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로서 전방에 근무하면서 어느 성당에 기거하고 있을 때 나는 그 곳 어린이들, 특히 중학생 녀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건 원래 내가 남자다웁게 잘생긴(?) 탓도 있겠지만 아마 계급높은 장교분들이나 연로한 본당 교우들까지 깍듯이 대접해 주는게 퍽 부러웠던것 같다.
더구나 주일미사에 나오는 그 씩씩하고도 늠름한 군인 아저씨들이 나의 말 한마디에 행동체계가 서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간혹 섞여있는 미군들조차도 나에게 존경을 표했고 내가 그들과 한두마디 서툴게나마 주고 받으며 웃는 것을 볼 때 영어도 유창한줄 알고 그들 딴에는 만능 재주꾼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어떤 때는 번쩍이는 다이아몬드형 대위 계급장을 어깨에 단 군복차림에 꼬마들은 짚차에 태우고 초소앞을 지나게 되면 부동자세를 취한 헌병으로부터 씩씩하고도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받곤 했는데 그때마다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뒤에 탄 녀석들이 틀림없이 봤을 테니 나중에 친구들한테 떠들어 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에 중학생 녀석들이 우루루 내 방에 몰려왔다. 연유인즉 내가 무슨 운동을 잘하는지 알아 맞추기 내기였던 것이다.
『신부님은 무슨 운동을 잘 하시죠?』
『응 난 말이야 어, 저기 스케이트 있지? 그거 잘 타지』
하고 얼버무려 위기를 잘 모면했고 그들의 내기는 결국 시시하게 끝났던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퍽잘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배구나 탁구라고 했다간 당장 시험해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시하게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큰 실수였음을 깨달은 것은 그해 어느 추운날이었다. 얼음을 지쳐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치 못해 스케이트장엘 갔다 워낙 자신이 없어서 타인이 의식되어 망설였지만 교우는 없는 것 같아서 용기를 내었다. 그러나 번번이 곰처럼 둔하게 쿵하고 얼음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자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와하하하! 하고 웃는소리가 나더니 녀석들이 모여 들었다. 난 그만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어느 구석에선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왔다. 그녀석들을 향해 웃어른의 실수에 그렇게 크게 웃어대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준임하게 나무랐다. 또 엄포도 놓았다『지금 너희들이 본 것은 없었던 걸로 해둬. 만일 이 사실을 다른 애들한테 얘기하거나 집에가서 얘기했다가 나한테 알려지면 그냥 놔두지 않겠다. 알겠니?』하고 욱박질렀다. 그리곤『얘들아!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은 수영이란 말이야! 그건 내가 기차게 하는 건데 지금 이자리에서 당장 보여줄 수 없는가 안타깝구나』하면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과거 학창시절의 별명이 둬였는지 모르지? 뭐였겠어? 물개, 물개였단 말이야』그리곤 한편으로 회유책을 썼다. 『자가자! 오뎅집이로…』녀석들은 약속을 꼭 지켜 줄 것을 다짐하는 대신 내주머니 사정은 봐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톡 털렸던 것이다. 내가 그때 수영만큼은 잘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강조한 것은 여름이 오기전에 다른 부대로 이동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된다던 이동은 되지 않고 그해 여름을 맞게 됐다. 본당 신부님께서 중학생들을 데리고 물가에 가서 하루 즐기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다. 난 울며 겨자먹기로 중학생들을 데리고 강가로 갔다. 수영복은 입었지만 옷을 봐준다는 핑계로 그들이 수영할땐 물에 들어가지 않고 그들이 나올때만 혼자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것처럼 팔로 물을 가르며 다리론 빨리 걸어갔다. 녀석들이 속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보 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론『어휴! 신부님은 과연 물개시군요』하며 찬탄하는 소리가 귓전에 어른거리는 것 같아 더욱 멋져 보이는 폼으로 더욱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 그만 실수로 깊은 곳으로 빠지게 되어 허우적거렸다.
사람살리란 소리는 차마 못지르겠고 단지 어어! 하고 소리지르며 꼴깍꼴깍 물을 먹었따.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염은 안친다는데…
체면이 말씀이 아닌 그런 웃지못할 회극을 연출했지만 요행이 목숨은 부지했다. 그때 죽 둘러섰던 녀석들 애기가 『신부님, 물개는 원래 물도 잘적잖아요, 그리고 이곳엔 오뎅집도 없으니, 안심 놓으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런일이 있은후 성당 마당에서 노는 애들 가운덴 나를 보면 싱글싱글 웃는 애들이 많아졌다.
『야! 임마 왜웃어?』하면 녀석들은 『신부님 제가 제 마음대로 웃지도 못한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고 농청을 떨어도 꼼짝 못하게 됐다.
체면 유지 하기위해 한두번 얼렁뚱땅 한 것이 나를 그지경에까지 몰아가다니! 그러니 여러분, 우리모두 이런 일이 없도록 솔직이 살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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