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에 들어가 응접실에 앉자마자 교황대사님이 “10월 5일, 교황청에서 안젤로 신부님을 주교로 서임하였소”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수원교구장으로 임명되었소.”
좀 얼떨떨했다. 그때 내 입장이 좀 모호했기 때문에 어려울 때이긴 했다.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았던 김남수 주교는 시국의 혼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날 미사를 드릴 때까지만 해도 하던 일이 다 끝났으므로 ‘왜관으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하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미사 경본 번역을 마지막으로 내가 하던 일이 다 끝난 날, 주교직이 떨어지니 하느님 섭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1974년 10월 14일 주교 임명 사실이 발표되고, 그해 11월 21일 주교품을 받았다. (중략)
11월 21일, 고등동주교좌성당에서 윤공희 대주교님에 의해 주교로 서품됐다. 서품 받는 날은 초겨울의 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하는 날씨였는데,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왔다갔다하더니 서품식 때는 아주 심하게 내렸다.
고등동성당은 아주 작아 한 500명밖에 수용하지 못했다. 그때 온 사람이 사제단 200명에 평신도가 2000명도 넘었으니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에 서 있거나 밖에 서 있어야 했다.
서품을 받는데 분심이 들었다. 성인호칭 기도할 때 엎드려 ‘주교좌성당이 너무 작아서 안 되겠다. 좀 더 큰 것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으니, 나는 엎드려서 성당 한 채를 다 지었다.
나는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내가 명령을 내려서 무엇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가 돌보고 있는 신부님들이 보람되게 일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주교는 그들이 기쁘게 응답할 수 있는 그런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내 성격 자체가 오래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하다가 안 되는 일은 단념하는데 단념하면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뤄졌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바로잡아주셨다. 그래서 나는 주교직도 아주 행복하게 수행한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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