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한국 체류중 10여 차례의 강연과 인사말 3차례 이상의 기자회견 등 많은 말을 했지만 데레사 수녀는 말을 하는 형이기 보다는 듣는형이다 듣는 귀와 행동화 시키는 마음이 그의 특유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호기심 있게 먼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을 못보았다. 주위에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연에 대해 물어보는 것 보다는 조용히 지켜보며 듣고 계시는 모습, 듣는 귀가 크게 열려 있기에 언제 어느 사람의 필요에도 쉽게 응할 수 있는 것이다.
대구로 향해 내려가는 도중 우리는 옥천 성모병원에 들렸다. 데레사 수녀의 갑작스런 방문에 그 곳 수녀들은 어쩔줄을 몰라했는데 날씨는 더운 오후였다. 데레사 수녀가 뜨거운 홍차를 원하는 눈치를 알고 부엌에 들어가 물을 끊이도록 부탁하고 나오는 동안 수녀들은 병원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홍차가 없어서 병원으로 다시 가질러간 동안 데례사 수녀는 앞에 놓인 물을 마시면서 걱정말하는 눈짓을 했다. 차를 대접해 드리는 것이 그에게 고통을 준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차내에서 두 수녀의 대화는 그날 마신 네잔의 차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랑의 선교회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를 하루에 네번이나 한것이다. 「캘커타」에서는 수녀원 밖에서는 물한잔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수녀들이 부유한 집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담통 빈촌에 우리 일행이 도착하던 순간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을 일구에 우리차가 정차할때 뒤따른 신문기자들을 돌아보며 데레사 수녀는 나에게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 어린이날 저렇게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기자들의 렌즈에 담아주어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상처를 남겨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며 수행기자들에게 그 뜻을 전했고 기자들은 고맙게도 그 뜻을 받아 주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사랑의 일면을 또 한번 목격한 것이다.
출국하던 날 아침에는 김 추기경을 보시고 데레사 수녀의 수도서원 50주년기념 축하미사를 드렸다. 그는 1931년 5월 24일 첫 서원을 했다고 한다.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들이 함께 참석하여 미사를 드리고 축하를 드린 다음 아침식사를 시간이었다. 우리 수도회 주변에 하반신 마비로 고통을 받는 처녀들을 미사에 참석시켰는데 두 사람이 수녀의 싸인을 받기를 원해 나는 식당에서 잠깐 그를 밖으로 모시고 나왔었다.
싸인을 해주신 수녀님은 등에 업혀 있는 장애자 보다는 업고 있는 두 젊은이들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당신들의 사랑과 봉사에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하시며 『이렇게 착한 젊은이들이 있었구나』하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때 신체장애자인 아가씨들에게만 정신을 쓰고 있던 나는 또 한번 마음 속으로 『역시 이 분의 사랑은 다르구나』하고 외쳤다.
72세의 고령으로 그 분주한 예정에 시달리시면서도 오히려 갈수록 싱싱한 음성이며 밝은 미소를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은총 속에서 사는 삶은 그런것인가 보다. 또한 72세의 수녀가 아직도 그렇게 하느님께 새록새록 놀라움과 감사드리는 삶을 사는데 놀랐다. 교황 대사관을 방문할 때의 일이다. 데레사 수녀는 인사차 교황 대사의 초청에 응했으나 각국 대사들이 그곳에 모여 기다리고 계신 것을 전혀 모르셨다.
인사를 마치고 나오려고 하는 순간에 저쪽 방에 각국대사들이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수녀는 그방으로 옮겨20여개국 대사와 부인들에 둘러 싸였다. 그리고는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사들을 향하여『당신들은 당신들의 나라가 한국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맞고 지켜가기 위해 보냄을 받은 평화의 사절자들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루식 평화를 선포하신 것처럼 당신들도 스스로 온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평화의 전달자로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과 평화의 봉사자가 되어 주십시오』나는 말씀을 마치고 차에 올랐을때 그는 감격을 못이겨 플레 수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하느님은 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성령께서 매순간 도와 주신다.
그는 이때껏 대사가 Messenger(사자) 일을 생각한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떠올라 그 갑자기 부탁 받은 담화를 할 수 있었는지 너무나 신비스럽다고 거듭 말했다. 『너희 안에서 말하는 것은 나다』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현존을 새로이 체험하는 그 기쁨을 나누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의 모든 관심은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에 있다. 가족계획의 무분별한 이행으로 모태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생명을 위해 그분은 마음속 깊이 읽고 계신다. 어머니가 돈을 써가며 자기 자식을 죽이다니 낳아서 기르는 다른 자식에 대한 사랑을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 가종중에 소외당한 사람이 없고 모두 당신의 사랑에 만족한다면, 데레사 수녀가 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 당신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어린이를 하는님의 선물로 귀하게 키우십시요. 가족이 공동으로 기도를 바치십시오. 사랑은 거기에 있읍니다』
이것은 데레사 수녀의 숨결 만큼이나 자주 의쳐 나오는 말이라 나는 단어 하나 빼지 않고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관상하에 사람입니다』한 수녀의 말씀대로, 또 대구 효대강당에서 질문에 답할때 결국 데레사 수녀는 24시간 기도 한다고 말씀한 것은 진실한 말씀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의 덕과 인류를 향한 깊은 애정은 바로 24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관상하는데서 샘솟하는 것이다.
데레사 수녀가 귀국 길에 비행기에서 나에게 쓴 편지에는 분명한 글씨로 내 이름을 쓰면서 말씀하셨다.
『레오날드 수녀님, 수녀님이 날마다 더욱 더 그리스도와 닮아가기 위해서 기도해 드리립니다. 겸손한 마음과 순수한 생활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우리의 생명의 빵으로 주신 그 기쁜 소식을 선표하시면 수녀님과 나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보다 긴밀하게 하나되어 머물 것입니다』
이제 매일 성체를 모시는 중에 또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불우한 예수님들을 섬기는 충에 데레사 수녀와 우리는 끊입없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레사 수녀가 보고간 한국땅 구석 구석에서 어두움 가난ㆍ병고 억압ㆍ착취에 시달리는 고통중의 형제들이 따뜻한 빛과 사랑 속에 보호받게 되기까지 그와 같이 24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관상하며 일해야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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