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비진스키 추기경이 3년간의 연금생활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자신이 석방된 은혜를 흑인 마돈나에게 돌렸다. 그는 공산정부가 폴란드 주교를 투옥시키는데 찬성하지 않았다는 죄로 연금당했었다.
그의 승리에 대한 흔적들이나 강한 성모신심 그리고 열렬한 국수주의 등은 그 가부동의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인 입장에서 비진스키경은 공산주의 자들과 공존하는 방식을 택하려 노력했다. 1950년 그는 교회가 공산주의 정부를 인정하는 대가로 교회에는 자유를 허용하는 내용의 한 협정에 서명했다. 물론 그 자유는 한번도 충분히 허용된 적이 없었다.
그후 1956년 블라디슬라우 고물카가 실권을 장악했을 때 비진스키 추기경은 연금에서 풀려났으며 1950년과 비슷한 협정을 체결했으나 그 결과는 역시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그의 많은 지지자들이나 비판가들에 따르면 그가 정규적인 강론시간 등을 통해 명백히 천명한 對정부 강경노선은 정부의 실책에 대한 것이었다. 「바르샤바」에 있는 한 서방의 교관은『비진스키경은 누가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벌려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분 자신도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그분은 폴란드인의 생활에 중요한 일들은 옹호한다』고 말했다.
비진스키 추기경의 폴란드 공산정부와의 접촉은 비판을 받았다. 1950년 공산정부와의 협정체결에 대해 당시 연로한「크라코프」대교구장이었던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은『이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1년에 이르도록 가톨릭 교회는 죽음과는 먼 거리에 서 있다.
정부의 교회에 대한 각종 제한에도 불구, 폴란드 전체 국민 3천6백만의 90%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며 폴란드 교회들은 개방돼 있고 교리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신학교를 지원하고 비록 제한을 받고있긴 하지만 가톨릭 신문이 존재하고 있다. 1957년 5월「로마」에서 비진스키 추기경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면서『우리는 공중누각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을 1백%성취하기란 항상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70%만 얻을 가능성이 있다면 하느님이 모자라는 것은 더 보태주실 것을 믿고 우리의 손을 뻗칩시다』라고 역설했다. 비진스키 추기경은 오직 교회의 자유만을 위해 그토록 뼈아픈 고통을 무릎쓰고 자신이 체결했던 협정을 공산주의자들이 침해한데 대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표현들을 빌어 수없이 항의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순교밖에는 달리 택할 길이 없는 그런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신중히 처신했다. 비진스키경은 순교를 기피하지도 않았으며 또 폴란드 가톨릭 신자들에게 순교를 기피하도록 재촉한 일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순교를 위한 순교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시책의 열쇠이기도 했다.
스테판 비진스키 추기경은 1901년 8월 3일 폴란드 동북부에 위치한「쥬젤라」마을에서 태어났다. 「블로클라벡」에 있는 신학교에서 사제직을 준비한 그는 1924년 8월 3일 사제로 서품됐다. 그후 그는「루블린」의 가톨릭 대학교에서 4년간 수학, 여기서 사회과학 및 교회법 등 2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서유럽 지역방문을 끝낸 그는「뷸로클라벡」신학교 사회과학 교수가 됐다. 그러면서 그는 사제들을 위한 학문적인 잡지를 간행했으며 또 사회문제들에 대한 많은 논문과 책을 집필했다.
또한 그는「뷸로클라벡」교구의 혼인법정의 여러 직책을 맡기도 했다.
2차대전 동안 비진스키 신부는 신부로서의 사도직을 은밀히 계속했다. 그는「지하대학교」에서 사회윤리를 가르쳤으며 수녀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비밀 영적 묵상을 실시하기도 했다.
전쟁후 그는「블로클라벡」신학교재개를 도왔으며 교구주간지 편집장직을 맡고 그가 전쟁전 발행했던 사제들을 위한 잡지편집장 직에도 복직했다. 또한 그는「성청과 전후세계」란 책을 집필했다.
(계속ㆍ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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