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성가는 전례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전례음악의 일반적인 효과로서 세가지를 들고있다.
즉 전례음악은 첫째, 기도를 마음의 표현으로 하고, 둘째, 신자들의 영혼을 일치시키고 셋째, 예식을 더 장엄한 것으로 한다.
전례헌장 제 113조부터 121조까지에는「전례예식에 대하여」「성음악과 신자의 영적진보」「음악교육」「그레고리안 성가」「그레고리안 성가의 악부 출판」「보통음악」「선교지의음악」「파이프 올갠과 그외의 악기」「작곡과 작사」등교회의 전통적인 규율을 설명함과 동시에 새로운 규칙을 보이고 모든 것을 지겸토하고 모든 수단을 다해서 교회전체가 일치, 전례상가에 참가한다고 하는 위대한 전통을 살리고, 그로인해 성가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는 목적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여러가지중에 가톨릭 교회의 정식성가인 그레고리안 성가를 훌륭하게 부르기위해 지켜야 할 몇가지 이론상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전례헌장 116조 에서는『교회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로마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행위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라고 말하고있다. 사목적인 상태가 변했다 하지만 다른 어떠한 종류의 성가에도 이처럼 선율과 가사가 일치하고 독창자나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 가운데 이처럼 예술적으로 세련되어 있고 말에 붙은 선율이 이처럼 단순하고 이처럼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겠는가!
물론 새롭고 더 현대적인 전례음악을 작곡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레고리안 성가는 역시 음악사이에서 불멸의 업적이요 기적이요 영적인 교훈을 주고 어떤 시대에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명칭은 성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에 유래하는 것이지만 그레고리안 성가가 그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명칭은 770면경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오 교황이 604년에 돌아가셨으니 거의 1백50년후부터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겠다.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때까지「깐뚜스 로마누스」라고 불렸던「깐뚜스 쁠라누스(平調曲)」에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름을 부터 권위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깐뚜스 쁠라누스는 단음을 그 본질로 하는 단음성가라는 뜻이다. 이 깐뚜스 쁠라누스를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한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일반적으로 4선 보표에 기록하지만 최근에는 G음 기호를 갖는 5선보표에 현대노-타로 기입하는 경향도 있다.
양쪽 어느것을 택하든 자유이지만 참 그레고리아니스트는 4선 보표에 전통적인 음질로 가입한 그레고리안 성가를 더 좋아한다.
요는 그레고리안 성가에 있어 단음부 혹은 네우마의 각음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같은 가치 즉 현대음악에 있어 8분음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부점음표의 가치는 4분음표의 가치와 같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잘 부르기 위해 지켜야 할 첫째 조건은 음표를 균일하게 규칙바르게 부르는 것이다.
설삐오 10세는『그레고리안성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노래요, 교회가 고대부터 이어받은 유일한 노래요 십수세기동안 전례규칙에 따라 소중히 지켜진 노래, 그리고 교회가 순수하게 자기것으로 해서 신자들에게 줄 수 있었던 노래이다』(자발교령 3조)라고 했고 삐오 12세는 회칙 무시캐사크레디시플리나에서 그레고리안 성가의 우수성을『그레고리안 성가는 교회의 유산이라 부를 수 있으나 그레고리안 성가가 특히 훌륭한 것은 그 성성때문이다. 전례기도문과 선율 이 아주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노래는 전례기도문과 완전히 조화할뿐 아니라 전례기도문이 가지는 힘과 효력을 표현한다. 이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드럽게 들어간다. 그 음악적 형식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숭고하고 거룩한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이 두 교황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전례음악의 모범이라하고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레고리안 성가는성서의 말씀 즉시편이나 복음서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생긴 종교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마음의 움직임과 은총의 작용에 의해 생긴 음악이요 다만 가사에 아름다운 선율을 붙인 것이 아니다.
둘째, 기사의 내용을 묵상하고 거기 악센트를 붙여 낭독한 후 노래가 만들어진다. 이 노래는 다만 노래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신자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동체는 노래로써 그 일치를 표현할 뿐아니라 노래로써 스스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 이 공동체는 그레고리안 성가 전례기도 문과의 선율을 통해 두번 기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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