이 첫번째 제명을 택하고 이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온일생을 바치며 사는 생활이다.
그들은 이 하느님의 사랑만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고 깊은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 사랑이 그들 관상의대상이며 광상의 최고의 목적이었다.
바로 이 사랑이 수도자를 정화시키고 수도자의 얼굴을 깨끗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관상생활은 이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을 찾기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활동생활 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고 있는 만물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그분을 찬미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이 사랑, 이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모든 시선과 정열을 한군데 모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수도자들이 하는 부분의 기도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찬미와 영광의 기도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사랑」은 그들의 최대목표요, 그들의 전부였다. 그들은 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기위해서 침묵과 고독과 암흑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하느님이 침묵과 암흑을 당신이 숨으시는 장소로 삼이시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철저히 어둠속에 숨어 계셨다.
그러기에 나도 두려움을 안고 그분을 찾기 위해 이 어둠속을 가야만 했다.
고독이니 침묵이니 어둠이니 하는 것이 원자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자들이 침묵과 고독을 찾는 것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로 그것에서 사랑을 찾기 위해서이다.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찾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침묵과 고독 속에서 생활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형제와 친구들과 같이 함께 있는 이상으로 가까이 있을 수 있었고 내가 육체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형제들도 많이 볼 수 있었따. 특별히 난 소외된 형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침묵과 고독의 위대함이 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수도자는 자기의 욕망과 요구, 관심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자기 일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들이었다. 하느님 안에 모든 것이 있기에 하느님만 찾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하느님을 찾도록 인도해주시는 분은 성령이셨고 하느님을 찾았는 순간 잃어버린 자기자신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임을 느꼈다.
이곳 수사들은 이 하느님을 찾기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침묵과 고독속에서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어둠과 고독속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유혹도, 후회도, 변심도 많았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은 고요 가운데 미풍처럼 오셔서 나를 감싸고 계셨다. 이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일어설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다.
이 사랑은 잠시 있다가 또 가버린다. 이 사랑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에, 또침묵과 고독속에서 기다리는 것, 이것이 수도자들의 큰 일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곳에서 느낀것은 수도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인내」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이 인내가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의 믿음에 얼마나 내 믿음이 약한것인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때때로 아무런 계획성도 미래도 없는 이 생활에 순응하기 힘들다는 어려움도 느꼈다. 때로는 바다 한 가운데 표류 함으로써 자신의 고된 항로를 혼자 개척 해 나가야했고, 광야에서 찾는 것은 자신도 아니고 동료의 위로도 아니고 오로지 하느님 뿐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둠과 고독에서 내 믿음을 강하게 하고 나를 단련시키시는 고마운 분이시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이러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뿐이었다. 이러한 침묵과 고독은 많은것을 알려주고 보게해 주는 수도자의 참된 스승였다. 오! 복된 고독이여!
결국 나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것은 너무나 많았다. 참으로 기쁘고도 어려운 한 달이었다.
그러나 기쁜이 더 큰 생활이기에 고생은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나는 나의 어려움보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에 감동되어 그대로 주님의 부르신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주님은 당신과 같이 온전히 희생할 것을 원하셨고 그 길로 부르고 계셨다. 난 오로지 모든 것을 주님의 뜻안에 그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했을 때 가장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다.
하느님은 나를 당신의 가난한 수도자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의 은총에 난 얼마나 큰 감사를 드렸는지… 이곳 수도원의 원장과 모든 수사는 이 성소를 위해서 얼마나 큰 사랑과 기도를 보여줬는지 모른다.
난 그 누구보다도 천국에 있는 토마스머턴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나의 이 성소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고 어려울때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기도해 주고 도와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한달동안의 생활을 마치고 원장과 수사들의 인정어린 사랑을 받고 정든 수도원을 다시 오기위해 나는 떠나야했다. 이곳 수도원의 원장과 수사는 선교자적인 열의 너무나 크고 우리 한국에 수도원을 세울려고 하는 그 열의에 난 너무나 고마웠고 거기에 모든 경제적인 것까지 기네들이 하겠다고 하니 이 기도의 사도직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그들의 마음안에서 더욱 역역히 볼 수 있었다.
선교 2백주년을 맞이한 우리 한국교회로서는 이 얼마나 큰 하느님의 선물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이세상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사랑과 희생을 바칠 젊은이가 필요하다.
이 세상과 이 교회를 위해 기도의 사도직을 수행할 젊은이가 필요하다.
항상 큰 희생을 바치는 곳에서 큰 가치가 따르게 마련이다.
분명 이 수도자의 길은 완덕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길이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마태 19ㆍ29)이 수도자의 길은 분명 풍성한 결심을 맺는 길이다.『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루까14ㆍ38)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기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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