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지미르의 성모’ 이콘은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어 각 본당의 성물방과 떼제 기도 모임 등 많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렇게 아기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와 뺨을 맞대고 힘차게 목을 끌어안고 있는 형태를 ‘자비의 성모’ 계열이라 한다. 이 계열의 이콘으로는 이번에 소개하는 블라지미르의 성모 외에도 톨가의 성모, 돈의 성모, 페오도르의 성모, 야로슬라블의 성모 등 여러 이콘들이 있다.
러시아의 고대 역사를 담고 있는 ‘러시아 연대기’에 따르면 이 이콘은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보존되어 오다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12세기에 이르러 키예프 교외의 한 수녀원으로 옮겨졌으며, 1153년에 성모님이 발현을 통해 지시하신대로 블라지미르라는 도시로 옮겨지면서 ‘블라지미르의 성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로 이 이콘은 역사적으로도 여러 번 부각되는데 1395년 안드레이 보고리스키 공(公)에 의해 모스크바로 옮겨져 타타르인들을 대항하는 전투에 앞세우고 나가 대승을 거두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러시아인들의 더욱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러시아가 국난에 처할 때마다 이 성화를 통해 도움을 받았으므로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일 년에 세 번, 즉 율리우스력으로 5월 21일, 6월 23일, 8월 26일에 이 성모 성화를 공경하는 축일을 지낸다.
오늘 소개하는 이콘은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한 비잔틴 성화가 아닌 17세기 러시아의 시몬 우샤코프(1626~1686) 라는 화가가 그린 것이다. 그의 이콘을 보면 기존의 이콘들과 형태는 같지만 표현 방법에 있어 큰 변화를 볼 수 있다.
시몬 우샤코프는 서구 유럽의 종교미술을 많이 접하던 스트로가노프화파에 속했다. 스트로가노프화파의 화가들은 섬세하고 세밀하며 서구 회화의 영향을 받아 정형화된 모습보다 사실적인 묘사를 했으며 원근법을 나타냈으며 배경과 장식 등에 바로크적인 장식을 하기도 했다.
시몬 우샤코프는 “그림이란 하나의 반사경처럼 실물과 꼭 같게, 마치 거울을 비추는 것같이 그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물의 특징이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그 그림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동안의 전통에서 탈피하여 세속적인 표현을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형태를 고집하던 이들과 마찰도 있었지만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이후 더욱 서구적인 표현이 많이 받아들여져, 19세기에는 입체적인 조각을 꺼려하던 동방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 서구와 똑같은 형태의 성상들도 나왔으며, 성화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이콘과 다른 서방 회화기법에 따른 회화적 성화들이 널리 그려졌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공산정권을 겪고 1990년 민주화 이후로는 다시금 14세기의 전통적인 형태의 성화 즉 이콘으로 회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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