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M극장에서「썸머타임킬러」라는 영화를 관람한 기억이 난다.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할 수 없으나 죽음과 피 그리고 상처 투성이의 승리 등으로 오토바이 경주와 그야말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프로로서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나마 오싹 식혀주는 납량(納凉) 오락물로는 나무할데 없었던 것같다.
그때 나는 도림동 본당의 보좌신부로 있었다. 그때만해도 자가용 승용차는 꿈도 못꾸던 시절이고 오로바이만해도 과분했다. 그런데 한창 젊은시절에 멋과 낭만은 하늘만큼 높이떠 있어서 오토바이도 닭장사가 타고 다니는 기아혼다 90cc짜리는 솔직히 돈주고 타라고 해도 거절할 정도의 자존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보라는 듯이 야마하(YAMAHA)250cc 오토바이를 구입해 가지고 어지간히 뽑내며 신나게 타고 다녔다.
사목적인 필요도 필요이거니와 젊음의 야망과 청춘의 싱거러움을 빨간색 야마하250cc에 걷어놓고 시속 1백km에서 1백40km까지도 불사하며 거리를 질주하고 다녔다. 교통순경한테 여러 번 걸려서 딱지(?)도 떼었지만 교통순경을 약올려 놓고 뺑소니친 일도 수없이 많았다.
붙잡을 수도 따라올 수도 없었던 교통순경은 내 오토바이가 안보일 때까지 호각을 불면서『서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것을 뒷전으로 흘린적이 몇번이었던가! 생각나는 횟수대로 속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던 어느해 여름, 드디어 한번은 올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도림동 성당 아래 애전학교 운동장이 있었다. 우연히 운동장을 내려다 보던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야 할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 운동장에서 어떤 녀석이 90cc 기아혼다를 가지고 와서 처음으로 타는 것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품이 하도 어설펐기 때문이다.
자못 우습기도 하고, 우월감도 생기고 해서『오토바이란 자고로 이렇게 타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줄 양으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모르는 사이인지라 뭐라고 묻지도 않는 터에 가르쳐줄 수도 없고 해서 무언의 교육(?)을 시킨답시고 시범삼아 운동장을 한바퀴 가장 멋있는 폼을 다해서 최대의 속력으로 달렸다.
여기서 얄궂은 운명의 장난은 시작되고야만 것이다.
미처 반바퀴도 못돌아서 운동장 한가운데 보기좋게 거꾸로 쳐박히며, 얼굴은 썬글래스의 유리파편으로 만신창이가 되고야 말았다.
운동장 한가운데 매어진 배구네트의 연결선(나이롱줄)에 걸리면 목이 짤라지고야 말것이라는 끔찍한 생각에 위기탈출을 한답시고 필사적으로 오토바이 위에 납작 엎드렸던 것이 그만 사고의 원인이 되고만 것이다. 핸들을 놓친 것이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옷을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오토바이는 아직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만치서 헛바퀴만 돌고 있었다. 그순간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아무 생각없이 다시 오토바이를 일으켜 집어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해괴망칙한 피범벅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중에 신자들은 끓탕을 했고, 모르는 사람들은 자업자득이라고 냉소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응급처지를 어느 개인병원에서 했는데 얼굴왼쪽을 눈옆으로 해서 턱아래까지 열두바늘을 아무렇게나 마취하지 않고 꿰매었다.
마침내 성가병원에 가서 다시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흉터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없어지지를 않고 있다. 그뒤부터 사람들은 나를 현상붙은 사나이 같다고 눌려댔다. 무슨 칼 싸움이라도 한 건달같이 보인는 모양이었다. 마음은 비단결같이 고운데(?) 얼굴이 험상궂게 보여 첫인상이 안좋은 것이 약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야 뒤늦게 오만이 가져다준 상처와 허세 허영이 남겨준 긴 쟁기자국을 내 얼굴에서 발견한 것이다. 즉 교만과 허영은 반드시 창피와 모욕을 불러온다는 진리를 배운것이다. 이런 오토바이에 얽힌 웃지 못할 희극을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아마 나처럼이나 오토바이의 멋과 낭만을 즐긴 모양이다. 어느날 그는 춘천가도를 신나게 달렸다. 단 한번의 실수도 사고도 없이 오토바이를 탔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오토바이 3년을 타고서 병신이 안되는 사람이 없다』요행히도 사고가 한번도 없었다면 그는 바로 오토바이의 참멋과 스릴을 모르는 병신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서 병신이 되던가 아니면 무사고이기 때문에 아주 좀스러운 소위『쪼다』라는 병신 렛뗄이 붙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춘천가도를 달리다가 백미러(뒤를 주시하는 거울)를 보고 자기폼이 너무 엉성한 것 같아서 잠깐 스톱을 하고 웃옷을 벗어서 돌려입었다. 즉 앞으로 올리는 지퍼를 뒤로 가게 하고, 등쪽이 앞으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나니 바람이 채여도 등이 굽어보이는 꼴볼견을 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옷을 돌려 입은채 한참을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돌뿌리에 걸려 그만 논두렁으로 곤두박질해 들어갔다. 마친 그현장을 지나가던 인정많은 농부가 논두렁에 처박힌 이사람을 보고 당황을 했것다!
전후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사고난 사람을 우선 살려야 되겠다고 뛰어가 본즉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구많은 사고중에 고개가 팍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즉 몸뚱이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지퍼의 방향을 봐서) 고개는 땅으로 박혀있는 것이었다. 이착한 농부는 얼른 고개를 바로 잡아줄 셈으로 다짜고짜 어깨부위를 꽉 밟고 고개를 쳐들어 두손으로 꼭잡은 다음 정확히 180도 회전을 시키느라고 땀깨나 뺏다. 비명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좀참으라고 하며 고개를 돌려놓고 보니 진짜 독뼈가 부러지면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다른사람들이 와서 가르쳐줘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허세와 허영은 귀중한 생명까지도 좌우한다. 자칫하면 제명을 다하지 못한채 이승에서 저승으로 생명의 현주소를 달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꾸며낸 얘기에 불과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 소위 제멋에 살고, 이기심과 자만심에 불타고 있으며, 콧대 높은 자존심 때문에 미움과 증오와 시기질투로 자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거울을 볼때마다 내얼굴에 흉터는 항상 오만과 허영이 남겨준 상처를 기억케 한다. 아마 누구든지 허세나 허영, 교만이나 지나친 자존심이 가져다준 쓰라린 수모와 부끄러운 추억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人生은 뛰어봤자 벼룩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고침
본보1263號 8면「현상붙은 사나이 김충무」제하는「형상붙은 사나이 김충수」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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