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구야, 나는 네가 신부가 안되어도 좋으니 사제길을 택하는것은 이제 네마음 대로 하려므나!』
내가 어머니에게 이 말씀을 들은 것은 철학과 2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온 8월초 어느 무덥던 여름밤이었다.
그날 친구들에게 제대 축하술을 얻어먹고 좀 늦게 집에 들어온 때에 마루에서 땀을 식히며 누워계시던 어머니께서 좀처럼 내 성소에 대해서 말씀을 안하셨는데 별안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해서 십여년이 지난 스물네 살이 되도록 처음 들어본 말씀이었다.
언제나 매해 방학이되면 마치 이미 신부가 된양 내 행동 하나하나에 말없이 관심을 기울이시며 꼭 신부로 키워 보시겠다는 집념이 보이시던 어머니셨다.
신학교에 입학했던 첫날 기억이 난다. 첫시간 교장신부님께서 신학교 생활전반에 걸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어느학생 아버님께서 이렇게 큰소리로 자기 아들에게 훈제하는 것이었다.
『얘야 너 이제부터 신부님 말씀 아이들으면 내 아들 아이다!』
교실이 숙연했다. 아마 모든 첫입락 코흘리개들은 다 자기 부모들을 생각하며 입속에서 한번씩들은 되뇌여 보았으리라.
사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것은 내가 원해서 보다 부모님이 원해서였다.
『너 신부가 되고 싶지않니?』하고 물으실때 나는 어머니가 원한다고 생각해서
『응 크면 신부 될래』
하고 대답하곤 했던것이 화근(?)이 되어 이미 국민학교 4학년이 숭고한 뜻을 품은 조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만 보면 부모님은 내가 신부가 되겠단다고 자랑이 대단하셨다. 아뭏든 나로 인해서 부모님이 사람들에게 한가지 자랑할 수 있게 된것이 나도 기뻤던 것은 사실이었다.
또 한가지 결정적으로 내가 신학교를 지원하게 된것은 아버님의 영세였다. 그때까지 차일 피일 하시던 아버님께서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되던 해에 영세를 받으시게 되었다. 그때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아들이 다섯인데 하나는 하느님께 안 바치겠소?』하고 말씀하신데서 연령적으로 가장 적합한 내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부가 되겠다는 어린 내겐 아무 마음의 준비없이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입학시험때 한 신부님은 내게 이렇게 질문하셧다.
『너 왜 신부가 되려하니?』
솔직이 그때 나는 매우 당황했다.. 중학교 1학년으로서 대답할 수 있는 사제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신학교 규칙을 범하고 교장신부님으로부터 부모님께 편지를 드리라는 벌이었다. 나는 차마 신학교 규칙을 범칙하면서 신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쓸수가 없어 신부님께 사정을 했다.
『신부님, 제가 신학교 생활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연락을 드린다는 것은 너무 부모님을 상심케 하는 것이니 다름 보속은 무엇이라도 좋이니 바꾸어 주십시오』다행히 허락되어서 용서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렇게 생활한 신학교 생활 8년과 군대 생활 3년은 차차 내가택한 길이 어떠한 길이며 얼마나 험한 길인가를 알게했고 내가 다시 신학과 4년과정을 선택해야하는가 하는 데서는 짐이 되어왔다.
그런데 그때 그날반 나에게 어머님은 이 말씀을 들려 주신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순간적으로 내 길에 자유스러움을 느꼈다. 그때의 그 시원함. 내 일생을 통한 시원함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 밤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역시 당신은 나를 알고 계셨군요. 감사합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택합니다』고 할 수 있었고 그 때의 그 시원함은 다시 내 생에 용솟음 치는 활력을 불어 일으켰다.
지금 이 무더운 밤에 나는 그때의 그 시원함을 생각하고 더위를 잊는다.
지하에 계신 어머니, 그때 감사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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