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하자, 그러면 우리는 이 사건을 역사학적 측면에서 검토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시각을 달리하여 철학이나 신학 또는 사회과학적 측면에서도 검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써온 이글은 18세기 후반기 이후의 한국에서 천주교회와 관련되어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역사학적 시각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검토해본 것이다.
교회는 신앙과 祭儀로 결합된 신앙인의 집단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교회에 관한 문제의 취급은 신학의 영역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는 사회적 기능이 부여되어 있고 또한 교회는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사건을 역사학에서도 논의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민족사에서는 사회구조의 일부로서 교회가 발휘하고 있던 기능과 역기능을 논하며 그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판단 등을 내리게 된다.
우리 나라에 천주교회가 창설된 때는 前近代社會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되어 나가던 시기였다. 시대적 전환기에 창설된 천주교회는 격동하는 민족사의 와중에서 민족의 발전과 근대 사회의 형성에 일정한 기여를 하여 왔다.
지난날 교회가 발휘하고 있던 역사적 기능을 돌이켜 볼때 교회는 조선후기 사회에서 인간평등성의 원리를 제시하여 주었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어린이와 여성의 인격을 확인하고 전근대적 질고에 헤메이던 그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었다. 한글의 가치를 인정하여 문화의 보편화에 기여한 바도 있었다.
그리고 민중의 동의를 전제로 한 지배자의 등장을 암시해 주었으며, 세속의 법보다는 「마음법」즉 자연법이 우월함을 역설해주었다. 또한 근대적 교육을 촉진시킴으로써 교육을 통한 민족의 계통에 이바지하여 왔다.
그리고 외부의 침략에 저항하여 민족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력도 한 바가 있었다.
이러한 여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천주교회가 민족사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확인해 보았으며, 이에 근거하여 한국교회사의 민조사적 의미를 추적해왔다. 그러나 이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은 각자의 역사관에 따라 계속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진행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사의 민족사적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회고주의 내지는 好古主義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시대의 교회사적 사건을 현재와는 유리시켜 과거의 아름다왔던 일만으로 취급해 보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아니된다. 회고주의 내지는 회고주의의 극복을 통해서 만이 올바른 역사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지나간 과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기 만족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즉 한국사에 있어서 교회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검토할때 마치 천주교에 의해서만이 한국사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식의 착각에 빠져서는 아니된다. 지나간 과거에 교회사가 발휘했던 기능에 대해서 지난친 자만심을 갖는다는 것은, 역사의 전통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만을 연구하는 역사학의 측면에서 교회라는 조직체와 그 구성원이 던져준 의미를 탐구해 보았다. 그리고 역사적 의미의 추구를 해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사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한국 교회사가 가지고 있는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인류를 위해 기여한 바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우리는 지난 2백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교회의 존재와 변천에 관한 신학적 그리고 교회사적 탐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신학의 일부인 교회사는 역사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의지와 함께 이에 용답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사가 하느님의 섭리를 전제한 것이라면 지난 2백년간에 걸친 한국의 교회사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섭리였는가에 관해 마땅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한국교회와 그역사에 대한 참다운 방향의 설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속성을 교회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기록이다.
우리는 이런한 교회의 모습을 우리의 역사에서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교회의 역동성에서 민족사적 의미를 추출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사의 민족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은 민족사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화이었다.
민족사의 발전에 대한 끊임없는 기여를 통해서만이 교회는 한국사에서 그 존재가치를 확인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민족사적 의미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受容文化」의 일종이었던 천주교는 민족문화의 일부를 이루게 될 것이며 민족의 종교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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