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요, 안심하시오. 겁낼 것 없소』(마태오 14ㆍ27)
예수의 이 말씀 나오는 경이로운 일화는 잘 알려져 있는 바입니다.
그분은 빵을 늘리어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신 후, 제자들에게 건너편 강으로 먼저 가라고 말씀하신 다음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읍니다.
배가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때 그분은 물위를 걸어 12제자들을 향해 오셨읍니다. 그것을 보자 마음이 동요된 제자들은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고 부르짖었읍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셨읍니다.
『나요, 안심하시오. 겁낼 것 없소』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청했읍니다.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예수께서는 『오시오』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자 그는 확신에 차서 그분을 향해 걸어가다가 거센 바람으로 인해 물에 빠질 위험이 생기자 소리쳤읍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예수께서는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소? 믿음이 약한 탓이요!』하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은 그치고 제자들은 그분 앞에 엎드려 『주님이야 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읍니다. 복음사가는 이 에피소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저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초대크리스 찬들의 공동체 생활을 가리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복음사가에 의하면 파도에 휘몰리는 배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읍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계시다고 여겨졌음을 느꼈던 크리스찬 공동체의 상황을 묘사하고자 할 것입니다.
초기 크리스찬들이 그 어두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요, 안심하시오. 겁낼것 없소』
그러나 단지 크리스찬 공동체만이 이러한 어두운 순간들을 지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크리스찬들이 그렇듯이 당신도 신앙의 밤을 체험했을수가 있으며 당신이 물려받은 신앙이 온통 흔들리게 되는것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성인들까지도 이같은 시간을 지냈읍니다. 성인들까지도 이같은 시간을 지냈읍니다.
이점에 있어 성녀 소화 데레사의 경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니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했던 물질주의는 일종에 가까와진 그녀까지도 용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야말로 끔찍한 순간들입니다! 아마 당신도 이를 겪었을 것이니 이때 당신은 시련속에 혼자임을 느끼면서 그누구의 도움도 없이 역풍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안계시다고, 멀리 계신다고, 존재하지 않으신다고 믿게 하는 그때에 그분의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뜻하지 않게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분의 현존을 당신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일이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이같은 어려움과 빛의 순간들을 예견하셨읍니다. 『지금은 당신들도 근심에 싸여있지만 내가 다시 당신들을 보게 될 때에는 당신들의 마음은 기쁘에 찰 것입니다』『나요, 안심하시오. 겁낼 것 없소』를 위를 걸으시는 예수를 볼때 당신은 그분을 물론 피조물을 능가하는 분으로 생명과 죽음의 주인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 앞에서 당신은 당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유령이다!』라고 말했었읍니다. 사실 거룩하신 분이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항상ㅡ적어도 처음에는ㅡ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것이 통례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엄습하는 두려움이야말로 거룩한 사실과 비자연적인 성질의 것 즉 마귀의 짓과를 구별하게 해주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뵈었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었지만 그분의 현존으로부터 크고 큰 신뢰심을 얻게되어 두려움 없이 물위를 걸어 그분께로 다가갈 수 있었읍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폭풍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분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나요, 안심하십시오. 겁낼 것 없소』
예수께서는 온 교회가, 그리고 각크리스찬이 시련의 순간에도 용기를 얻을 것을, 쓰러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어떤일이 일어난다 할지라고 그분을 완전히 신뢰할 것을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들 사이에 그분이 항상 현존하시도록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셨읍니다. 『단 두사람이나 세사람이라도 내이름으로 모여있는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읍니다』 실상 그분이 현존해 계실때 위험은 몰러갑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시 자 바람이 그쳤읍니다』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일생동안은 그분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도록 모든 일을 해가도록 합시다.
그분의 이름으로 일치된다는 것은 그분 안에 그분의 뜻 안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뜻합니 다.
그리고 구분의 뜻은 무엇보다도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하시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것 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생을 지내는 동안ㅡ이로써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ㅡ그분보다 더 훌륭한 동료가 어디에 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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