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 계속 날씨가 따뜻하다. 낡은 벽옷걸이에 옷 몇벌만 달랑 걸린 형제들에게는 크나큰 위안의 계절이다. 그래서 여름은 「가난한자는 행복하다는」는 주님의 말씀을 실감나게 하는 계절이다. 뜨끈한 공탕한 그릇에 고추가루 듬뿍쳐서 먹은 듯이 땀이 줄줄 흐르는 따뜻한 날에는 정말이지 자개 농장에 그득하니 옷을 쌓아둔 형제들이 불쌍해진다. 밍크오바니 여우목도리니 비싼돈 들여 마련한 분들의 이 따뜻한 계절에 한번 걸쳐볼 엄두도 못낼 걸 생각하니 가엽게 생각된다.
이 따뜻한 계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나 되는 모양이다. 주일미사에 부채를 들고 오는 분이 있는가 하면 주보 한장으로 바람을 일으키려 애쓰는 사람도 보이니 말이다. 하기사 어떤 이들은 이 따스한 온기가 싫어서 인지 방문을 꼭꼭 걸어 닫고 찬바람을 일으키려고 시끄러운 소리를 장치한다지.
여름이 주는 가장 적합한 선물인 따뜻함을 왜 외면하려들까?
만약 여름이 따뜻하지 않고 쌀쌀하다면 얼마나 난처할까. 그렇잖아도 지난 겨울의 추위가 잊혀지질 않는데 여름까지 추웠다간 큰일 날 노릇이지.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용없듯이 여름도 그 따뜻함을 잃으면 아무 쓸모없어 사람을 오히려 해치리라. 안, 여름은 그저 불결에 앉은듯 이 후꾼후꾼해야 제맛이지. 그 딱딱하고 차거운 아스팔트 도 눅진눅진 녹아 부드러워지는건 여름에만 맛볼수 있는 기분이거든. 녹아 흐르는 아스팔트는 얼마나 흐뭇한 정경인가.
어느해 겨울, 아스팔트위의 물기란 물기가 깡깡 얼어붙은 날 차도에 허수룩한 차림의 중년남자 한분이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맨손으로 치며 통곡하고 있었지. 그 남자의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 계란 서너개가 깨어져 얼어붙고 있었어. 사연인 즉 그의 외동아들이 그자리에서 차사고로 숨졌다는 거야. 국민학교 1학년이고 계란을 좋아했음을 얼어붙게 하는 광경이었어. 그때 부르통거리며 질주하는 버스랑 검게 누운 아스팔트는 참으로 딱딱하였고 「비정」그 자체였어.
그런데 그 비정의 아스팔트가 녹아 흐르고 있다니 얼마나 후련한 노릇인가. 정말이지 여름은 더워야 한다. 그리고 더위속에 일해 보아야 『이미에 땀을 흘려야 하리라』는 창세기의 말씀이 우리 가까이 다가온다. 사람은 땀을 흘릴 때 비로소 성실해지진다. 땀은 곧 인간의 노동을 뜻하고 노동에는 성실이 있을 뿐이니까. 땀을 흘린자만이 쉴 자격이 있고 쉰다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는 법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남에게 땀 흘리기를 강요하는 자, 남의 땀방울로 자기의 배를 채우려 드는 자는 지금의 더위와 고통은 잊을지언정 마지막 더위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 그 더위에 우리는 건강한 땀을 성실한 땀을 좀 많이 흘려보자. 그리고 영원한 안식의 뜻도 좀 헤아려 보자. 사람이 더우면 더운 그것으로 고통스러운것은 결코 아니다. 더위에다 짜증이라는 두꺼운 옷을 걸침으로써 비로소 답답해진다.
더위가 두려운 사람은 아예 짜증이라는 겉옷을 벗어버리도록 하자. 피서를 간다고 더위가 우리에게서 물러갈까?
신품을 받은 그여름도 무척이나 따뜻하였었다. 몇겁의 옷을 껴입고서 제단마루 바닥에 엎드렸을 때는 별로 더운 줄도 몰랐었다. 그러나 정작 더운 날은 그해의 성모승천 대축일이었다. 관처럼 생긴 고백소에 앉아 성사를 주노라면 이루고 내려간다.
기둥마다 선풍기가 목을 바쁘게 돌려 대지만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자꾸만 줄지어선 고백자의 수를 헤아리며 사죄경을 염하고 있었다. 일어나서 잠깐 담배한대라도 피웠 으면 연옥에서 해방된 기분이겠는데 그러나 별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때 동료신부님 이 문을 두드리며 교대신호를 보내왔다. 아마 이제 식사를 끝낸모양이지. 『어이 수고 했어 좀 쉬지』이 한마디의 말이 땀으로 범벅이 된 내 우지상에 찌그런진 웃음을 띠게 만들었다.
그렇지, 더위를 이기려면 결국 신자 본연의 자세가 최고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 줄때 그 더위와 땀은 따스함이야. 『고맙다 한숨 돌리고 곧 교대하지』고백소를, 그 게헨나의 골짜기를 빠져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우정이 있으면 더위도 따스한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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